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따돌림, 왕따...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 여겼다. 그건 아마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톨이였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물론 동일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란 언제든지 그때의 경험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의 존재를 보관하는 일일 터, 결국 혼자라고 느끼게 된다.
왕따, 은따, 학교폭력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 그렇다.
폭력과 따돌림은 언제든 문제가 된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건 그 폭력으로 인해 밖으로 내몰릴 아이들과 사람들의 위태로움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짚어보아야 할 건, 폭력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공통점은 모두 같은 폭력과 고독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 크기는 다르겠지만 실상 그 정도에 대한 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들이 느꼈고 겪었고 마주했을 일들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상황의 맞다고 뜨림 자체만으로 문제가 된다. 결코 개개인의 절망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죽음과 삶 그 경계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야기는 누구의 인터뷰라던가 누구의 글이라던가 그 어떤 것을 참고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저 왕따이든 은따이든 학교폭력이든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 어렵지만 그 일을 겪은 온전한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 시절의 나는 어쩌면 학교폭력의 피해자이자 방관자였으며 방관자가 우선이었고 그다음이 은근한 피해자였으며 결국에 폭력 없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설명하는 건 그 당시의 나도 나의 상태를 잘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어서 이다. 현재 기사에서 보도되는 심각한 학교폭력들을 보면 그 정도의 심각함은 아니라고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아예 학교폭력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실상 투명인간이었고 외부인이었으며 놀림의 대상이었고(그들의 입장에서는 장난이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 사이에 끼지 못하는 것보다 그들의 장난을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었고 가장 심했던 시기는 한 달(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하루가 일 년 보다 긴 시간 같았다)이었고 그 이후로는 그저 외톨이로 지냈을 뿐이었다.
그렇다. 그 한 달은 나에게 지옥이었고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도움을 받을 만한 짓을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홀로 버텼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존재하고 최근에서야 내가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때 분명히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그 시기는 가장 큰 절망이자 슬픔이었고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무자비함이었으며 실상 살아있음에도 속으로는 죽어갔고 지옥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표현상 그 자체였다. 그때의 나를 알아주지 못한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엔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진 것 같기는 하다.
그날의 내가 아직까지 현존하는 건 아마도 나의 세계가 여러 군데 나눠져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디까지 최근에서야 드는 생각이며 언젠가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돌아보니 나에게는 학교라는 세계 이외에 가족이라는 세계, 학교 밖에서의 동생과의 세계, 같은 학교 학생들이 없는 학원에서의 세계, 방 안에서의 혼자만의 세계 등(어떤 세계조차 나를 돕진 못했지만) 다른 세계에서 동시에 존재했다. 즉 학교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만약 가정이나 학원에서조차 내가 보호받지 못했더라면 나는 죽음과 더 가까웠을 터였다. 물론 나의 괴로움은 모든 세계에 걸쳐 이어졌지만 단순히 그 상황에 놓여있지는 않다는 사실이 나를 숨통 틔운 것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의 일들이 나의 온갖 일상을 침범하여 불안함과 두려움과 좌절감이 나를 뒤덮었기에 그 당시에는 괴롭힘을 받는 학교만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한 나였기에 죽음을 생각한 것이다. 사실 학창 시절이라면(더욱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사실 어디까지 그렇게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학교가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세계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열심히 그들과 끼어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면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고, 괴롭힘을 당하게 되면 더 이상 내가 서 있을 곳이 없을 것만 같고. 그런데 생각보다 학교라는 세계는 큰 세상의 일부라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그 시절이라는 게 끝나고 나면 새로운 시절이 찾아오고, 그 시기가 아무리 힘들더라도(물론 좋더라도)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겪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이 시기를 지나오면서 나와 같았던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계속해왔다. 그렇지만 이 끝나지 않은 학교폭력과 따돌림을 결코 끝맺을 수는 있을 걸까 하는 압박감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그 당시에 누군가 알았다고 해서 나의 일상이 크게 바뀔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도 수 없이 했다.
내가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곳에서 영락없이 당하기만 했고 어떤 발버둥도 치지 않았다. 그저 참고 견뎠을 뿐. 나는 그저 괴롭힘을 당하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밖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그 밖의 세상조차 안전하지 못하다면 어딘가 안전한 세상을 주고 싶다. 숨 쉴 수 있도록. 그 상황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견뎌낼 힘을 줘서 그 시기를 어떻게 해서는 버텨내도록.
(누군가 너는 심하게 당한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은 것 거기까지였고 그 너머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더 나은 방법이 있는가 물어보고 싶다. 있다면 기꺼이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하고 해결책을 강구해나가고 싶다. 나는 아직 여기까지의 생각밖에 이르지 못했다.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때의 나를 잊지도 못할 것이며 죽기 직전까지 아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