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읽어내는 시선

Part 2. 나를 더 깊이 이해받고 싶다. (3)

by 철없는박영감
인생은 참 묘하다.


‘나를 읽어내는 시선’이라는 주제를 쓰기로 한 오늘이 공교롭게도 면접을 보는 날이다. 시간제 임기제 공무원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뒤 집에 머물던 어느 날, 평소 도서관에서 한 번 일해보고 싶다는 내 말을 기억한 친구가 마치 A/S라도 하듯 공고문 하나를 보내왔다. 기간제 근로자로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정규직이라면 사서 자격증도 있어야 하고 경력도 필요하지만, 주말 보조 아르바이트 자리라면 도전해 볼 만했다. ‘뭐 되든 말든 까짓것 도전!’ 하고 지원을 결심했다. 친구에게 '이상한 자리 잘못 추천해 준 죄... 혹시 그거 사죄하는 의미에서 어디 한자리 꽂아주는 거냐'라고 물었다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라며 괜히 핀잔만 듣고 공고문을 자세히 살펴봤다.


도서관은 생각보다 많았다. 총 여섯 곳에서 주말 보조 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3곳의 도서관을 추렸다. ‘혹시 폭설이 와서 차가 못 움직이면 걸어서라도 가야 하니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답사를 계획해 직접 걸어가 봤다. 첫 번째 도서관은 역사가 가장 깊은 곳이지만, 걸어서 도착까지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었다. 두 번째는 가는 길이 매연으로 가득해 삭막했다. 결국 중도포기.


마지막으로 남은 도서관은 인터넷 검색찬스로 대신하기로 했다. 사진 속 시설은 새것 같고 분위기도 화사했다. 물론 포토샵의 위엄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끌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허허 내가 뭐라고 도서관 면접을 보고 다니지?' 그리고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면접이란?'으로까지 번졌다.


'음... 면접... 결국 나를 읽어내는 시선에 맞서는 자리 아닌가? 구직자도 암행어사처럼 비밀감찰을 다니는데, 지원처는 오죽하랴. 그들은 또 다른 시선으로 나를 읽어내려 하겠지..' 그래서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결국 제일가고 싶은 곳으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면접시험 준비도 멈췄다. 면접관의 시선은 단순히 나의 스펙이나 답변을 읽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표정, 말투, 태도, 심지어는 잠깐의 망설임까지도 그들의 눈에는 기록되고, 그 시선은 나를 평가할 것이다. 그러니 답변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닐 테다. 예상질문을 뽑아서, 모범답을 정리하고, 녹음기처럼 주르륵 읊는 연습까지 한 성의는 평가하겠지만, 아르바이트 뽑는 데 그게 중요할까? 특히 서민층 일자리일수록 더 그렇다. 그들이 진짜로 묻는 것은 '이 사람이 내 말을 얼마나 잘 들을 것인가, 자기 성질 죽이고 얼마나 동화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다. 타인의 시선은 그렇게 나를 규정한다.


관계란 결국 포장의 기술 위에 놓여 있다. 처세술 책에서 말하듯, 먼저 상대의 말에 공감과 동의를 표시한 뒤에야 비로소 내 주장을 펼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진리와 진실조차도 어떻게 포장되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진다. 시선은 언제나 그렇게 진실을 덮고, 또 다른 진실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나를 어떻게 읽어내느냐이다. 면접이라는 순간은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자리이지만, 그 시선에만 의존한다면 나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를 읽어내는 시선은 남의 눈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남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그 헛헛함이 결국, 싫어도 공감을 찾게 하고, 사람을 찾게 하고, 친구를 찾게 하고, 가족을 찾게 한다. 관계를 포기하면 약한 인간이지만, 자아는 강해지고, 관계를 놓지 않으면 사회적 동물로서 불안은 덜지만, 결국 평범한 이름 없는 '박 아무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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