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을 방해하는 벽

Part 3. 나와 연결되는 사람을 찾고 싶다 (7)

by 철없는박영감

커가면서 드는 생각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했던가. 나는 적어도 그렇게 자라야 한다고 믿는다. 엄마가 시켜서, 아버지가 기대해서 억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에서 배운 것을 기반으로 내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솔선수범이다. 아이가 이렇게 크길 바란다면, 부모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교육이다. 학원과 선행학습, 사회생활에 필요하다는 레포츠, 못하고 관심 없어도 참고 인내하며 도전하는 정신을 ‘말’로 가르치는 것은 반항심만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랬다. 부모님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부모와 싸운 것이 아니라, 시대가 강요하는 도덕적 당위성과 사명감과 맞섰던 것이다. 커갈수록 탈출과 독립을 꿈꾸며 이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너나 잘하세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시키는 노예적 갑질이 싫었다.


커가면서 마주한 벽은 부모의 기대에서 시작해, 사회가 정해놓은 당위성과 기준으로 이어졌다. 요즘은 유튜브의 ‘정답’ 같은 콘텐츠가 또 다른 벽이 된다. 벽은 연결을 돕는 듯 보이지만, 실은 나를 가두고 너와의 진짜 연결을 방해한다. 그 벽을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넘어설 길이 열린다.


예전엔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누구만큼 한다” 같은 제목이 서점가를 휩쓸었다. 명문대 출신이면 서류심사가 먼저 통과되고, 믿고 보는 배우, 감독, KBS 성우출신이면 무명이라도 일단 써보고, 상견례 프리패스상 같은 말들이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라벨의 힘을 키웠다. 이런 라벨은 또 다른 벽이 된다.


그래, 선입견이라는 좋은 낱말이 있다. 선입견은 처음에는 관계를 효율적으로 맺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규정하고 배제하는 힘으로 변한다. 선입견은 극단으로 기울어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라, 사형제를 부활시키라, 외세를 몰아내라, 심지어 인간을 해충 취급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게 만든다.


우리네 부모님 세대가 이런 말을 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국방의 의무를 사회의 근간이라 말하면서도, 내 자식만은 예외가 되길 바라는 모순이 슬프다. 자식 가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그것이 잘못된 방향일 때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잘못이라는 것을, 그리고 잘못을 용서해 준 사회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을...


요즘 ‘영포티’를 보면 나 또한 부모님과 같은 시선을 갖게 된다. 반성한다. 모두가 선입견을 가진다. 내가 던진 말은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벽은 앞뒤가 없다. 내가 마주하느냐, 등지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 단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인식하고, 느끼고, 배우려는 태도는 놓치지 말자.


말과 행동, 생각은 숙성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근거 없는 추측과 성급한 판단은 설익은 과일이다. 식탁에 오르면 음식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땅에 묻어 거름이 되게 하자. 시간이 지나 후세를 키우는 토양이 된다면, 우리는 벽을 허물고 연결을 회복할 수 있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내 기준으로만 보지 않는 길 위에 나를 심어두자. 그 길 위에서 나는 자라며, 또 다른 연결의 씨앗이 된다. 언젠가 그 씨앗들이 모여 숲을 이루면, 벽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숲은 울타리가 아니라, 서로를 품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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