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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트인 건가? 방송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요

선생님들과 숨바꼭질 중...

by 철없는박영감

오케스트라를 좋아하는가? 나는 한 때 오케스트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시작은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였다. 한 다섯 번 정도 다시 본 것 같다. 처음에는 강마에의 카리스마와 독설의 통쾌함을 좋아했다. 그런데 몇 번 다시 보기를 하니까 오케스트라 단원들 각각의 사연이 더 좋아졌다. 치매를 앓고 있는 오보이스트 김갑용, 음악 전공자이지만 엄마로서 가족에게 헌신하는 첼리스트 정희연, 같은 음악 전공자이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월급쟁이가 된 가장 더블베이시스트 권혁중, 카바레 불광동 돈텔파파 밴드 출신 트럼펫터 배용기, 누구보다 음악을 하고 싶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엇나가는 불량소녀 플루티스트 하이든... 등장인물 각자의 울림이 더 재미있어졌다. 성우연기공부를 위해서 다시 볼 때는 상상력까지 더해져서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의 꿈을 포기한 사연에 연민을 느꼈고 다시 꿈을 좇기 시작한 이야기에 공감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성우지망생으로 살고 있는 당시의 내 모습이 투영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는 그런 각자의 사연이 담긴 악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음악을 완성한다. 하나하나의 악기가 사연을 가지고 각자의 울림으로 한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성우 연기와 비슷하다고도 느꼈다.


처음에는 오케스트라가 주는 웅장함과 격조 높은 고급스러움에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귀족들만을 위한, 대중적이지 않은, 배운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벽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고, 다른 세상일 같았다. 결정적으로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들은 더빙된 한국어판 애니메이션은 못 보겠다고 한다.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랬다. 주변에 일본애니메이션 덕후 친구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그게 맞는 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빙된 애니메이션에는 눈길도 안 줬다. 그리고 점점 일본어 연기에 익숙해져 버려서 더빙판은 보지도 않고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가졌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성우 공부를 하면서도 선입견은 쉽게 깨지지 않아서 더빙 연습은 재미없었다.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디즈니 것과는 다르게 표정 없이 입만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마치 대사 읊는 로봇이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나 혼자 상상력을 추가해서 재미있게 연기를 하려고 하면 화면과 연기가 따로 논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공채가 매년 있는 상황에서 더빙연습은 비중 있는 훈련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뽀로로' 같은 국내 자체 제작 3D애니메이션이 많다. 특히 EBS에서 3D 애니메이션이 많이 제작된다. 이런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은 성우님들이 캐릭터를 연구해서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페이도 더빙보다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연기 연습은 필수다. 공채시험은 단문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지만, 어설프게 잘못 설정하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되기 때문에 원작의 설정을 많이 바꾸지는 못하는 것이 응시자들의 한계 아닌 한계이다. 어쨌든 그러다가 그런 선입견이 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추석 연휴에 투니버스에서 몰아보기 식으로 ‘너에게 닿기를’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는데, 충격이었다. 라디오 드라마처럼 듣기로 우연히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주인공 성우님의 더빙 연기에 빠져서 전편을 앉은자리에서 전부 몰아보게 되었다. 더빙 연기를 재미없어하고, 약간은 무시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너에게 닿기를'은 나에게는 더빙 연기의 교본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보는 내내 여주인공의 사무치다 못해 초월해 버린 외로움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성우님의 소름 돋는 연기를 극찬하면서 봤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좋아지면 처음에 많이 드는 생각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선율인데?’ 일 것이다. 영화,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것 들도 많고, 대중음악에 영감을 준 것들도 많다. 그래서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으면서 어디서 들었더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영화 ‘죠스’의 심장을 조여 오는 주제음악도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의 도입부가 모티브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충격적인 ‘너에게 닿기를’을 더빙연기의 교본으로 몇 번 반복해서 보다 보니 ‘어! 이 목소리 낯익은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은 역할의 조연이었지만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엔딩크레디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어! 심화반 첫 번째 선생님이었다. 수업을 계속 듣다 보니, 변성을 해도 선생님의 친숙한 말투나 말버릇 같은 것이 들렸다. 성우님들은 애니메이션에서 변성으로 1인 다역을 소화하기 때문에 청각이 예민한 사람은 알아챌 수 있다. 한 번은 당시 배우고 있던 다른 선생님이었는데, 출장이었는지 놀러 가는 길이었는지 라디오를 들으면서 운전하고 있었다. 공익광고에 우리나라가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근로시간이 너무 길다는 내용의 상황극이 들어간 광고였다. 잠깐 지나가는 극에서 또 낯익은 말투가 들렸다. 속으로 설마설마하면서 휴게소에서 단체카톡방에 선생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광고내용을 설명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맞다. 아니다. 맞으면 대박'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잠시 후, 카톡 알림이 울렸다. 짧은 문장이었다. '나 맞아.' 선생님이었다. 카톡방은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자기들도 찾아 들어보겠다며 어느 방송이냐고 묻고, 잠깐 지나간 것을 어떻게 알아들었냐고 대단하다고 했다. 그 뒤로도 여기저기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려왔다. 광고 속에서, 애니메이션 속에서, 라디오 드라마 속에서 선생님들 목소리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반가운 얼굴까지 볼 수 있었다.

