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나를 더 깊이 이해받고 싶다. (6)
머라이어 캐리
중학생의 눈에는 편안하고 티 없고 행복해 보였다. 처음 그녀를 본 건 ‘Dream Lover’ 뮤직비디오였다. 화면 속의 머라이어 캐리는, 내가 바라는 청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선진국'에 대한 동경 정도가 아니었을까? 나는 순식간에 그녀의 ‘Fantasy(공교롭게 앨범명이다)’에 빠져들었다. 단숨에 팬이 되었고,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무한반복재생했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가성은 내 몸을 타고 흘렀고, 피와 살이 되었다.
그래서 늘 그녀와 만나는 상상을 했다. 같이 이야기 나누고, 커피도 마시고, 커서는 꼭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망상에도 빠졌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사인을 받기도, 같이 사진을 찍기도, 포옹을 하기도 했다. 팬이라면 누구나 하는 요구들이었다. 그때는 그런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제는 순수와는 거리가 먼, 현실에 사는 아재가 되었지만, 그녀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래서 팬들의 덕질 영상은 너무 공감된다. 어느 팬미팅 영상에서, 이정재에게 '잘생김'이 묻었다며 본인의 팬심을 유쾌하게 드러내는 영상을 봤는데, 그 팬을 뒤풀이 식사자리에 초대했다는 말에, '아~ 저 정도 센스는 되어야 하는구나'라며 헛물켜던 중학생의 나를 씁쓸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저걸 보고 어디 가서 똑같이 따라 하고 있을 중학생의 '나',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가정법의 '나'때문에 괜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스타들에게 진짜로 인상 깊게 남는 건, 팬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는 순간이 아닐까? 누군가는 울먹이고, 누군가는 말문이 막혀 입을 막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못 하는... 어디서나 볼 법한 식상한 반응이더라도, 그 모든 반응이 계산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라면?'
반대로,
'어딘가에서 배워온 듯한 반응, 좋은 팬처럼 보이기 위한 연출은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당하는 입장에서는 괴리감이 들고, 한 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결국 진짜로 기억에 남는 건, 잘 보이려는 계산이 아니라 순수하게 드러난 결이 아닐까? 나는 전자가 더 와닿지 않을까?'
현자가 되려는지 갑자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 충실해라, 나를 돌봐라, 나를 아껴라'라는 말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의 출발점이구나~ '나를 대하듯 남을 대하라'는 말이 확 깨우쳐졌다. 내가 나를 존중할 때만, 타인을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고,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만, 타인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때의 태도는 누군가가 ‘너는 용기 있는 사람이야’라고 북돋아줘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 행동인데, 다른 사람 눈에는 용기로 보이는 것이다. 용기는 정의할 수 있는 명사가 아니라, 순수함이 드러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빛이다. 숨겨진 결을 드러내는 일은 곧 나를 존중하는 일이고, 그 존중이야말로 타인을 향한 가장 깊은 배려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