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는 음식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던데...

오늘 뭐 먹지로 고민하지 말고 해놓고 기다리자…

by 철없는박영감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와있으면 혼자 있을 때는 신경도 안 쓰던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해야 한다. 다이어트가 정체기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빠질 생각을 안 하고 있는지 오래됐는데 부모님은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고 안 먹고 다니냐고 걱정한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메뉴선정을 미룬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하라고… 집에서 잘 먹고 다닌다고 변명해 봤자 한 귀로 흘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처음 며칠간은 이것저것 메뉴를 생각해 본다. 그런데 사실 메뉴를 얘기해도 결과는 항상 삼겹살에 상추다. 다른 메뉴를 말해도 진짜 먹고 싶냐는 대답이 돌아오고, 돌고 돌아 답정너인 삼겹살에 상추가 먹고 싶다는 말이 입에서 나와야 메뉴선정 개미지옥이 끝난다. 그럴 거면 그냥 그거 먹자고 하지... 진짜 말만 하라는 아재 개그인가? 이 메뉴도 3일 정도 지나면 슬슬 느끼함 때문에 담백한 것이 먹고 싶어 진다. 그래서 또 메뉴선정 요청이 오면 이 때는 강력하게 고기 좀 그만 먹자고 한다. 하지만 역시나 고기반찬이 없으면 식사한 것 같지 안다고 해서 슬쩍 생선메뉴로 바꾼다. 조리법은 식용유 듬뿍 먹인 구이이다. 그리고 소금을 얼마나 뿌렸는지 혀가 찌릿할 정도로 짠데, 거기에 고추냉이 간장을 찍어 먹자고 한다. 으악! 질색팔색을 하며 제발 고추냉이 간장이라도 빼달라고 저항하지만 이미 대량의 나트륨 때문에 먹는 게 엄청난 고역이다. 잠깐 생선으로 돌아갔던 메뉴가 다시 삼겹살로 돌아가려고 하면 이때부터는 마트에 따라나선다. 삼겹살 못 사게 하려고... 각 종 버섯, 샐러드용 야채, 두부 등을 사면 정육 코너에서 서성이는 부모님을 위해 절충안으로 생닭을 사서 찜닭을 한다. 그렇게 본가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면 몸무게가 3~4kg은 우습게 쪄있다. 그런 루틴으로 3~4개월 지냈다. 이제는 메뉴선정 요청이 오면 고민 안 한다. 삼겹살에 상추라고 말한다. 3일 지나서 고기 물린다고 생선 먹자고 하고, 그 뒤로는 찜닭이다. 요거 다 먹으면 주말에 온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숯불돼지갈비로 외식하고 나면 돌아갈 때가 된 거다. 그런데 이번에는 봄이 되면서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봤다. 냉이가 들어간 알탕... 삼겹살에 삼자도 듣기 싫어서 내가 직접 재료 사다가 요리했다. 이제 정답을 알았다. 내가 식사 준비를 해놓으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간단한 해답을 반년 가까이 지나서야 알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제 메뉴선정 개미지옥에서 탈출이다. 이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음식이다. 오늘 뭐 먹지로 고민하지 않고 해 놓고 기다린다. 해방이다! 삼겹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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