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노예, 사제, 그리고 역사가

by 숨듣다
처음엔 폭력에 관한 사변을 풀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한 시도도 분명 의미가 있겠지만, 오랫동안 미루었던 과제처럼 느껴졌던 소설을 출판하는 일이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타자 간 행해지는 폭력의 변증법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먼저, 정신분석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내 증상을 고백하고 하나의 서사로 정초하는게 먼저라고 느꼈습니다.

이 글은 수정되고 한 데 모아 책으로 출판될겁니다. 현대사회에서 억압되고 항상 뒤로 밀려온 폭력 담론을 논하기 전에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폭력, 스스로를 향한 폭력에 먼저 답해야할 의무를 하나의 소설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초고가 모두 완성되고 글이 모이면 이 연재글은 삭제될겁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부끄럼을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방어이겠죠.

그래도 저는 최대한 솔직하고자 합니다. 가장 부끄럽고 바보같은 말을 내뱉는 것이야말로 정신분석의 실천이니까요. 스스로 내뱉는 바보 같은 말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분석가를 자처할 수 있을까요? 자격담론을 너무나 싫어하지만, 선생님이 내준 과제처럼 저를 압박해오는 양심이 항상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못하고서야 무슨 분석가야?'

이것이 제 스스로를 타자에게 증명하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이길 바랍니다.
<역사란 악몽이며, 나는 그 악몽에서 깨어나려 애쓰고 있다.>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생이란 좌절 그 자체다. 주체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재구축하려는 작업에서, 그것을 타자로서 구축하게 했던 근본적인 소외를 다시 만난다. 아버지의 이름을 선회하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만나지 못하고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진자운동을 반복하게 된다. 니체가 무거운 삶을 내려두고 가벼워지길 요청했던 바를 자기애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연결시켰던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우리는 시시프스의 굴레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신이 죽은 후에 모든게 허용되지 않냐고 반문했던 카라마조프의 외침 속에서 어떤 좌절을 직감한다. 근대적 신념체계를 실천하는 실정법을 제쳐두고서도 우리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적이 인간사에서 단 한 순간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살육을 행할 수도 없고, 지고의 권력을 휘두를 수도 없으며, 스스로를, 혹은 마녀를 고문하며 희열을 느낄 수도 없고, 지성소 앞에서 울부짖으며 인간 실존의 부조리함을 내려놓고 천국이 도래했다는 환상에 빠질 수도 없다. 신은 죽었다.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여리고성은 무너졌고 이제는 우리 자신을 짊어지고 힘겹게 벽돌을 쌓아올려 제각각 성의 여러 이름을 겸직하여 모든 부담을 떠앉게 되었다. ’나‘는 황제이자 수문장이며, 재판관이자 집정관이며, 역사가로서의 노예이고 광대이며 장사꾼이다. 나는 곧 허공이다. 바람이다. 잊혀질 폐허의 도서관이다. 피눈물 흘리는 하회탈에 제 얼굴을 끼워넣는 즐거운 낙천주의자 행세를 하는 괴짜다.


그중에서도 황제와 노예, 사제와 역사가는 이 성의 역사의 주역이었다. 황제는 성의 영광을, 과거 기록된 바 바빌론의 탑 그 위에 들어앉은 악마의 경지까지 올려놓을 것을 주문하며, 노예는 탑의 충실한 건설자이자, 역사가는 이야기의 아첨꾼이다. 그 모든 과정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최대한 아름답고 황홀한 찬양으로 긍지를 드높이는데 전념한다. 사제는 찬양의 소리를 황홀경의 경지로 드높이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중의 열기를 뜨겁게,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이 고조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나라의 국운은 때를 다해 침체되는 바, 역사의 성벽은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무너지며 다시 역사 이전의 위태로운 원시인으로부터 시작해 다시 영광을 향한 헛된 질주를 되풀이한다. 탑은 무너지고, 재는 바람에 흩어진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좌절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시작의 전조다. 황량한 폐허 위에서 인간은 다시 손을 뻗어 첫 번째 벽돌을 쥐고 탑을 올리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간에, 그 바닥은 근원적인 불안과 결핍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당신이 우리를 당신 자신을 위해 만드셨기에, 우리의 영혼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기 전까지는 쉴 수 없습니다." 신은 죽었지만 유효한 이 명제 위에 다시 인간은 신을 향한 바빌론의 여정을 시작한다.


나는 내 황제를 속인다. 그의 광채에 아첨하며,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그를 향한 무의미를 간직한다. ’나‘는 내 노예를 속인다. 그의 충성심을 칭찬하며, 그의 노동에 보답하는 척하지만, 결국 그의 노고로 지어진 성벽을 무너뜨릴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 역사가를 속인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기록을 남기는 척하지만, 결국 그의 기록 위에 새로운 허상을 덧씌운다.


