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나와 연결되는 사람을 찾고 싶다 (6)
우리
우리는 공동체적 대명사다. 나 그리고 너를 동시에 지칭한다. 그래서 '우리의'라는 소유격은 내 것인데, 네 것도 되고, 네 것도 결국 내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공유, 공동관리를 깔고 있다. 우리 엄마,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까지... 1인칭, 2인칭을 가리지 않고 모두 울타리 안에 품는다. 우리는 그런 관계다. 따뜻하고 아늑하고 포근한 관계가 우선 떠오르지만 아주 큰 오해가 도사리고 있다.
울타리라는 말이다. 그래서 가둔다. 즉,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우리라는 범주에 둔다는 것은 나의 울타리 안에 누군가를 가둔다는 말이다. 너와 나를 우리 안에 가두고 '우리'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싸잡아'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다. 같은 우리 안의 사람들은 동급으로 취급받는다. 엄마와 자매급으로 만드는 '이모'라는 낱말은 어느새 중년의 여성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우리’라는 말은 언제나 따뜻함만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 낱말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울타리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벽이 된다.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은 곧 ‘타자’로 규정되고, 그 순간 관계는 이해가 아니라 오해로 기울어진다. ‘우리’라는 말은 따뜻한 울타리일 때는 안도감을 주지만, 차가운 벽이 되는 순간에는 배제와 상처를 남긴다. 그 벽 앞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의심하게 되고, 관계는 오해 속에서 흔들린다.
결국 ‘우리’라는 말은 연결의 언어이면서도, 단절의 언어가 된다. 그래서 '우리'라는 말은 언제나 양날의 검처럼, 연결과 단절을 동시에 품고 있다. '우리 안이다', '우리 아니다'... 완전히 똑같이 발음되는 이 두 문장은 완전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