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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ㄴ'은 제대로 하니?

발음 지옥에서 온 초대장 : 장단음, 이중모음, 구개음화

by 철없는박영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맞춤법이다. 물론 플랫폼에 자체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할 때마다 걸러내는 것이 다르고, 어떤 것은 수정하라는 대로 수정했다가 다시 한번 검사해 보면 원래 것이 맞다고 다시 수정하라고 하고 혹시나 해서 또 검사하면 다시 수정하라고 뜨는 맞춤법 검사 무한 루프가 뜨는 경우도 있다. 또 비문을 고쳐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간혹 '오류의심'이라고 뜨면 문장 전체를 수정해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의도한 주제를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가끔씩 맞춤법 검사는 한 건가 싶은 글들도 눈에 띈다. '되'와 '돼'를 잘못 쓰는 경우가 가장 많고, 잘못된 띄어쓰기는 몇 번 읽어보면 '아... 이런 말이구나'하고 깨닫기도 한다. 어떤 글들은 문단이 나뉠 만한 곳이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많이 나뉘어 있어서 읽기 힘든 경우도 있다. 사실 나도 어디 가서 말도 못 할 정도로 엉망이지만 성우 발음 관련 에피소드를 쓰기 위해 과감히 적는다. (죄송합니다. 저도 띄어쓰기 못하고 문단나누기 못해요.) 그나마 글은 중간저장도 가능하고 퇴고를 할 수 있어서 고칠 기회가 많이 있다. 다만 이것도 출판을 하게 되면 끝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퇴고와 교정을 수십 번 봐도 안된다는 편집자의 글이 많은 것을 보면 완벽은 불가능한 것 같다. 성우에게는 발음이 맞춤법과 같아서 발음이 제대로 안되면 나중에 마이크로 녹음했을 때 웅얼웅얼하는 것처럼 의미 전달이 하나도 안되기도 하고, 잘못 띄어 읽어서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돼서 엉뚱한 말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대사를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 밝은 분위기로 시작했다가 읽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아니네가 되면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성우도 A급 성우님들이야 발음은 당연히 좋고, 딱 본인만의 어투, 어조가 확립된 분들이라서 틀리면 틀린 대로 일단 지나가고 나중에 부분수정이 가능하지만 (사실 이런 분들은 틀리지도 않는다. 워낙 베테랑이시라서...), 성우지망생의 경우는 말이 달라진다. 일단 부분수정이 불가능하다. 할 때마다 어투, 어조가 다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으로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좋은 소리로 녹음될 때가 있다. 그러다가 순간 버벅되거나 발음이 좀 새서 다시 녹음하려고 하면 조금 전의 좋았던 소리를 재현할 수가 없다. 기억도 안 난다. 그래서 성우지망생들은 녹음 혹은 수업 중 틀리면 무조건 다시 처음부터다. 틀린 부분부터 다시 하게 내버려 두는 경우는 시간이 없을 때뿐이다. 뒤에 남은 사람이 많을 때나... 그래서 한 번에 할 때 잘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아니면 연습을 많이 해서 본인의 스타일을 확립하거나... 하지만 본인의 스타일 확립은 현재 방송국 전속으로 있는 성우님들도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 맥가이버 하면 배한성 성우님, 톰과 제리 하면 송도순 성우님, 요즘은 동물 농장하면 안지환 성우님, 감성다큐하면 정형석 성우님. 이렇게 딱 들으면 알 수 있는 정도의 스타일 말이다. 그래서 연기나 내레이션 분위기에만 신경 써서 한 번에 성공하기 위해서 발음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발음 때문에 다시 녹음하거나 수업시간에 지적을 받는다면 쥐구멍에 숨어야 한다. 그만큼 성우가 되려면 발음은 중요하고 기본이며 본인 스스로 챙겨야 한다. 성우 학원에 처음 가면 쭉쭉 펴서 읽는 연습을 우선 시킨다. 사투리 억양을 빼고 표준어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훈련이 어느 정도 지나면 본격적으로 발음 훈련에 돌입한다. 지옥으로의 초대장이 도착한 거다. 끝없는 반복, 반복, 반복... 머리도 좋아야 한다. 공부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몇 십 년간 굳어온 내 언어 습관을 고쳐야 한다. 습관은 무서운 거다. 고치려면 지옥을 갔다 와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일반사람들이 발음하면 으레 생각하는 것이 '간장공장 공장장'이다. 하지만 이것은 발음 지옥 탈출 최종관문일뿐이다. 글자는 기본적으로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발음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렇다 여러분 생각대로 모음이다. 그리고 모음 발음의 핵심은 입모양이다. 'ㅏ,ㅑ,ㅓ,ㅕ...' 이걸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ㅘ, ㅝ, ㅙ, ㅞ...'같은 이중모음이 안 되는 사람이 많다. 두개의 입모양을 거의 동시에 바꿔야 하니까… 사실 'ㅑ, ㅕ'도 'ㅣ+ㅏ, ㅣ+ㅓ'의 이중모음이지만 'ㅏ,ㅑ'가 구분 안 될 정도로 발음이 안 좋은 분들은 구강구조에 문제가 있으니 병원에 먼저 가라고 한다. 입모양을 제대로 안하면 발음이 엉망이 된다. '인간과 동물'을 '인간가 동물' 혹은 '인관과 동물'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 '과'발음 확실하게 하려고 신경 쓰면 어색해지거나 템포가 느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고치기 더 어렵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연습밖에 없다. 'ㅘ' 발음의 어려움을 알려주기 위해 선생님들이 많이 가지고 오는 단어가 '관광'이다. '관강' 혹은 '간광'으로 읽어서 제일 많이 틀린다. '관광'을 제대로 하면 앞에서 말했던, 어색해지거나 템포가 느려진다. 그리고 입에도 힘이 들어가서 조금만 읽어도 입 주변이 금방 피로해진다. 모음에도 끝판 왕이 있는데 바로 'ㅢ' 발음이다. 특히 전라권의 'ㅡ'로 발음되는 언어 습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 'ㅢ'의 'ㅡ'화는 전라권만이 아니라 전국민적인 언어습관이 된 듯하다. 서울 토박이들도 어려워한다. 그래서 '생활의 지혜'는 '생활에 지혜'라고 한다. 이것은 아나운서도 마찬가지다. 'OO의 OO'은 전부 'OO에 OO'으로 고쳐 읽는다. 혹시 어디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 저렇게 고쳐 읽으면 아나운서 같다고 칭찬 들을 수 있을 거다. 다만 '의사'는 '의사'다. '의'자체에 뜻이 있으면 고쳐 읽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으이사’ 아니다. 한 번에 ‘의사’라고 해야 한다. 전라권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경상권은 심각하다. 우선 언어습관 때문에 'ㅆ'발음이 안된다. 그리고 'ㅡ' 안된다. '스위트'가 '서위트', '스캔들'이 '서캔들'이다. 더 깜짝 놀랄 일은, 일반사람인 경우 전라도든 경상도든 충청도든, 본인들은 다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 착각? 한다는 것이다. TV 시청이 당연해지니 매일 듣는 표준어를 자신들도 그대로 쓰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일반사람은 프레젠테이션이나 발표할 때 모음만 신경 써서 잘 발음하면 아나운서 같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모음은 집에서도 연습을 해보자. 입모양만 잘 만들면 된다. 'ㅘ'를 해야 되는데 'ㅏ'를 하고 있지 않은지… 개인적으로 'ㅘ', 'ㅏ' 발음 구분 안되는 사람이 제일 신뢰가 안가더라… 4살배기 아이 같아서…


