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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EBS 성우공채시험 지원기

진짜 안 하려고 했는데... 글로 남기려다가 찐 연기 터져버림...

by 철없는박영감

성우 학원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사이 2023년 EBS 성우공채시험공고가 발표됐다. 2023년 2월 22일에 공고가 올라와서 3월 3일 17시까지 서류 및 음성파일을 제출하는 일정이다. 기억에 의존해서 글을 쓰다가 직접 지원하는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성우공채시험 지원기' 기획을 시작했다. 먼저 소식을 접한 곳은 성우지망생 카페이다. 시험공고가 뜨면 각 학원들이 앞다투어 성우지망생 카페와 학원 홈페이지, 커뮤니티에 공고 소식을 올린다. 공고가 올라오면 성우지망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원을 준비한다. 학원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앞에서도 잠깐 설명을 했지만 이번 공고는 약 일주일 반정도의 짧은 준비기간 때문에 완전 비상일 것이다. 특히나 주말반들은 삼일절이 끼어있기는 하지만 주말이 한 번밖에 안 걸려있어서 초비상일 것이다. 아마도 2월 25일 당일까지 최대한 준비해 와서 당일 녹음을 완료해야 했을 것이다. 운도 지지리도 없는 일정이다. 만약 내가 학원을 다녔다면, 25일에 선생님께 준비한 것을 보여드리고, 피드백 후 녹음을 하고 나서, 학원 녹음실 스케줄에 따라 삼일절에 시간을 잡아서 여러 가지로 녹음해 와서, 집에서 편집하고, 선생님께 각 문항별로 제일 잘했다 싶은 2가지를 보내드리고 컨펌받아서 제출했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지망생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 나도 나름대로의 루틴으로 준비를 해본다.


1. 모집공고를 자세히 살핀다. : 꼼꼼히 잘 읽어봐야 한다. 10년 정도 지망생 생활을 하다 보니 사실 공고를 안 봐도 어떻게 진행될지 빤히 알지만 그래도 꼼꼼히 읽어봐야 불이익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이 있으면 반드시 채용 관련부서에 직접 확인해야 한다. 몇 해 전에 시험문제가 공고 이후에 바뀐 적이 있다. 그래도 EBS는 채용시험을 굉장히 친절하게 진행한다. 지원여부도 문자로 안내해 주고 (이번에는 메일로 바뀐 것 같다.) 탈락여부도 한 명 한 명 일일이 문자로 발송해 준다.(아마도 올해는 메일로 올 것 같다.) 대부분 방송사들은 지원자들이 직접 확인해야 하거나 합격자 명단만 게시하는 것으로 끝낸다.

이번에는 3명이다. EBS는 1명을 뽑기도, 안 뽑기도 한다.
응시자격 '제한 없음' 안 믿는다.
1차에서 대부분이 걸러지기 때문에 2, 3차 일정은 사실 의미 없다.
녹음 매뉴얼 및 시험대본을 클릭해서 문제를 확인한다.

2. 성우 음성파일 녹음 매뉴얼을 확인한다. : 가장 먼저 녹음 매뉴얼을 정확히 살펴야 한다. 회사에서 요청하는 그대로 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여기부터 실수하는 지망생들이 엄청나게 많다. 파일명을 잘못해서 본인이 컴퓨터에서 편집하던 그대로 보내는 경우가 가장 많고, 간혹 파일에 이름을 써야 하는 경우 이름을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파일 형식과 업로드 방식도 나와있으니 반드시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번 EBS의 경우는 파일 4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원사이트에 파일이 한 개 밖에 안 올라가서 혼동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압축파일로 올리라고 한다. 이것도 반드시 본인이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다. 채용절차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 구원 못 받는다. 모든 방송사가 기계조작은 부정행위로 간주한다. 자르고 붙이는 정도만 허용한다.

파일명, mp3 320 kbps 형식을 꼭 확인! 기계조작은 편집까지만 가능하다.

3. 시험대본을 확인한다. : 짜잔 본격적인 시험 준비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어떤 문제가 출제되었을지 확인한다. 제발 내가 잘할 수 있는 문제가 나왔기를 기도하면서 클릭한다.

인사말을 넣으라는 추가요청이 있다. 대사는 역시나 어렵다. 유아를 어떻게 하지?

