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에게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다.
추정컨대, 시작은 그 사건이었을 것이다.
부단장이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이사 올 때 충전해 둔 지역화폐가 있었다. 혼자 사는 데다 집에서 거의 밥을 안 해 먹다 보니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에도 토요일은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일요일은 다음날 새벽같이 꾸러미 작업을 나가야 했기에 교외로 나가거나 뭔가를 도모하기엔 늘 부담이 컸다. 특히 비가 오는 주말이면 일요일 오전은 전화로 시작됐다. 섭외 농가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비가 오고 병충해가 와서 납품이 어렵다”
“수확은 했는데 이 가격으론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비 때문에 농사 망쳤다”
이런 전화가 오면 다른 농가를 급히 섭외해야 했다. 그 순간 일요일은 사라졌다. 게다가 새로 섭외된 농가들은 장사치처럼 몸값을 부풀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은연중에 ‘다음엔 빼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상정이라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양심상 정말 그럴 수 없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또 살살거리며 전화를 걸었다. 공무원의 숙명 같은 거라고 하겠다.
그렇게 7월에 충전해 놓은 지역화폐는 9월이 다 지나도록 3분의 1도 못 쓰고 있었다. 그래서 출장 나올 일이 있으면 사무실에 커피 캐리어를 들고 들어가고, 꾸러미 상차 작업을 도와주는 기간제 근로자에게 소고기를 사 먹이기도 했다. 친구들을 불러 소고기를 사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역화폐는 화수분처럼 줄지 않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분명히 부단장은 막 열심히 나서서 일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파티션 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던 누군가가 없으니,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팀원들도 같은 마음이겠거니, 지역화폐를 쓸 기회다 싶어, 그날도 따아를 사다가 돌렸다. 그때 단장이 물었다.
“이걸 왜 사?”
“그냥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런 제안을 했다.
“내가 쏠 테니 다 같이 영화 보러 가자”
오~ 선한 영향력…?
그런데 영화 보러 가기 직전, 이게… 참. 일단 영화 선택권이 없었다. 환경에 관한 영화라더니, 말로는 '기후 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지만, 다녀온 사람들 말로는 그저 화석연료 감축에 관한 내용뿐이었다고 한다.
뭐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내가 이렇게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는 이유는, 한 환경단체가 주최한 행사였고, 우리는 그저 ‘동원’된 것이었다. 더구나 개인 연차를 쓰고 가라는 말에
“안 갑니다. 남아서 민원 전화받겠습니다.”
라고 선언하고 가지 않았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단장은 나를 계속 팀에 두면 민심에 이반이 일어날까 걱정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후로도 매주 월요일 꾸러미 작업이 있었기에 주말 워크숍이나 행사에는 자연스럽게 빠지게 됐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로 단장은 괜히 와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꾸러미 작업은 다른 날로 미뤄도 되는 거잖아”
“여긴 공동체 생활이야. 행사엔 다 같이 참여해야지”
그야말로 꼰대짓의 연속이었다. 특히 앞서 말한 지역 농협 조합장들과 시장이 함께 가는 워크숍에 빠지고 나서부터는 그 집요함이 더 심해졌다.
이미 정년퇴직한 전직 농협 조합장 출신의 단장이, 현직 조합장과 그 직원들을 집합시킨다? 게다가 현재 사이 안 좋은 시장까지 불러서 워크숍을 연다? '안성 농업의 미래를 협의하기 위한 워크숍'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나는 아직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단장 생각은 그런 자리에서 자신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직원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체면이 서고, 명분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게 불편했을 것이다.
퇴직이 결정되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
나중에 다른 팀원에게 들은 바로는, 뭐 별로 큰 의미 없긴 하지만, 빌런 어공이 단장에게 '박주무관은 컨트롤이 안 되는 팀원'이라고 보고했고, 단장은 '내가 나서서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짝짜꿍을 꾸몄다나 뭐라나? 누군가를 컨트롤하겠다는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너나 잘하세요.' 이런 말이 괜히 유행한 게 아니다.
더 가증스러운 건 사무실에 빌런 어공과 단둘이 남겨졌던 어느 날. 그자는 나에게.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다."
"단장님 앞에서 눈물을 좀 보였다"
며 위하는 척을 했다.
세 살 먹은 아이나 할 법한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하는 건지. 어쨌든 시간이 좀 앞당겨졌을 뿐,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나오려던 나의 계획은 실행됐고, 세 컨트 백수 라이프가 시작됐다.
낯선 사람에게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다.
인생이라는 길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자 철로에서 고속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놓아진 길을 따라 줄줄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다가, 고급 세단, SUV, 소형차, 경차, 대형 트럭이 마구 뒤섞여 한데 달리는 그 무법천지에서, 그래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연료가 떨어지는지도 모른 채, 계속 가속 페달을 밟았다. 가속도는 무섭게 매력적이었고, 금방 속도감을 잃게 만들었다. 뒤쳐지는 차를 비웃었고, 빠르게 앞서지 못하는 차에 하이빔을 날렸다. 이대로 밟아서 하늘까지 날아오를 기세로...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목적지를 지나쳐 있었다.
헉! 되돌아가야 했다. 반환점을 돌듯,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듯,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고속의 삶이 아닌 마치 국도를 달리는 듯한 저속의 삶, 자유로운 삶의 노선에 접어들었다. 내비게이션을 보긴 했는데, 업데이트가 안 돼서인지 길이 아닌 곳을 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노래가 들려오던 때, 어쩌다 보니 '안성'이라는 곳에 오게 되었고, 잠시나마 그 안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안성은 나에게 휴게소의 도시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많이 지나다녔으리라. 지금은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양 이렇게 기록을 남기지만, 사실 돌아보면 이 휴게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낯설지 않았다.
내가 모르고 지나쳐온 그 표정이었으리라. 군대에서 고만고만한 나이들끼리 모여 한 달 일찍 왔다는 이유로 선임과 후임 되어, 정말 누가 누구를 컨트롤한다는 건지, 정말~! 사회에 나와서는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외치며 기고만장하여 선배, 후배를 다그치고 머리 끄덩이를 잡고서라도 제 할 일을 하게 만들겠다는 위선으로 들들 볶았다. '내 말이 곧 진리요'라는 오만함으로 상대방에게 '나태'라는 도장을 찍어 신입사원에게 사직을 권고하기도 했다. 정말 누가 누구를 욕해? 나나 잘하세요.
어쩌면 안성에서의 지난날은 '크리스마스 악몽'의 스크루지 영감처럼 깨닫게 해 주려는 신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반성한다. 아직도 내가 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라면, 휴게소의 도시 안성에서 좀 쉬면서 나머지 인생의 여정을 잘 달릴 수 있을지 점검해 보라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이렇게도 반성해 본다. 오늘 지나쳐온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