자음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ㅅ'이다. 'th'발음은 기초반 끝날 때까지도 못 고치는 사람이 많다. 이건 병원 가도 안된다. 말이 좀 이상하지만 혀를 일단 잘못 놀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ㅅ'발음 교정이 발음 교정의 끝판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th'발음이 아닌 분들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할 정도로... 자음은 입모양보다는 입안에서의 혀의 위치와 입안의 구개부, 연구개부에 의해서 결정되므로 'ㅅ'을 빼고는 연습이 쉬운 편이다. 'ㄹ'발음 고민도 많이 하는데 또 말이 이상한데 혀를 잘 놀리면 된다. 자음 발음은 천천히 해도 어색하거나 템포가 잘 느려지지 않아서 천천히 발음하면 된다. 자음 발음을 잘하는 꿀팁을 드리면 자음 발음의 어려움은 받침 발음할 때 많이 겪는다. 연음을 잘하면 되는데, '놀이터'를 글자 그대로 '놀이터'로 읽으려고 해서 어려운 거다. 받침을 다 뒷음절로 연음 시켜버리면 받침이 없어지는 매직이 일어난다. '노리터' 이렇게 말이다. 자음에서 어려운 발음은 대부분 이 '연음'이 안 되는 단어들이다. '수사슴'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연음법칙이 있지만 가장 많이 틀리는 것이 구개음화다. 'ㄷ,ㅌ'이 'ㅣ'모음과 만나 'ㅈ,ㅊ'으로 발음되는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구개음화를 확장시켜서 사용한다. 'ㅡ'에도 구개음화를 적용한다. '끝으로'를 '끄츠로'로... 맞는 발음은 '끄트로'이다. '곁으로'를 '겨츠로'로... 맞은 발음은 '겨트로'이다. 'ㅡ'에서 구개음화를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다른 뜻이 겹치기 때문이다. '굳은'과 '궂은'은 뜻이 천지차이이다. '굳은', '궂은'을 잘못발음하면 모두 '구즌'이 되어버린다. '구든', '구즌'이 맞는 발음이다. 윤종신 작곡가가 국문과 출신이라서 가수들의 잘못된 발음을 많이 지적한다고 하는데 모르면 몰랐지 알고 나서 잘못된 발음으로 노래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분위기 좋다가 갑자기 찬물 끼얹은 듯이 확 깰 때가 있다. 분위기 있던 오빠가 갑자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응석받이로 보인다고 할까...


