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나를 더 깊이 이해받고 싶다. (9)
동냥
우리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털어놓을 때는 어느 정도 기대하는 반응이 있다. 예상대로 적절한 반응이 나오면 공감, 이해, 베프, 솔메이트, 아군이 되고,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무반응 혹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오면 답답이, 벽창호, 웬수, 꼰대, '너 T야?', 적군이 된다.
보통 딸들이 아빠한테서 이런 감정을 많이 느낀다는데, 그냥 들어만 줘도 될 것을... 아빠들은 꼭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딸들은 그저 자신의 감정을 살펴달라는 요구인데, 아빠들은 맥락과 논리를 따져가며 판단을 해서 법봉을 탕탕탕 쳐주려는 것이다. 엄마와 아들 사이에도 비슷한 문제는 발생한다. 아들은 그냥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달라고 그렇게 소원소원하는데, 엄마는 걱정돼서 어떻게 그냥 두냐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그렇게 참견을 참견을... 잔소리를 잔소리를 한다.
예전에는 이런 글도 본 적이 있다. 책의 주 소비계층이 2,30대 여성이니까 브런치에 4,50대, 특히 남성 작가의 진입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장 자체도 웃긴데, 그 근거로 든 책의 주 소비계층이 2,30대 여성이라는 말이 어디서 왔나 살펴봤더니,
「2023년 기준, 20대의 74.5%, 30대의 68%가 최근 1년간 책을 읽었다고 응답해, 20·30대 여성의 독서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라는 기사 한 줄을 인용한 듯하다.
음... 결론을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엉터리다. 통계 집계 방식인 '책을 읽었다고 응답'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도서관 대출 현황도 빌려갔다가 안 읽고 그냥 반납하는 줄 누가 아는가? 도서관 카드에 찍히는 대출 이력으로 그 사람이 책을 읽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읽었다는 책도 30분이 채 안 돼서 다 읽을 만한 여백의 미만 살아있는 책이라면... 권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들의 소통의 장으로 남겨달라는 요구를 다른 계층의 진입 장벽을 높임으로써 확보하려는 꼼수다. 그리고 그 논리로 든 책의 주 소비계층이라는 주요 근거도 엉터리다.
이런 글도 본 적이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식의 제목이었던 것 같다. 라이킷이 돌아오지 않는 작가나, 구독하는 작가의 수가 적은 작가라면, 구독도 라이킷도 안 누른다는... 음... 도대체 뭘 비판하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은 글이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에둘러 말하지만, 결국 본인한테 구독을 안 할 것 같은 작가는, 글이 아무리 좋아도, 라이킷도 구독도 안 하겠다는 선언문 아닌가? 에라이~! 이 글의 본질은 시기와 질투다.
뭐 다 좋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다양성은 늘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결국 공감, 이해라는 것의 본질이 왜곡되어 '동냥'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 나의 세상은 '적군과 아군' 이분법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은, 그렇지 않은 침묵하는 다수가 더 많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시끄러운 사람이야 항상 시끄러운 법이고, 그렇지 않은 다수를 향해 오늘도 내 맘대로 글을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