4. 대본 분석을 한다. : 주어진 대본에 배경과 상황, 서브텍스트를 찾아서 설정을 한다. 처음에는 눈으로만 한다. 훑어보면서 상상을 해본다. 여기서 충분히 상상을 해야 한다. 먼저 읽으면서 말을 해버리면 고정된 관점이 생겨버린다. 그리고 말로 뱉어버리면 그 짧은 시간에 입에 붙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되도록 독서하듯이 소리 내지 말고 최대한 장면을 상상한다. KBS는 라디오 드라마가 출제되지만 EBS와 애니메이션 전문채널 성우 연기는 대부분이 다큐멘터리 내레이션과 애니메이션 더빙 연기가 출제된다. 따라서 듣는 사람에게 장면이 보이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다. 나는 1번 자연다큐멘터리는 우선 에메랄드 빛 바다 위를 항공촬영으로 보여주는 것을 상상하며 점점 해변, 바닷속으로 카메라 앵글이 바뀌다가 산호군락을 비추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산호를 클로즈업하고, 그 주변의 알록달록 물고기와 다양한 생물들을 클로즈업하고 잠수부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며 바다색이 짙어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런 식으로 각 장면을 상상한다. 사실 이 과정이 제일 시간이 많이 걸려야 하는데 대부분 지망생들이 일단 소리 내서 발음 안 틀리는 것부터 준비한다. 어려운 발음이 뭐가 있고 어느 부분에서 잘 틀리고... 마치 정답과 오답이 있는 듯이 준비하는데 추천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성우는 연기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어떻게 연기할지 계획을 충분히 하고 나서 세세한 발음과 발성을 챙겨야 한다. 연령대별 캐릭터 연기들은 공고가 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성우지망생 카페에 원본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내가 상상한 것과 원본을 비교한다. 그리고 다시 분석하고 계획한다. 아직 소리 내서 연습은 하면 안 된다. 원본의 충분한 배경을 바탕으로 다시 내가 더 상상을 추가해도 좋고, 원본 그대로 연기해도 좋다. 다만 듣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장면전환, 감정변화를 듣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준비해야 한다. 나 혼자 하는 연기는 죽은 연기다. 그리고 캐릭터에 너무 함몰돼도 안된다. 나도 글로는 이렇게 쓰지만 실제로 하면 표현하는 스킬은 또 다른 현실이다. 어쨌든 며칠간 충분히 계획을 짜고, 상상을 많이 한다.


5. 가녹음을 한다. : 대본 분석을 마치고 연기 계획을 세웠다면, 이제 소리를 내본다. 가녹음을 한다. 핸드폰이나 녹음기에 연기를 한다. 틀려도 좋고, 버벅대도 좋다. 로봇 같이 딱딱해도 좋고, 바보같이 지질해도 좋다. 나만 들어볼 거다. 대신 세운 계획대로 해야 한다. 되는대로 막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가녹음을 하고 며칠간 묵힌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객관적으로 녹음본을 들을 준비가 되면 다시 듣는다. 글로 따지면 퇴고를 하는 것이다. 글 초안을 어느 정도 묵혔다 다시 읽어야 객관적으로 퇴고를 할 수 있듯이 성우공채시험 준비도 마찬가지다. 녹음하고 바로 반복해서 들으면 녹음할 당시의 내 기분이나 감정을 계속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표현 안 한 부분까지 들리게 된다. 자기 연기에 함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어서 수정해야 한다.


6. 며칠간 가녹음본을 계속 듣는다. : 가녹음본을 계속 듣다 보면 부족한 부분, 발음이 이상한 부분, 그리고 대본과 다르게 친 멘트를 들을 수 있다. 대본과 토씨 하나라도 틀리지 않고 연기하는 것이 좋다. 그런 것들을 체크하면서 듣고,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말 같이 들리는가'이다. 진짜 말하는 것 같이 해야 하는데 이상한 부분이 많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맥락이 있는가 설정한 것들에 오류나 이상한 부분,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며칠간 계속 들으면서 본녹음을 준비한다. 어떨 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며 훨씬 연기가 좋아지기도 한다. 많이 들어보자.


7. 본녹음을 한다. : 이 때는 각 문항별로 마이크를 켜놓고 계속 녹음한다. 나중에 자르고 붙이고 하면 된다. 그 정도 편집은 가능하다. 특히나 중요한 것이 말하려고 말하면 안 된다. 무슨 말이냐면 진짜 감정이 우러나와서 말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설정한 것들은 어느 정도 숙지가 되었을 것이고, 이제는 가만히 기다리면서 연기를 시작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글을 쓸 때 첫 문장이 시작되면 그 뒤는 알아서 따라오듯이, 연기도 첫 대사를 하고 싶은 감정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부터 차근차근 연기를 시작하면 된다. 틀려도 된다. 처음부터 다시 해도 되고 그냥 녹음을 계속 켜놓고 연기를 한다. 그리고 나중에 편집하면 된다. 이때부터는 즐기면서 하자. 안 그래도 힘든데 생각처럼 안된다고 짜증 내며 힘 뺄 시간 없다. 어차피 해야 할 것 즐겁게 하는 게 좋다. 특히 인사는 너~무 중요하다. 틀자마자 '다음 기회에…'를 선언하는 일이 없도록 인사 멋있게 잘해야 한다. 그리고 다큐를 잘해야 연기도 들어준다. 파일을 따로 만들라는 이유가 다 있다.