그 외에도 발음과는 크게 상관없지만 우리말에는 장단음이 있다. 아마 국어시간에 시험 많이 봤을 거다. 나는 아직도 헷갈린다. '눈, 누-운', '말, 마-알'같은... 이것은 듣는 사람이 조금 더 편하게 들을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 쓴다. 사실 장단음은 앞뒤 문맥에 따라 들으면 크게 잘못 전달되는 경우는 없는데, 다만 똑같이 들었을 때 장단음이 구분되는 말하기가 조금 더 전달력이 좋고 듣기에 편안하다.


여기서 발음 지옥 탈출 최종관문인 '간장공장 공장장'을 잘할 수 있는 꿀팁을 하나 알려드리겠다. 글자를 읽으려고 하지 말고 듣는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해 보면 탈출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글이 쓰인 상황을 상상해서 의미대로 나눠서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장공장 공장장은 강공장장이고, 된장공장 공장장은 간공장장이다."

라는 글이 있을 때, 상상하는 거다. 우선 강공장장과 간공장장이 있다. 둘의 직책은 모두 공장장이다. 그런데 강공장장님은 간장공장에 다니시고, 간공장장님은 된장공장에 다니신다. 이렇게 의미를 파악하고, 내가 사회자인데 두 분이 무대에 나란히 서있고 관객에게 소개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강공장장과 간공장장으로 각각 다른 인물을 설정해 보면 쉽게 할 수 있다. 하나 더 해볼까?

"중앙청 창살은 쌍창살이고, 경찰청 창살은 외창살이다."

