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의 대화

Part 4. 내 안의 조각들을 정리하고 싶다 (4)

by 철없는박영감

너 자신을 알라


히히! 써놓고 보니 왜 알라신을 숭배하라 처럼 보이지? 위키백과를 검색하니 이렇게 나오기는 하는데,


「“너 자신을 알라”(그리스어: 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노티 세아우톤')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으로, 그리스의 여행담 작가인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프로나오스(앞마당)에 새겨져 있던 것이라 한다.」


나에게는 '겸손해라. 나대지 마라. 너나 잘해라'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좀 고상하게 인용하는 말? 뭐 그 정도 의미였다. 그런데 자아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이 말이 뇌리를 스쳤는데, 유레카를 외쳤다. 쳇! 부처님 손바닥 안이구만. 살짝 허무하기도 하다. 아무리 참신하다 해도 1만 년의 역사 앞에는 새 발의 사발이다.


어쨌든 ‘내가 나를 안다?’ 아~ 이것만큼 출발점에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40년을 돌고 돌아 도착한 내 고민의 출발점은, '너는 너를 아느냐'가 아닐까? 거기에 대한 답으로 '너 자신을 알라'보다 더 훌륭한 답이 있을 수 있을까? '겸손해라'는 '한계를 알자'. '나대지 마라'는 '참견하지 말자'. '너나 잘해라'는 '남의 눈 의식하지 말자'. 꼰대어가 이렇게 재해석 돼버렸다.


1. 겸손해라 = 한계를 알자


'한계를 안다는 것은 임계치가 어딘지를 아는 것이고, 그걸 알면 사전에 조치를 할 수 있다.' 뭐 이런 '밥에서 쌀냄새난다'는 당연한 얘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당연히 그렇게 살았다. 즉, 한계설정이라는 거겠지. 그런데 한계를 넘으면 어쩔 거고? 한계를 알면 어쩔 건데? 꼭 뭐든지 한계치까지 박박 긁다 못해 200%, 300% 오버클로킹해서 써야 한국인이지~? 그래서 다음 문장이 뒤를 잇는다.


2. 나대지 마라 = 참견하지 말자


그냥 한계가 넘기 전에 조용히 빠지거나, 시끄럽게 경고를 하거나, 재빠르게 도망친다. 다 아니고 남아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용을 써야 한다면... (아~ 그렇게 자기를 소진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면 시작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살지 않길 바란다) 아직 한계치가 안 왔거나, 이 기회에 한계치를 높이기로 결심했다면 다음 문장이 뒤 따른다.


3. 너나 잘해라 = 남의 눈 의식하지 말자


사실 두 번째에서 다 정리하는 것이 좋기는 한데, 그럴 수 없는 상황도 있으니... 이때는 뭐다? 기세다. 패션도 기세라고 했던가? 립서비스만 믿고 벌거벗은 임금님이 잘못인가? 헐벗어도 자신 있게 행진을 하는 임금님을 팩폭으로 까내린 잔인한 동심이 잘못인가? 요즘은 몸짱열풍이라서 어떻게 격식 차려 고급지게 헐벗을까를 경쟁하는 사회인데, 잘잘못이 있을까? 사기를 친 놈만 죽을 죄고, 사기당한 분은 잘못이 없을까? 정말? 글쎄...


대화가 필요해


이렇게 말하지만 이것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해라'라는 지시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 때문에 선심이 순식간에 배덕하게 된다. 다 하기 싫어지고 반발심만 생긴다. 하려고 하는데 시키면, 순간 어떻게 되는가? 막 시작하고 있는데 그런 것도 안 한다며 타박하고, 인간말종 취급하면, 어떤 기분이 되는가? 참견하지 마! 내 인생은 나의 것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을까? 와~ 이건 내 안에서 우리 집안 명절 풍경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대화는 필요하겠지?


"엄마 나는 여기까지 인가 봐~ 그냥 엄마가 참아. 내 그릇이 여기까지인 걸 뭐~! 아빠는 담배부터 끊고 얘기하시고요. 고모 참견하지 말고 그냥 지켜봐 주세요. 그러는 고모는 얼마나 잘 살아서 이혼하고 친정에 와서 죽치고 있으면서 우리 엄마한테 시누이짓하고 있어요? 삼촌! 삼촌은 그냥 너나 잘하세요~! 아휴~ 속 시원해! 그런데 왜 내 몸에서 피가 철철 나는 거지? 흑흑~ 밥 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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