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악설, 어디까지 파봤니?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한가? 고대부터 지금까지 반복되는 질문이다. 선과 악, 마치 서로 대척점에 있는 개념 같지만, 정말 그럴까?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다. 보수와 진보를 성선악설의 틀로 분석한 내용이었다. 흥미로웠다.
보수는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평등보다는 자유를 우선한다. 그래서 사회는 통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균형을 찾아간다는 믿음을 가진다. 이 관점은 성선설에 가깝다. 인간은 본래 선하므로, 자율에 맡겨도 괜찮다는 전제다.
그런데 ‘보수’를 떠올릴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꼰대, 유교, 수구꼴통, 내란... 성선설에서 기대할 법한 인간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건 모순일까, 아니면 우리가 가진 편견일까?
진보는 계획과 통제를 중시하고, 평등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인간은 그냥 놔두면 쏠림현상으로 인해 공멸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지속적인 개입과 케어가 필요하다고 본다. 성악설에 가까운 시선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불완전하므로, 제도와 규율이 필요하다는 전제다.
그런데 ‘진보’를 떠올리면? 청춘, 평화, 글로벌(K-), 공산주의, 그리고... 성범죄. 모순적인 단어들이 뒤섞인다. 이 역시 성악설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까?
하지만 이 모든 걸 다르게 봐야 한다.
보수가 말하는 성선설을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기대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현실의 인간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진보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두 진영 모두, AS-IS의 인간상은 서로 반대이지만, TO-BE의 인간상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상을 꿈꾼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철학이지만, 그 철학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단순히 철학적이지 않다. 꽤나 정치적이다.
물론, “성선과 성악은 모두 인간 안에 공존한다”는 식의 결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어딘가 조바심이 묻어난다. 성급하고, 교과서적이다. 마치 깊은 고민 없이 빨리 결론을 내고 미래를 설계하고 싶은 젊은이의 마음 같기도 하다. 과정은 건너뛰고 결과만 보고 싶은 치트키. 간주점프.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오늘, 정말 내 안의 악마와 천사가 등 뒤에서 속삭였다.
천사는 말했다.
'그래…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그리고 너에게 떨어지는 보수가 적어도,
열정페이를 요구해도,
최대한 이상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끌고 가야지.'
그리고 악마도 속삭였다.
'그렇게 해줘서 뭐 하게?
보수가 적은 건 어쩔 수 없다고 쳐.
네가 그렇게 자기 몸 혹사해 가며 일해봤자 누가 알아주데?
그냥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네 호의가 그들의 권리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야.
그리고 네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하면 계속 시켜준다고?
아닐걸.
세상은 그렇게 꽃밭이 아니야.'
이건 단순한 철학적 고찰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작고 치열한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