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나와 연결되는 사람을 찾고 싶다 (8)
나는 유재석이 싫어요
'나는 김연아가 싫어요'級의 이 단순한 고백은 누군가에게는 의아함을,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그 순간 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 이 순간에서 대화가 단절되고, 이해할 수 없는... 아니지 이해하기 싫은 사람으로 전락한다. 옛날 말로 무서워서 말을 못 한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다.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은 말하지 마!' 얼마 전까지 '답정너'라는 표현을 썼던가?
사실 이런 표현들은 사춘기 또래들 사이에서 '이런 친구가 싫다, 꺼려진다, 따돌리고 싶다'는 어린 감정을 전 세대로 확대 배척하면서 생긴 것이다. 이런 것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남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며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에 사로잡힌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와 환장의 컬래버레이션을 한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대화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이다. 내가 싫어하는 이유를 말하고, 너는 좋아하는 이유를 말할 때,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엿본다. 진짜 대화란, 설득이 아니라 발견이다. 내 말속에서 너를 발견하고, 네 말속에서 나를 비추어 보는 것. 그때 비로소 연결이 시작된다.
진짜 대화는 상대를 바꾸려는 욕망이 아니라, 다름을 통해 나를 확장하려는 용기다. 싫다와 좋다, 옳다와 그르다의 경계를 넘어 서로의 세계를 엿보는 순간, 우리는 연결된다. 그 연결이야말로 대화의 진짜 목적이다.
나는 김연아는 좋아한다. 그런데 유재석은 싫다. 정확히는 그 브랜드, 대명사격의 개념이 싫다. 음... 남성우월주의자들이 자신은 PC를 싫어하진 않지만 'PC(Political Correctness)'가 뭍은 콘텐츠는 안 본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돌려서 말하지만 이건 그냥 PC가 싫다는 거다. 이런 남성우월주의자들은 도리어 싫은 걸 싫다고 못하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모순에 빠진다.
내가 유재석을 싫어하는 이유는, 첫 번째, PC와 비슷하게, 매우 높은 도덕적 이상향을 사회적 기준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MC의 득세다. 한 때 토론 면접이라는 것이 유행했는데, 그때 면접관들은 자신의 호불호를 정확히 밝히는 '플레이어'보다는 중재를 하는 'MC, 감독'을 더 선호했다. 가치관의 다양성을 기업의 이익에 녹여내기 위해서 그랬다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너무 정제된 사회가 된 것 같아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이와 비슷하게 마지막으로 그런 한계를 넘기 위해 인물을 바꿔가며 누군가 희생양을 만들어 자신의 위치를 다져왔다는 점이다. 이런 말을 하면 대중은 우리나라에서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라며 두둔하고 나서겠지만, 이것도 그런 취급의 참신함 때문에 동조한 것이지, 진짜 그랬다면 이미 대통령, 아니면 최소한 종교지도자 정도는 되었어야 한다.
결국 내가 유재석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사회적 기준과 브랜드화된 권위를 불편해한다는 뜻이다. 진짜 대화는 이런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꺼내놓을 때 시작된다. 좋아함과 싫어함, 동의와 반대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발견이야말로, 진짜 대화의 목적이다.
대화와 이해 없는 일방적인 주장만 펼치는 사회가 계속된다면, 곧 다수결의 종말을 선언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수결이 더 이상 사회 정의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비용이 증가함은 물론이요, 끝은 전쟁과 같은 비극일 수 있다. 진짜 대화가 살아 있는 사회라면, 다름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시작이 된다. 싫다와 좋다, 옳다와 그르다의 경계를 넘어 서로의 세계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 길 위에서 인연을 만들어가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꾼다. 나는 나와 연결되는 사람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