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끓여 먹는 거고, 국시는 낋이 묵는 기다
성우 공부를 하면서 생긴 단점이 있다.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의 잘못된 발음이 신경 쓰인다는 점이다. 신경이 쓰이다가 쓰이다가, 나중에는 거슬린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특히 상사가 잔소리할 때는 안그래도 듣기 싫은데 딴생각하는 것처럼 안보이게 연기도 해야 한다. 연기 실력은 늘겠네... TV에서 아나운서들이 출연자들의 잘못된 발음을 지적할 때, ‘잘났어 정말...’을 수도 없이 외쳤건만, 내가 그러고 앉았다. 전에도 잠깐 언급했는데 잘생긴 외모로 무대에 나와 달콤한 목소리로 발라드를 부르는데,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너의 겨츠로(곁으로)~’하는 순간, 찬물로 싸다구 맞은 기분이 된다. 잘생긴 오빠가 응석받이 아이로 보인다. ‘잘생긴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일까?’를 연구하면서 성우님들의 달콤한 음성샘플에 취해있다가 친구가 내시처럼 얇디얇은 목소리로, 발성도 하지 않고 생목으로 말을 걸면 ’ 꺼져 ‘소리가 절로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사투리도 비슷하다. 직장이 전주로 바뀌고 주변 사람들이 전부 사투리를 쓰니까 신경이 쓰이다 쓰이다 거슬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는데 내 순서에 간호사 선생님이 “OO님. 2번 진료실 들어가시게요.”라고 하는 말에 순간 멈칫한다. ‘들어가시게요? 이건 어느 나라 말이지? 하대하는 것 같이 들리기도 하고…' 진료를 받는 내내 머릿속에서 저 말만 되뇐다. 그리고 나중에 공장에 가서 “반장님 작업속도 조금 더 높이시게요.”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으악. 큰일이다.’ 빨리 귀를 틀어막는다. 나쁜 건 너무 빨리 배운다.
지방에 있는 분들은 본인들이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믿는다. 즉, 뭐가 다른지 전혀 못 느낀다는 것이다. 나랑 얘기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사투리 쓰는지 모르겠단다. 똑같이 말하는 것 같단다. 사투리를 고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다. 우선 억양을 고치기 위해서 쭉쭉 펴서 읽은 연습은 당연히 해야 하고 본인의 말버릇에 예민해져야 한다. 그럼 예민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다행히도 경기도에서 태어난 행운을 누리고 있기에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이다. 그런데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같이 보낸 형님 중에 한 명이 심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본인도 사투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만큼 노력했지만 마지막으로 볼 때까지 못 고쳤다. 선생님들도 쭉쭉 펴서 읽기와 천천히 읽기를 계속 연습시켰지만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잘 고쳐지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돌아와 있고를 반복했다. 나중에 선생님이 사투리를 고친 성우님의 예를 들며 최후의 수단을 알려주셨는데, 이것은 아마 실행하지 않았을 것 같다.
우선 몇 달간 말을 안 하는 거다. 습관을 빼는 거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TV에서 다큐나 뉴스로 표준어만 듣는 다. 고향도 가지 말고 친구와 가족과는 문자만 주고받는다. 사투리 쓰는 환경을 철저히 차단한다. 연기의 수단은 언어이다. 우리가 영어를 얼마나 공부했는가. 하지만 언어를 글로만 배우다보니, 외국인을 처음 만나면 일단 심장이 두근거린다. 암기했던 단어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바디 랭귀지로 어렵게 의사소통을 하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욕을 배우기 시작하면 갑자기 원어민이 된다. 이태원에 한 시간만 있으면 깜짝 놀랄 때, Oops! 가 절로 나온다. 언어라는 것이 체득되는 것이라서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안된다. 귀가 트이는 것이 첫 번째다.
사투리를 쓰는 환경을 철저히 차단해서 사투리가 어색하게 들리기 시작하면 절반 성공한 거다. 다음으로 할 일은 표준어를 말해야 한다. 사투리가 듣기에 어색하다는 느낌은 받기 시작했는데 정작 입을 열어서 다시 사투리를 쓰면 꽝이다. 다시 영어를 예로 들어보면 우리가 Speaking이 안 되는 이유가 뭔가? 발음하기 어색한 거다. 영어 독해와 Listening을 백날 공부해도 말을 못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혀 굴리는 발음 특히 'r'발음에 한국사람들은 이상하게 경끼를 일으킨다. 왠지 잘난척하는 것 같고, 어색하고, 'r'발음을 제대로 하면 주변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r‘발음을 잘해도 원어민이 듣기에는 이상하게 들린다. 대한외국인들이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한 번씩 이질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나라 영어교과서 제일 첫 문장인 'Good morning, Chul-Su'를 다들 '긋 모~r닝 촬쓰'로 읽거나 '굿모닝 철수'로 읽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은가. 영어 사이에 한글 나오면 같이 꼬부라지지 않는가. 여기서 간혹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들이 일본성우가 되려면 어떻게 하냐고 성우지망생 카페에 글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앞의 얘기와 똑같은 이유로 일본성우는 절대로 될 수 없다. 일본에도 연기 잘하는 원어민이 있는데 굳이 외국인을 일본 애니메이션 성우를 쓸 일은 만무하다. 거기다 일본은 성우를 아이돌처럼 육성하는 시스템이라서 미모가 천상계 수준이다. 혹시 일본에서 한국어를 해야 하는 배역의 성우가 필요하다면 모를까... 우리나라에서 더빙 성우로 대한외국인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성우가 되겠다는 꿈은 애당초 접기를 바란다. 일본성우가 되기 위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도 힘들다. 말했듯이 일본은 성우를 아이돌처럼 키운다. 일본성우 꿈은 포기하시길... 다시 사투리 얘기로 넘어와서 우리가 영어를 공부할 때 Speakig을 잘하려면 어떻게 하는가? 그렇다 어학연수다 철저히 영어를 쓰는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거다. 이것도 잘 생각해야 한다. 동남아로 어학연수 가면 동남아식 영어를 배워오고, 호주로 가면 호주식 영어, 영국으로 가면 영국식 영어를 배워 오듯이, 본인이 사투리를 고쳐야 한다면 주변 인간관계를 다시 재정립해야 한다. 사투리 쓰는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래서 내가 ‘경기도에서 태어난 행운’이라고까지 제목을 지은 것이다. 2~30년간 익숙해진 말을 하루아침에 고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치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학교를 다녔다. 성우지망생으로서는 행운이다. 내 인생에 지방은 군대 청주. 이때도 복학하고 친구들이 ‘그런겨? 저런겨?’하는 내 말투에 한참 웃었더랬다. 그리고 직장생활 전주. 앞에서 말한 ‘~하시게요. 허벌나게, 겁나게’ 지금도 전주에서 생활하다 보니 겁나게 사투리 쓴다. 본적은 경상도다. 여름방학에 큰집에 놀러 가면 형들이 ‘아따 귀 간지러버라.’라고 하면서 경기도에서 온 우리를 놀렸다. 경상도에서는 특히 서울말이 귀 간지럽다면서 여자 같다고 남자들은 싫어하고 놀린다. 지금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 경상도 남자들은 사투리 죽어도 안 고친다. 그들 말로는 못 고친다. 나는 직접 안 해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사투리로 고생하시는 분은 여건이 된다면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정말로 안 고쳐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