총을 겨누며 최종보스로 돌변하는 순간

제일 반가웠던 순간은 '주토피아'를 보고 있는데, 마지막 양비서 빌런 목소리가 또 낯익었다. '어, 선생님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기간은 짧았지만 강한 인상의 가르침을 주셨던 조예신 성우님이었다. 우와 소름소름... 착한 양비서가 순식간에 총을 겨누며 빌런으로 변하는 소름돋는 순간의 연기에서 '대박'을 외쳤는데 내가 아는 분이었다. 요 근래 SBS 생방송 투데이에서도 내레이션 목소리가 낯익어서 찾아봤더니 같은 분이었다. 아직 듣는 귀는 죽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심취하기 시작하면 각각의 악기 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금관악기, 목관악기, 현악기 정도로 구분이 되다가 나중에는 금관악기가 호른, 트럼펫, 트롬본으로 구분되고, 목관악기가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등으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현악기는 끝판왕인데 나는 아직 그 경지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다. 비올라와 바이올린은 구분이 안된다. 악기 소리가 구분이 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화음이 들린다. 특히 불협화음에 미쳐버린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 불협화음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들을 때마다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완벽한 화음의 연속에서 갑자기 나오는 불협화음은 '천재의 경지는 이런 것이구나'를 일깨워준다. 나 같은 범인은 듣는 것에만 만족해야겠다는 겸손함을 불러일으킨다. 중구난방 같지만 술집의 백색소음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무한한 상상력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노는 창조적인 파괴도 느낄 수 있다. 지난 사투리 관련 글에서 사투리 억양을 고치려면 말버릇에 예민해져야 한다고 했는데 성우연기는 더 나아가서 연기를 발전시키기 위해 청각이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귀가 예민해지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가 하는 연기를 못 들어주겠는 구간이 온다. 나는 이 구간을 못 넘어섰다. 그래서 1차 통과도 못했나 보다. 나 스스로 내 연기가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작은 소리 하나에 명연기와 발연기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완전화음의 연속에서 가끔씩 불협화음을 집어넣어 줘야 하는데... 나는 천재가 될 수 없고 듣는 것에 만족해야겠다는 겸손함이 모든 것을 눌러버린다. 지금도 TV에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연기를 보면서 속으로 '연기가 저것밖에 안 되냐'라면서 따라 해보지만 역시나 생각하는 연기와 직접 하는 연기의 간극은 크다. 강마에의 '똥덩어리'를 들은 것 같다. 성우지망생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생기는 단점 중에 하나는 드라마나 영화가 재미없어진다. 가짜 연기가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서브텍스트가 빤히 보여서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어색한 미소를 짓게 된다. 사회생활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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