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의 충돌

Part 4. 내 안의 조각들을 정리하고 싶다 (3)

by 철없는박영감
겉멋을 걷어내자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데... 그 한걸음이 너무 요란한다. 마치 첫걸음과 마지막 걸음이 똑같을 거라는 착각을 하는 듯하다. 걷다 보면 체온도 올라가고, 발에 피로도 쌓이고, 신발도 해질 텐데... 게다가 해도 지고, 온도, 습도도 시시각각 변할 텐데... 마치 한걸음 내딛는 그 순간 그대로 천 리 길에 도착하는 것처럼 말이다. 흐흐흐 갑자기 무슨 소리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시작하려는 것을 탓해보려고 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에게 물었다.


"큰 아빠가 입학 선물로 필요한 거 다 사줄게~! 다 말해!"


그러자 아이는 눈을 못 마주치며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공부에 필요한 책을 사달라고 했다.


옆에서 듣던 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손자 기특하다며 '궁디팡팡'을 시전 했지만... 난 좀 다르게 보였다. 왜 갖고 싶은 걸 말하는데 저렇게 풀이 죽었을까? 진심이 아니라는 소리다. 엄마가 시켰든가, 아빠가 주입했든가... 둘 중에 하나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나 어릴 때, 좋아하는 과목이 뭐냐고 물었을 때, 공부 잘하는 아이처럼 보이려고 "산수요!"라고 대답하던 그때와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에이~ 아닌 거 같은데? 닌텐도 갖고 싶은데... 엄마한테 혼날 것 같으니까 책 사달라고 한 거 같은데? 닌텐도 갖고 싶으면 갖고 싶다고 말해도 돼~!"


그제야 아이의 눈에 생기가 돌면서... 자기도 멋쩍었는지, 차마 말로는 못하고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큰아빠가 사줘도, 집에서 엄마 몰래 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 이렇게 할까?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학교 친구들이랑도 사이좋게 지내면, 큰아빠가 엄마한테 우리 조카한테 닌텐도 사줘도 될까요? 물어봐서 엄마한테 허락받고 그때 사자! 어때?"


내 생각에는 참 합리적이고 평화로운 방법 같았는데, 아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런 약속은 하지 않겠단다. 싫단다. 어! 나 어릴 적엔 그런 공수표도 막 날리고 했던 거 같은데... 우선 갖고 싶은 거 득하는 게 먼저 아니었나? 그런데 이건 우리 조카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나의 첫 반응은 '요즘 아이들은 왜 그래? 라떼는 앙구랬눈뎅?'였다.


친구의 아이들을 어쩌다 만나서 '너 공부 잘한다며? 나중에 SKY 대학교 가면, 아저씨가 큰 선물 해줄게 어때! 도전해 볼래?'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건 싫다고 한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안다고... 첫 느낌은 도전의식 부족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 이게 맞지! 내가 잘못했네~ 내가 아이들에게 노예가 되라고 했네... 몹쓸 어른이네... 나이만 많았지, 지가 뭐나 된 줄 알고...' 그야말로 꼰대짓을 하고 있었다.


애들이 나보다 낫네


겉멋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어른은 권위와 체면으로, 아이는 부모의 기대와 두려움으로 겉멋을 두른다. 나는 그것을 벗겨내지 못한 채, 오히려 또 다른 겉멋을 덧씌우려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을 탓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 아이들의 희망직업이 '유튜버'였다지? 이제는 물어보면 '돈 많은 백수'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리고 잔인한 동심이지, 철부지들은 엄마, 아빠에게 왜 재벌 못됐냐며... 엄마 아빠가 무능력해서 자기가 지금 불행하다며... 사춘기를 빙자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오호~ 통재라!'를 외치는 분이 있으시다면, 반성하셔야 한다. 당신도 겉멋에 빠져있다. 우리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올챙이 적 생각을 하셔야 한다. 어릴 땐 무시당하고 얕잡아 뵈기 싫어서 더 명품 걸치고, 디자이너 이름 외워서, 일부러 패션용어 섞어가며 쇼핑하고 대화를 했다. 조금 더 사회물이 들어서는 괜히 철학자 이름 들먹이고, 영어와 시사용어 섞어가면서 식자층 행세도 했다. 그런데 진짜 요즘말로 '어쩌라고?'소리가 절로 나온다.


겉멋은 나를 지켜주는 갑옷 같았다. 하지만 그 갑옷은 너무 무거워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를 짓눌렀다. 무엇보다 '마음의 녹슨 갑옷'은 금방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 '시간 한정 절대적 가치'라는 아인슈타인을 넘어서는 '특수 상대성 짬뽕 이론 곱빼기'같았다. 상대적 가치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했다고 할까? 적폐, 고인물, 꼰대, 똥고집 등등 여러 낱말로 표현될 수 있겠다.


겉멋은 결국 나를 지켜주는 갑옷이 아니라,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다. 지금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드는, 그 조각들이 '나'라는 감옥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흠집을 냈고, 그 흠집 속에서 비로소 빈약한 속살을 드러냈다. 그땐 정말 몰랐다. 겉멋이 내 바닥을 더 잘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겉멋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벗겨내려는 순간마다 속살을 감추려는 듯이 또 다른 겉멋이 재빠르게 출현한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본질에 가까워진다. 겉멋 벗기기는 어렵다. 40년을 넘게 벗겼는데... 이제 첫 단추, 하나 풀었다. 정말 인생은 비효율 그 자체다.

매거진의 이전글백수, 작가, 바리스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