8. 편집을 한다. : 본녹음을 하고 편집을 한다. 자르고 붙이고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집에서 녹음을 하다 보니 녹음환경이 좋지 않아서 잡음들은 다 잘라준다. 너무 자르면 호흡도 같이 잘려나가서 안되므로 가능한 층간소음이 적은 시간을 골라서 녹음한다. 그래도 큰 소음들은 어쩔 수 없다. 다시 녹음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또 해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음까지 같이 넣어서 보낸다. 연기가 좋은 것 같은데 소음이 들어가서 못쓰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정말 이웃과 자동차 경적소리가 원망스럽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편집까지 끝내고 완성본을 만든다. 역시나 가장 좋은 완성본은 원테이크로 완성한 것들이다. 호흡도 살아있고 감정도 끊김 없이 좋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엄청난 수련이 필요하다. 앞에서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나노 단위로 녹음해서 좋은 부분들만 가져다 프랑켄슈타인처럼 만들어 봤는데, 편집도 힘들고 들어주는 선생님도 힘들고 결과도 안 좋다. 웬만하면 원테이크로 틀리지 않게 녹음해서 앞뒤만 자르는 게 좋다. 그래서 대본은 암기하는 것이 좋다.

9. 지원서를 작성한다. : 시간이 된다면 완성본을 들으면서 한번 더 수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 그런데 대부분은 감정이 풍부할 때 녹음한 첫 번째 것이 가장 좋다. 감정을 쓸수록 소모돼서 나중에는 진 빠져서 더 이상하더라. 음성녹음파일을 완성하면 지원사이트에 지원한다. KBS와 EBS, 투니버스는 홈페이지에서 직접 지원을 하고, 대원방송은 엑셀로 이력서, 자기소개서, 음성파일, 프로필 사진을 메일로 발송한다. 그래서 항상 지망생들이 대원방송 공채가 끝나면 메일이 '읽음'상태가 아니라고 걱정하는 글을 카페에 남기는데,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아마도 어느 정도 쌓이면 일괄로 다운로드하지 않을까? 그리고 대부분 지원자들이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녹음하고 또 녹음해서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 날에 제출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마지막날에 한꺼번에 메일을 확인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EBS 지원서에는 지원동기, 자기소개, 성공경험담 등 자기소개서가 들어간다. 아마도 다른 직군들과 공통양식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성우지망생이 성우활동이력이 있을 리 만무하므로 낭독봉사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우님들마다 말이 다르긴 한데, 정성 들여 글자수 꽉 채워서 써야 된다는 분이 있고, 읽는 사람 생각해서 최대한 간단하게, 없는 부분은 공란으로 써야 된다는 분도 있다. 어쨌든 두 분 다 성우님이므로 지원서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오타는 없게… 말줄임 없게… 이모티콘 금지다. 음성녹음파일이 다 대변해주지 않나 생각한다. 녹음파일도 같이 업로드하고 최종지원을 누르면 지원완료 화면과 수험번호가 나온다.

수험번호가 부여된다.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녹음파일 다시 듣지도 마라. 이미 끝난 거 붙잡고 있어서 뭐 하나? 이제는 마음 편하게 다음 수업 준비하거나 자신의 원래 생활로 돌아오면 된다. 간단하게 성우공채에 지원하는 방식을 써봤다. 꼭 이렇게 해보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성우지망생들이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올해는 진짜 지원 안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연기에 진심이 되어서 마지막 문항에서는 울컥해 버렸다. 그래서 발음도 뭉개지고 했는데 울컥한 감정이 좋아서 그냥 살렸다.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과정 중 대본 분석이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녹음 완료 후 편집할 때는 거북목 증후군 조심해야 할 정도록 어깨가 많이 뭉친다. 나야 10년 가까이 준비해서 녹음, 편집은 1시간이면 충분한데 처음 하시는 분들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편집을 해야 하는지부터, wav파일을 어떻게 mp3로 변환하는지 까지 카페에 묻는다.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게는 전부 다 생소한 과정이니까 스케줄 잘 맞춰서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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