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춤추게 하면 누구에게 이득인가?
고래는 춤추고 싶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이 말은 오랫동안 동기부여의 금언처럼 회자되어 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직원을 관리하는 리더도, 연인을 대하는 사람도 이 문장을 믿는다. 칭찬은 상대를 움직이게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낸다고...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고래는 왜 춤을 춰야 하는가. 그리고 그 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쩌면 고래가 춤을 추는 것은 망조가 아닐까?
고래는 바다의 거인이다. 그들은 깊은 물속에서 유영하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은 그 거대한 생명체를 수족관에 가두고, 훈련시키고, 박수를 받게 만든다. 칭찬은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다.
“잘했어.” “멋졌어.” “역시 너야.”
이 말들은 고래에게 먹이를 주는 손짓처럼 작동한다. 칭찬은 겉으로는 따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대와 통제가 숨어 있다. 칭찬을 받기 위해 춤을 추는 고래는, 더 이상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는 박수 소리에 맞춰 움직이고, 실망을 피하기 위해 애쓴다. 칭찬은 때로, 자유를 빼앗는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그 춤을 통해 이득을 보는 건 고래가 아니다. 칭찬을 통해 상대를 움직이는 사람은, 결과를 얻는다. 성과, 만족, 통제, 혹은 자기 위안. 칭찬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지만, 동시에 위계를 강화한다.
직장에서 상사의 칭찬은 직원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 연인 사이의 칭찬은 기대를 고정시킬 수 있다. 부모의 칭찬은 아이를 ‘착한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로 만들 수 있다. 칭찬은 때로, 상대를 나의 기대에 맞게 조율하는 기술이 된다.
춤추지 않는 고래의 용기
나는 춤추지 않는 고래를 상상해 본다. 그는 박수에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헤엄친다. 칭찬을 갈구하지 않고, 실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롭다. 아니 이렇게 거창하게 표현할 일인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내가 '나'이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답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고래였던 적이 있다. 칭찬을 받기 위해 애쓰고,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적은 없었는가. 춤추지 않는 고래는, 자기 자신을 회복한 존재다. 그는 더 이상 ‘잘했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고래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존중이다. 칭찬은 순간의 기쁨을 줄 수 있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지는 못한다. 고래에게 필요한 것은, 그가 춤을 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이다.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존중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춤추게 하기 위해 칭찬을 남발하기보다, 그가 춤추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박수에 맞춰 춤추고 있나요?
그리고 그 춤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