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 살면 무슨 일을 하세요?
프리랜서가 된 팀장님은 이제 고성에 산다.
놀러 오라는 말에 덥석 버스표를 끊고,
퇴근하자마자 압구정에서 고성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팀장님처럼, 고성으로 이사한 서울 사람들.
아니. 내 눈에는 "고성으로 이민 온 사람들" 같았다.
나에게 익숙한 세상과는 너무 달랐던 삶의 모습.
‘여기 한국 맞지?’
속으로 혼자 계속 되물을 정도로, 생소하고 새롭고 활기찼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대체 고성으로 이민 온 서울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분들과 이야기하며 느꼈던 것들을 적어보려 한다.
(1) 숲 속에서 빛을 만드는 부부
소란한 분위기 속에서도 잔잔함이 풍겨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갔던 분들. 이태원에 살던 부부는 고성으로 이사해 빛을 만든다. 공간 연출을 위한 오브제 조명을 맞춤 제작하는 일이다. 상호명은 '오로라댄스'인데 '빛의 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대화의 중간쯤에 카메라를 꺼내시더니 우리가 수다 떠는 장면을 조금씩 촬영하신다. 유튜브 '탐닉가들' 채널을 운영하신다고 해서, 자기 전에 영상을 감상하다가 인스타그램 채널까지 타고 흘러가 조금 더 그분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잠이 들었다.
한때 서울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파티 기획을 했지만, 어느 순간 작업 때문에 꼭 도시에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ktx매거진에 실린 인터뷰 중에서
(출처: 인스타그램 @auroradanceclub)
(2) 플리마켓에서 만난 소품샵 사장님
플리마켓에서 손님과 주인으로 잠깐 스쳤던 인연, 저녁에 한 주점에서 우연히 또 만나게 되어 합석을 했다. 강릉에서 핸드메이드 공예 소품샵을 운영하고 계신데, 플리마켓 참여를 위해 잠시 고성에 왔다고 했다. '마우카마카이'라는 상호명은 대화 내내 평온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던 사장님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산 넘어 바닷가로'라는 뜻의 하와이어. 내 또래여서 왠지 더 친해지고 싶었던 사장님. 다음에 강릉에 가면 꼭 또 뵐 수 있기를.
(인스타그램 @mauka_makai__)
(3) 노인 분들의 민박집을 꾸며주는 디자이너
다음은 팀장님의 절친이자, 첫인상에도 내 마음이 활짝 열려버린 승희님 이야기이다. 어쩐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유명한 마케터와 이름도 같으시더니. 고성에 거주하는 노인 분들의 민박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예쁘게 인테리어 해주는 일을 하고 계셨다. 서울에 살 때 디자이너로 일했던 것이 고성에서 이렇게 이어졌다고 한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나는 승희님의 모습에 나를 겹쳐 상상해 본다. '훗날에 나도..?'
(4) 바닷가 1초 거리 펜션을 운영하는 사장님
키가 엄청 크셔서 모델인 줄 알았던 사장님은, 사실 잠실 토박이지만 최근 고성에 귀촌해 숙박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작고 프라이빗한 교암 해변에 대한 가득한 애정으로, 해변 1초 거리에 아주 멋진 숙소를 마련했다. 패션에 관심도 많으셔서 1층 작은 구역에 옷 장사도 하신다. 인테리어와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분의 모습에 나를 겹쳐 상상해 본다. '훗날에 나도..?'
(5) 와인과 취향을 모은 편집샵 사장님
세상은 참 좁다. 지금은 고성에서 멋스러운 편집샵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알고 보니 나의 첫 회사 초창기 멤버였다. 식사를 하면서 들락거리는 거의 모든 손님들과 인사를 하시니 인맥이 정말 넓은 분이시구나 했다. 사장님의 가게에서 매달 열리는 ‘먼슬리 게더링(고성의 여러 브랜드 상인들이 모여 플리마켓 또는 이벤트가 열린다)’이 가능한 이유도 짐작이 갔다.
(6) 마케팅 프리랜서 서아씨
나는 팀장님을 '서아씨'라고 저장해 두었다. '고성 사는 서울 아가씨(고서아)'라는 필명으로 SNS 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팀장님의 지금 직업은 마케팅 프리랜서. 정확히 하자면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들에게 마케팅, 비즈니스 전략에 관한 장단기적 플래닝을 컨설팅하거나 함께 실행한다. 시간과 장소 제약은 없어서 고성과 서울을 오가는 3도 4촌 생활 중이다. 나도 한 번쯤 꿈꿔보는 라이프를 그대로 추진 중인 팀장님을 보면서 나도 다시 마음 한 켠에 희망을 품게 된다.
(7) 오늘도 무사히 보내라는 전통주점 사장님
이 모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곳은 바로, 고성의 한 전통주점 ‘무사’라는 곳이다. ‘오늘도 무사히 보내라’는 뜻을 가진 이 주점에 발이 닿자마자 내 마음에는 낭만이 가득 피어올랐다. 하필 운 좋게 그곳에서 그날 16명의 상인들이 플리마켓 형태로 참여한 야시장이 열렸다. 두부김치, 비빔국수, 부추전, 막걸리 등 안주거리를 잔뜩 사다가 테이블 하나 잡고 나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고성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익숙한 도시를 떠나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다시 빚고 있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지금의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꼭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만이 정답일까.
꼭 서울이어야만 가능한 건 또 무엇일까.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