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명하지 않는 글

Part 2. 나를 더 깊이 이해받고 싶다. (8)

by 철없는박영감

나는 내가 좋다


어쩌다가 예전의 사진을 보면, 그 안에는 아직 젊고 머리숱도 많은 내가, 그때의 최신 트렌드 패션 아이템을 장착하고 울상을 짓고 있다. 연말 '성지'라고 불리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전혀 성스럽지 않은 외모와 표정으로 머리에 동물귀를 만들고 유치하게 찍은 사진도 있고, 손에 블루투스 셔터를 들고 괜히 무심한 척 딴 데 보며 찍은 사진도 있다. 골프가 유행하던 때에는 매 라운드마다 패션쇼를 열었다.


더 나아가 이삼십 년 전 앨범을 펼치면, 스키니 진으로 닭다리를 드러내는 것에도 서슴없는 성장기의 내가 있다. 지금 보면 극혐이지만 그때는 나만 그러고 다닌 게 아니었으니까... 고등학교 교복에 레옹머리가 가당키나 하냐고, 하지만 수학여행 사진에는 곰 같은 0.1톤의 덩치로 레옹머리를 하고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여드름 난 얼굴의 내가 있다.


이 사진 속에는 온갖 복잡한 감정이 다 들어있다. 최신 유행을 좇지만 항상 다른 데 콤플렉스가 있었던 그때의 나는 '나'를 참 싫어했다.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매력 없고 찐따고 찌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돈 굳었다고 부러워하지만, 세기말 연예인들은 아이롱파마 세팅으로 대동단결하여 빳빳한 생머리로 쇼에 등장했고, 나 같은 여유증이 콤플렉스인 곰돌이들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쫄티를 입고 다녔다.


지금도 나이 먹은 거 말고는 크게 변한 게 없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너무 좋다.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도 너무 좋으니까... 뭐가 그렇게 좋을까? 아니 좋아졌을까? 어쩌면 이 글의 시작이었을지 모를 변화. '나는 왜 내가 좋아졌을까?'


답은 아마도 자기 결정권일 것이다. 내 삶은 그걸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어딘가 얽매이지 않는 삶. 친구가 없어도, 연인이 없어도, 가족이 없어도 되는... 오롯이 내 선택으로 내 인생을 사는 그런 삶이다. 옆에서 아무리 조언을 하려고 해도 잔소리정도로 치부하고, 그냥 내 갈 길 가는 삶. 그렇다고 막 범죄를 저지르거나 개망나니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왜? 배운 사람이니까... 크크크


옛날에 동대문을 가면 속어로 '삐끼'라고 하는 호객꾼들 사이에서 나에게 딱 맞는 옷을 골라 드는 삶? 그동안 고단했던 이유는 흥정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애교와 동정심으로 어필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상품 트집 잡으며 깎아보려다 욕도 먹어보고, 나중에는 자기만의 확고한 기준으로 '이 가격 아니면 안 사!'라고 으름장을 놓다가 놓치기도 해 봤다.


그러다가 이제는 가치를 내가 매긴다. 싸구려도 내 마음에 쏙 들면 비싼 값을 치르고, 아무리 비싸고 명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보세 취급한다. 중간에 온라인 홈쇼핑이라는 이상한 흥정에 잠깐 눈과 손이 따로 논 적도 있지만, 잠깐의 외도였을 뿐, 이제는 실체를 찾아 헤맨다. 더욱이 이제는 내 마음에 쏙 들면 웬만한 비싼 것들도 살 수 있는 구매력이 생겼다고 할까? 즉 제 값을 치르는 甲의 안목과 선택의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격년으로도 한 번 옷을 살까 말까 하지만 언제나 성장기는 행복한 법. 기세가 무섭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내가 왜 이 옷을 골랐는지, 왜 이 선택을 했는지, 왜 내가 나를 좋아하는지. 설명은 변명으로 흐르기 쉽지만, 좋아한다는 마음은 설명이 필요 없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순간, 그 자체가 가장 깊은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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