똑같이 중앙청과 경찰청이 있고, 그곳에 있는 창살을 상상하는 거다. 중앙청은 쌍창살, 경찰청은 외창살. 이렇게 의미파악을 하고, 내가 중앙청과 경찰청의 창살 종류를 설명한다고 상상하는 거다. 그러면 쉬워진다. 내가 이해한 개념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 사람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평소에 말이 느린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할 때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것 같달까…


이런 발음 연습은 당연히 기본이고, 한번 습관을 들여놓으면 자전거나 수영처럼 안 잊어버린다. 다만 연습을 게을리 하면 조금 버벅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입이 풀리면 금방 다시 좋아지니 걱정할 필요없다. 어쨌든 발음은 기본 중의 기본으로(우리는 이제 '기본 중에 기본'으로 읽지요.) 한 번만 잘해놓으면 된다. 다만 성우지망생이라면 빠르고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해서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심화반으로 진급하고 얼마 안 돼서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 이 분은 거의 3~4년간 지도해 주신 선생님인데 이분이 그만두셨을 때 나도 얼마 안 있어서 학원을 바꿨다. 어쨌든 처음 오셔서 심화반이라서 발음, 발성은 체크 안 하고 하겠다고 하셨는데 처음 몇 명 들어보시고는

"너희 ㄱ,ㄴ은 아니?"

라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모두

"에이 설마 그것도 모르겠어요? 당연히 알죠."

라고 대답했다.

"그럼 해봐."

라는 말에 다 같이, 'ㄱ,ㄴ,ㄷ,ㄹ,...' 하고 있는데 진짜 잘못된 사람이 있었다. 사실 기초반에서 다 배운 건데 오랜만에 하니까 또 생각 없이 예전 습관이 나오더라. 그리고 새로 심화반에서 합류한 친구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 ㄹ(리을),... ㅅ(시옷),... ㅎ(히읗)'이 정답이다. 많은 분들이 '기윽' 혹은 '기억'으로 잘못발음한다. 'ㅅ'도 '시읏, 시응'으로 잘못 발음한다. 우리나라 자음은 'ㅣ'모음에 해당자음을 받침으로 'ㅡ'로 끝나는 두음절로 소리 내어 읽는데, 예외가 'ㄱ, ㅅ'이다. 이것은 기초반 거의 처음에 배우는 것인데 까먹었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바로 기초반으로 강등된 수업을 받았다. 시험도 쳤다. '심화반'으로 쓰고 '기초재수강반'으로 읽는 듯 했다. 새로 오신 선생님이 대학시절부터 아나운서를 준비하시다 성우가 되신 케이스라서 잘 정리된 교본도 자체제작을 해서 가지고 있었고, 아나운서부터 성우까지 두루 섭렵하신 분이라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이렇게 지금까지도 안잊고 잘써먹고 있다. 지금도 매년 선생님 생일에는 카톡으로 작게라도 선물을 보내드리며 축하하고 있다. 감사하다고... 이렇게 글 쓰고 있는지 모르실 텐데... '내 얘기 쓰지 마.'라고 하시면 어쩌지?


살면서 '설마 그런 것도 모를까 봐'라고 생각하면 행동한 것들이 많다. 운전할 때 교통법규 지키는 것부터,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순서대로 줄 서서 차례차례 들어가야 한다는 것까지... 우리는 파란 신호에도 그냥 횡단보도로 차를 들이밀고, 인도로 오토바이를 몰고 간다. 또 사람이 많으면 앞사람 상관없이 무조건 입구로 돌진한다. 다 배운 건데...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데... 어른이라고, 가방끈 좀 길다고, 회사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고 간과하는 것이 많다. 들키면 '죄송해요. 몰랐어요'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설마 그런 것도 모를까 봐' 그런데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 많더라... 아마도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는 저 노력들이 헛된 노력이 아닌 것처럼...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하려는 사람을 매도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기본 중의 기본인 발음을 몇 년 공부하고서도 제대로 못했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발음이 정확한 사람과 대화를 하면 기분이 좋다. 애매하게 끝나는 게 없어서 찜찜한 느낌이 없다. 그리고 사람이 정확해 보인다. 문자에서 띄어쓰기 잘하는 사람이 신뢰가 가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얼마 안 해본 소개팅이지만 문자 띄어쓰기 잘한 게 굉장한 호감으로 작용했나 보다. 대부분 반응이 띄어쓰기를 잘해서 만나보고 싶어 했으니까... 정확하고 올바른 언어 습관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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