중국 드라마에도 새로운 바람이 부는가?
나는 드라마를 즐겨본다.
나라별로 드라마의 특징을 살펴보면, 일본은 교훈과 감동 중심의 이야기가 강세이고, 한국은 장르를 불문하고 연애 서사가 스며든다. 중국은 오랫동안 권선징악과 체제 선전 중심의 드라마가 주류였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기류가 포착된다. 물론 이는 한 드라마 마니아의 좁은 시야일 수 있으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다.
중국 드라마의 권선징악 구조는, 배신이나 뜻하지 않게 누군가의 치정을 알게 되며 제거되는 과정에서 악(惡)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주인공이 복수를 다짐하고 악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不를 正으로 고치게 된다. 이런 이야기에서 악당 캐릭터는 절대 악이다. 끝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 그리고 착한 캐릭터는 정의의 사도이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약자의 편에 선다.
일본이 한 때 순수악의 캐릭터를 많이 그렸다. 그래서 매우 잔혹, 잔인한 장면이 많았고, 경악을 금치 못할 시놉시스도 많았다. 모방범죄도 많이 발생했고, 장르는 점점 마니악해졌고, 성인물도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내용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애니메이션도 성인용으로 만들어지며 그야말로 진심으로 거짓말을 하는... 아니지 거짓말이라기보다는 '개소리(Bullshit)'를 하는 악이 매력적으로 그려졌었다. 한국은 점점 사이비 종교, 무속, 혹은 전통적인 처녀귀신, 저승사자, 도깨비 같은 몬스터에 인간적인 서사가 결합되고 있다.
중국 드라마에도 새로운 바람이 부는가?
중국 드라마의 변화는 단순한 장르적 실험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문화적 진화다. 절대악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의 서사는 오랫동안 중국 드라마의 뼈대였다. 하지만 이제 그 뼈대에 살이 붙고, 감정이 흐르며, 때로는 그 악마에게도 눈물이 흐른다.
이 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단순히 서구의 영향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피상적이다. 중국 내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 SNS를 통한 감정 공유,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받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드라마 속 캐릭터들에게도 투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엔 악당이 죽어야 이야기가 끝났다. 이제는 악당이 살아남아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이 왜 악해졌는지, 어떤 상처를 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를 묻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그 서사가 미숙하고, 개연성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 동화가 늙지 않기 위해선, 동화도 변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본 중국드라마 '귀녀'에서는, 전형적인 악역으로 등장한 인물이 후반부에 이르러 주인공과 손을 잡는다. 그가 저지른 악행은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 역시 체제의 희생자였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악을 이해하는 것’이 정의의 또 다른 형태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여성' 이야기로 현시대의 약자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이런 변화는 동화적 서사의 재구성이다. 옛날 동화에서는 늑대는 늘 나쁘고, 마녀는 늘 악했다. 하지만 이제 늑대도 배고플 수 있고, 마녀도 외로울 수 있다. 동화가 늙지 않기 위해선, 동화가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한국 드라마가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파고들며 장르를 넘나들고, 일본 드라마가 극단적 악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면을 탐구했다면, 중국 드라마는 이제야 ‘악의 인간성’을 탐색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동아시아 서사의 진화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개과천선한 악역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주인공의 용서가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등, 이야기의 완성도는 아쉬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 중국 드라마도 ‘악을 벌하는 것’에서 ‘악을 이해하는 것’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동화는 늙지 않는다. 다만, 늙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한다. 그리고 그 변신의 바람은 지금, 중국 드라마 속에서 불고 있다.
당신이 기억하는 동화 속 악당은 누구였나? 그들은 정말 악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