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나와 연결되는 사람을 찾고 싶다 (2)
엑설런트 어드벤처.
90년대에 나온 영화 제목이다. TV에서 더빙된 외화를 보여주던 시절, 초등학생이었나 중학생이었나,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내 기억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연이 무려 키아누 리브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가까운 미래, 두 주인공은 '음악'으로 세계 평화를 이뤄낸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고등학교 역사 과목에서 낙제하면 세계 평화는 물 건너간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고등학생 시절로 시간여행자를 보내 역사 과목에서 낙제하지 않도록 한다는 전형적인 미국식 틴에이저 상업영화다.
내가 이 영화를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의 모험 이야기도, 얼빠진 청년들의 정신 나간 해프닝도, 역사 속 위인들의 등장도 아니었다. 오직 초반 설정, '음악으로 세계 평화를 이뤄냈다'는 그 전제가 나를 2시간 동안 TV 앞에 붙잡아 두었다. 글도 그렇다. 치밀한 구성이나 빠른 전개보다 전제 하나만으로 독자의 마음을 붙잡는 경우가 있다.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까? 이럴 것이라는 예상.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을 수도 있고,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다. 예상이 들어맞으면 공감이 되고, 빗나가면 오히려 작가의 세계를 더 알고 싶어진다. 결국 글은 독자의 예상과 어긋날 때조차 연결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재미없어 보이는 영화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가 될 수 있고, 내가 듣기에 시끄러운 음악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이해란 바로 이런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 기준이 아니라, 당신의 기준에서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나를. 그 다름을 악연이 아니라 인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내 삶은 엑설런트 어드벤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 세명을 이끌고 황금 같은 주말 오후에 돈을 내고 '다세포 소녀'라는 어이없는 영화를 보러 간 나. 영화의 선택 이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은성'이라는, 지금의 서태지의 부인으로 더 잘 알려진, 배우가 좋아서였다. 그래서 한번 더 묻는다. 당신은 나를 이해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