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앞의 선과 악

상대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도로 위의 철학

by 철없는박영감

어제는 절대선과 절대악, 순수선과 순수악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상대적인 선악’이라는 개념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철학의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인 상대주의와 합리주의의 충돌. 많은 철학사들은 소피스트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명제가 “그 말 자체도 상대적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무너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주의는 종말을 맞았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상대주의는 사라졌을까? 아니면 단지 범위의 문제일까? 나는 오히려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공존하고 있다고 느낀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내 안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1. 경적의 철학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앞차. 나는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마음속 메트로놈을 조율한다. 경적을 울릴까 말까… 참다 참다 손이 핸들 중앙으로 향하려는 찰나, 앞차가 드디어 움직인다. 분명 유튜브를 보고 있었을 거야. 아니면 카톡? 운전에 집중하지 않고 정신머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 거냐며, 마음속 비난은 이미 앞차 운전자를 ‘빌런’으로 확정한다.


그런데 앞차가 너무 지체한 나머지, 내 앞에서 신호가 바뀌어버린다. 앞차의 꼬리가 파레이돌리아 현상처럼 나를 비웃으며 멀어진다. 이제는 진짜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지경이다. '신발, God of Bottle, 가나디...'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나는 선량한 시민이니까. 대신 카톡방에 앞차를 고발한다. 이러쿵저러쿵, 이런 일이 저런 일이…


“빠앙”


뒤차의 신경질적인 경적이 귀를 강타한다. 짜증이 실린 소리가 내 감정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뭐가 그렇게 바쁘냐며, 선량한 시민의 입에서 '신발, God... '가 같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일부러 더 천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느긋하게 출발한다.


2. 꼬리물기의 윤리학


교차로에서 시내버스 한 대가 꼬리물기를 한다. 신호는 바뀌었지만, 교차로는 막혀 있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버스가 위험하게 꼬리물기를 하다니. 작은 차들이 어미새에게 모이를 달라는 듯 짹짹거리며 경적을 울린다. 그리고 저 뒤에서 화물차가 거대한 사자후를 내뱉는다.


“부앙”


그 순간, 새끼 새들은 조용해진다. 버스가 지나가고, 다시 신호를 기다리는 도로 위로 짜증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창문이 열리고 담배연기가 피어오른다. 꽁초가 버려지고, 침이 뱉어진다. 다시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움직인다. 그런데 또다시 교차로 앞에서 노란 신호. 순간 딜레마에 빠진다. 액셀? 브레이크? 대부분은 액셀을 밟는다.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한 보상이라도 바라는 듯이. 그리고…


꼬리물기가 반복된다. 나는 오늘도, 선한 시민의 얼굴로 분노를 감춘다. 나의 정의는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다. 신호등 앞에서, 나의 정의가 다시 깜빡인다.




※ 헤헤헤. :D 픽션입니다. 저는 욕을 하지 않습니다. 저주를 퍼부을 뿐입니다. 저는 교차로가 막히면 손에 땀을 쥐고, 공회전을 하며, 언제든지 바로 튀어나갈 수 있게 느긋하게 기다립니다. 오래된 연식의 우리 '슴삼이(SM3)'의 성능을 탓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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