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서사 만들기

Part 4. 내 안의 조각들을 정리하고 싶다 (8)

by 철없는박영감

동떨어짐



요즘 이 '내러티브'라고 하는 낱말이 자주 보이는데, 무슨 뜻일까? 같은 어원을 가진, 흔히 '나레이션'이라고 말하는 '내레이션'은 다큐멘터리의 진행 방식이다. 우리말로 '해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말이고 유튜브에서 가끔 텍스트로만 이뤄진 형식도 접한다. 동사형인 'Narrate'의 뜻은 '이야기를 하다'이다. 무성영화시대의 변사, 더 이전 시대에는 판소리 소리꾼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앞서 말한 다큐멘터리의 대표적인 진행방식이다. 그러니 '서사'라고 번역되는 '내러티브'는 우선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학술적인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프로그램 ('알쓸인잡'인 것 같다)에서 본 바로는 이야기의 힘은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다 못해 자연스럽게 체득되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비현실적 간접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스토리텔링'과 구분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위의 사진과 같은 「특종 취재의 내러티브」라는 워딩이 나온다. 검색을 계속하다 보니 '내러티브 기사'라는 보도형식도 있다. 유행같이 많은 신문기사가 이런 형식으로 쓰인다고 한다. 도대체 뭐 때문에?


또 불만인 게 있다. 전업 혹은 부업 투자자(가)들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한다는 점이다. 투자 관련 "책을 썼다"라고 해서 작가일까? 그들의 정체성은 투자자인데 정작 그렇게 말을 못 한다. 아니 아예 애초부터 투자자라는 직업이 실제로는 없는 탓이기도 하다.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자본이나 자금을 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쉽게 말해 돈 많은 백수라고 보면 되겠다.


하긴 책 한 권 써보지 않았어도, 브런치에 글을 올릴 자격이 있다고 해서 '작가'라고 불러주니 도긴개긴이긴 하다. 그나마 부동산, 주식 투자 같은 경제 관련 콘텐츠에 나와서 썰을 풀면, 그래 투자에 성공했다고 하니, 결과가 있다고 하니 믿어주는 척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런 이들이 인생을 논하고, 인간관계를 논하고, 사람을 논할 때면 '니가 뭔데!'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바로 '내러티브'가 아닐까? 요즘 속어로 '성공팔이'라고 하던가? 내러티브는 사기꾼의 언어다.


그러니까 편집이 들어간, 창작자의 주관이 들어간 것이 '내러티브'이고, 역사책처럼... 혹은 6하원칙에 따라 사건을 나열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 같다. 백번 양보해서,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조각난 현상을 이어 붙여 사람들이 알기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내러티브'이고 시간 순서에 따라 이야기하는 것이 '스토리텔링'이다라고 치자. 그렇게 거창하게 구분하는 것은, 욕을 하고 싶진 않지만, BullShit! 고상하게 영어로 욕을 해본다. 고상한 욕이 어딨어? 영어로 욕하면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BullShit이다. 이것처럼 말이 안 된다.


일상 언어에서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굳이 구분하는 게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든다. ‘내러티브’라는 말을 쓰면 뭔가 더 학술적이고 있어 보이는 효과가 있지만, 결국 ‘이야기’라는 단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불필요한 권위다. 내 안의 조각들을 엮어내는 과정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하기’ 자체이지, 그것을 내러티브라 부르든 스토리텔링이라 부르든 서사라고 부르든 본질은 같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것에 너무 집중한 것은 아닌지...


하하하! 나의 비판 의식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나는 어쩌면 내 삶을 조각조각 내어 퍼즐로 맞추려 해 왔다. 쓸데없는 짓이다. 그렇게 일부러 어렵게 포장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인 건 아닐까. 삶은 원래 중구난방이고, 이야기는 원래 흩어져 있다. 퍼즐을 맞추려는 집착이 오히려 삶을 더 낯설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은 퍼즐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실존주의라고 하나?


나는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을 구분하는 시도에 의문을 가진다. 결국 둘 다 ‘이야기’다. 이야기는 구조와 기법으로 나뉘지 않는다. 삶의 조각들을 엮어내는 힘, 그것이 곧 이야기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내러티브이자 스토리텔링이고, 동시에 그냥 '서사'. ‘내 이야기’다. 그래서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냐고? 질문을 받으면 대답은 하지 않고 씩 웃는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솔직하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서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더라고요...'



※ 아래는 Copilot 버전입니다.



요즘 ‘내러티브’라는 낱말이 자주 보인다.

뜻은 결국 ‘이야기하기’다. 나레이션, 변사, 판소리 소리꾼까지 이어지는 전통 속에서

내러티브는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삶을 엮어내는 힘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을 구분하려 한다.

편집이 들어간 것이 내러티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라나.

BullShit. 영어로 욕한다고 고상해지나? 그 자체가 BullShit이다.


투자자들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콘텐츠에 등장하는 것도 비슷하다.

책 한 권 썼다고 해서 작가일까?

정체성은 투자자인데, 굳이 포장된 이름을 붙인다.

결국 그것도 하나의 내러티브, ‘성공팔이’ 일뿐이다.


일상에서는 두 단어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굳이 구분하는 건 불필요한 권위일 뿐이다.

내 안의 조각들을 엮어내는 과정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하기’ 자체다.

내러티브라 부르든, 스토리텔링이라 부르든 본질은 같다.


나는 내 삶을 퍼즐처럼 조각내려 했지만,

그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삶은 원래 중구난방이고, 이야기는 원래 흩어져 있다.

퍼즐을 맞추려는 집착이 오히려 삶을 낯설게 만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은 퍼즐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결국 둘 다 ‘이야기’다.

삶의 조각들을 엮어내는 힘, 그것이 곧 이야기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내러티브이자 스토리텔링이고, 동시에 그냥 ‘내 이야기’다.

그래서 숨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냐고.

나는 웃으며 속으로 답한다.

솔직하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서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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