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나를 더 깊이 이해받고 싶다. (1)
공감이라는 우물(坎)에서 벗어나 이해라는 깊은 바다(海)로 들어가다.
1992년도였나, 1993년도였나. 물론 AI나 포털 검색을 통해 정확한 연도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갬성은 그렇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초점을 살짝 흐리게 하고 “그땐 그랬지, 그랬었지”라고 시작하는 것이 바로 추억의 방식이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하며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공감이라면,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서 그 사람의 감정과 기분 속에 푹 빠져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해다. 아, 뇌피셜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우리는 얕디얕은 공감이라는 우물에서 바가지로 물만 길어 올리며, 그 안에 “너를 이해한다”는 입(잎)만 동동 띄우고 있지 않은가. 그 얄팍한 상술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1992년도였나, 1993년도였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가요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성인가요, 소위 트로트와 뽕짝의 판도에서 청소년을 위한 시장으로 재편된 것이다. 서태지를 문화 대통령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뒤로는 아이돌 판이 중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자리 잡다가, 그 중고생들이 성인이 되면서 성인들까지 섭렵하며 ‘짐승돌’이니 ‘성인돌’이니 하는 세대가 있었고, 이제는 세계적인 덕후(오타쿠) 집합소가 된 K-POP까지 이어졌다. 소수와 약자라 여겨지던 마이너 장르들이 대세를 쥐고 흔든 순간이었다. 공감이 이해로 발전하게 된 예시라면 예시라고 하겠다. 뭐라 뭐라 시끄러워도 세상은 여전히 착한 구석을 품고 있다.
그 시절, 자가용이 대중화되면서 주말이면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태우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다녔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다. 라디오나 뽕짝 메들리 테이프를 틀어놓고 신나게 달리는 것. 부모님은 즐거웠겠지만, 어린 우리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던 시기, 서태지가 나타났다. 그 뒤로 차 안의 음악은 우리 위주로 바뀌었다. 우리 집 자가용 안에서도 음악의 주도권이 이동한 것이다. 정확히는 꼭 서태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시절이 그런 시절이었다. 내 머리에 피가 말라가는 그런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최근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처럼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앨범이라는 형식을 모르던 엄마가 ‘사랑이 뭐길래’가 초대박을 치자 ‘타타타’에 꽂혀 처음으로 김국환 앨범을 사달라고 한 것이다. 그 순간, 서로 다른 세대의 취향이 교차하며 이해의 가능성이 열렸다. 단순히 흥에 취하게만 만드는, 누가 부른 지도 누가 연주하는지도 모르는, 오직 작곡가와 작사가만 명확한, 그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들릴 법한 디스코 메들리 노래에서 음악과 아티스트의 세계로 문을 두드린 것이다.
지금 보면 노랫말이 기가 막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아 하하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극 중에서 김혜자가 대발이 아부지의 ‘남존여비’ 구박에 시달리다가 가뭄에 단비처럼 찾아드는 음악이었다. 엄마는 아마 그 김혜자의 연기에 깊이 공감하다가 이해하게 되었고, 똑같이 따라 하는 덕후의 경지에 오른 듯했다. 내가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신승훈, 서태지, 머라이어 캐리를 듣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받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왜 샀던 걸 또 사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테이프가 늘어진다는 것에 대한 감도는 조금 약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에게 이해를 받는가 했는데, 문제는 귀에만 익숙한 이 한 곡을 빼고 나머지는 낯설어서 듣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김혜자가 빠져 있는 그 감성과 그 상황에만 푹 빠져 있고 싶었을 뿐, 앨범의 다른 곡들은 접시를 깨자거나, 축축 쳐지는... 그렇다고 가사가 철학적으로 반짝이거나 화성이 기가 막히는 노래도 아니었다. 그렇게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가 끝나고 엄마는 자연스럽게 탈덕했다.
그러다가 머리에 피가 마르다 못해 커지는 그 시기, 이제는 워크맨을 들고 다니던 시기이고... 고등학생이 되어 부모님보다 더 바쁘게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공부만 하던 시절이라서 가족의 모든 초점이 나에게로 맞춰지던 때이다. 고등학교 수험생에게 그 누가 이길 수 있으랴. 그러다가 아버지가 어디서 듣고 왔는지 그때 레게 음악이 유행하던 때인데, 'You Are My Sunshine'이란 곡을 어디서 듣고 오셔서는 그 테이프를 사달라고 하신 거다. 어딘가에서 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오셨나 보다.
우리 아버지도 참 소박하다. 그 뒤로 우리 집 차에서는 이 노래만 흘러나왔고, 아버지는 엄마와 다르게 앨범 전체를 들었다. 물론 레게라는 장르의 특성이기도 하다. 엄마는 아버지의 이 작은 일탈이 싫었는지 그놈의 선샤인이라면서 타박을 줬고, 어디서 듣고 와서는... 혼자 있을 때나 들으라며 선샤인 금지령을 내렸다. 그 모습이 좀 처량해 보여서 하루는 주말에 집에 와서 아버지랑 거실에서 이 노래를 틀어놓고 신나게 같이 춤을 췄다. 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다시는 하지 못할... 마치 신들린 듯한 퍼포먼스였다. 그렇게 비트에 몸을 싣고 아버지와 함께 덩실덩실 춤추고 나니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아버지가 좀 이해도 됐다.
서두의 던진 말이 이제 좀 이해가 되실런가 모르겠다. '공감은 우물에서 바가지를 담그는 일이라면, 이해는 바다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감정과 기분을 깊이 받아들이며, 흔들림 속에서도 자유롭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타타타'의 첫 노랫말처럼 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 전에 누군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첫걸음은 나를 이해하고 잘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에 대한 연구를... 정확하게는 모르고 막연히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해온 것 같다.
결국 이해란 타인을 향한 시선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나는 나를 더 깊이 알게 되고, 나를 이해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타인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공감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이지만, 이해는 바다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그 바닷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며, 동시에 나 자신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