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말을 걸던 순간

드라마 속 한 줄이 내 삶을 흔들 때 (5)

by 철없는박영감
내 기억 속에 변발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오늘은 이연걸이 주연했던 영화 <무인 곽원갑>에 나온 대사... 아니, 대사가 아닌데... 바람소리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하지만 마지막의 그 장면. 그 바람소리만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어쩌면 마지막 30분의 이야기를 하려고 앞부분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마지막 10분이 앞의 지루한 2시간을 훌훌 날려버린 것처럼 (강제규 영화는 '쉬리'도 그렇고 마지막 임팩트가 앞의 루즈함을 모두 상쇄시킨다.) 무인 곽원갑도 이연걸을 변발로 출연시키는 흔하디 흔한 황비홍 라이크 영화가 될 수 있었지만, 그 마지막 이야기 때문에 완전히 달라졌다.


가족을 모두 잃고 폐인이 되어 떠돌던 곽원갑(이연걸 )은 한 시골 마을에 흘러들어 가게 된다. 거기서 그는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모내기 장면이 압권이다. 농사일에 서투른 그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숙련된 조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래도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는 마구잡이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삐뚤빼뚤, 간격도 제대로 못 맞추고, 그저 주변인들 속도 따라잡기에만 몰두한다.


결과는 엉망진창.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 누구 하나 그런 그를 탓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한다. (아~ 사실 여기부터 감동 먹었음) 그 누구도 서툰 그를 나무라지 않고, 하려고 하는 마음만 바라본 듯하다. 못한다고 나무라지 않고, 쓸모없다고 왕따 시키지도 않는다. (아~ 글로 쓰기 어렵다. 그냥 느껴야 하는데...)


어쨌든 그런 그의 실수를 뒤에서 조용히 누군가가 고쳐주고, 잘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아마 처음에 그를 내쳤다면, 나중에 마을로 쳐들어온 악당들에게 마을은 쑥대밭이 됐을 거다.


지금의 시대가 농경사회였다면 대성했을 성실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이런 시대에 태어난 게 운이 없는 거지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성장하는 법. 점점 일이 손에 익고, 익숙해지며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불어오는 바람' 장면이 나온다.



어느덧, 일하다가 산줄기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게 된 곽원갑. 처음엔 왜 사람들이 일하다 말고 가만히 서 있는지 몰랐던 그는, 남들이 쉴 때 조금이라도 앞서나가려고 혼자 일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이 말해준다. 그는 이제 과거를 잊고 완전히 동화되었다고... 그 순간, 바람이 말을 건다.


이제 너도 우리와 함께 숨 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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