신을 지워내고도 우리는 결국 다시 경배자를 자처한다. 내면의 지층을 뒤흔들어 새로운 씨앗을 틔운다. 흔들리는 대지 위에 무너지지 않을 성은 단순히 우리의 바램이며, 견고함은 파멸의 징조다. 그렇다면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새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는가? 탑이 무너질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탑의 건축자가 아니라 폐허의 방랑자로 살 필요가 있다.


폐허 속에 서 있는 자는 땅에 흩어진 잔해를 바라본다. 잔해는 과거의 역사, 권력, 그리고 욕망이 쌓아 올린 불완전한 증거물이지만, 잔해는 단순히 실패의 표식이 아니다. 잔해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다시 조립될 수 있고, 혹은 완전히 다른 형태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무너진 성의 벽돌을 집고서 울부짖는다. ’성은 반드시 위로만 향해야만 했는가?‘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목적에 속박하지 않는다. 목적은 늘 다른 목적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끝없는 굴레 속에서 나를 갉아먹을 뿐이다. 나는 대신 과정에 주목한다. 벽돌을 쥐는 손의 감촉, 흙내음이 스며드는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공허한 무한함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탑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나의 보잘 것 없던 성벽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나는 보잘 것 없기에 오히려 자유다. 더 이상 위대한 것을 열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실패의 무게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자유. 자유 안에서 나는 탑의 이름을 지운다. 무엇을 상징했든, 어떤 영광을 약속했든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탑의 주인이 아니다. 나는 단지 흩어진 벽돌들 사이를 거닐며 새로운 형태를 상상하는 방랑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다시 묻는다. 탑은 정말 필요했는가? 혹은, 탑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이, 완전히 다른 것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황량한 불길이 저 멀리서 다가온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이제는 나를 보호해줄, 온전히 대지의 삶에 붙들어줄 무거운 쇠사슬도 없다. 오롯이 혼자다. 그저 그 앞에서 지난날의 찬란하게만 보였던 영광을 되짚으며, 새롭게 시작될 인생의 서막 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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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성의 백성들이 찬양해 마다 않던 사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그는 온 백성의 찬양 위에 스스로의 영광을 드높이며, 한 점 부끄럼 없이 제단 앞에 쏟아지는 희생물들을 착복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껍질을 깨고 갓 태어난 새가 울 듯이 아름다운 곡률과 같았으며, 질서 있게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성직자의 부패는 그럴듯한 이유가 뒤따랐으며, 한때 쳐다보지 못할 광채를 입고 이 땅에 도래했다고 전해진 하늘의 말씀 뒤에 감추어졌다.


사제는 신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를 영원한 존재로 포장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신의 그림자이다. 나를 바라보는 것은 곧 신을 대면하는 것이다.”

사제의 눈에 서려 깊숙한 불안이 아우성치는데도 백성들은 그런 데 관심조차 없었다. 성을 한가득 채운 찬양의 목소리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는 읊조리길, ’운명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던가. 저 옥석 위의 권좌가 아니라면 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 이는 부모가 남긴 짐이라. 저 권좌를 등에 이고 기약 없이 행진하는 것 외에 내 쓸모를 어디서 구할 수 있더냐.‘


또 한 노파는 제 정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철없이 날뛰는 젊은이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젊은이들이여, 네 심신의 안정을 찾으라. 어린 날의 취기에 젖어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육신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리 와 나와 함께 절하자. 옥좌가 전하는 말씀의 신비한 진리를 너희는 알지 못하더냐. 정신은 육신을 이기며, 네 정욕은 뜻하지 않은 위험을 가져다줄 것이다. 어서 오너라, 아이들아!‘


정오의 태양이 성에 그림자 하나 없이 비추던 날, 사제는 백성들을 모아 힘찬 설교를 시작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약을 받아 치료를 받으라. 이는 하나님께서 의학을 통하여 그의 은혜를 베푸셨음이다.


말씀이 증언하는 바,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선물 중 하나다. 의술은 혼란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쉼을 주고, 상한 마음을 고치며,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는 도구가 될테다. 너희는 시편에 예언된 주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나를 치유하시니, 내 영혼이 기뻐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기도와 찬양을 놓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니, 이를 돌보는 것이 우리 왕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나의 상처를 싸매고 지치고 상한 마음을, 억울하고 지치고 탕자를 돌아오게끔 하는 하는 그것이 무엇이던가.


치료의 과정을 통해 주께서 우리의 약함을 돌아보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주께서 나를 치유하시니 내가 살아나리이다'라는 믿음으로 약물치료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대는 과학이 증언하는 계시를 어찌하여 불신하는가. 네 안의 성령이 진정 주의 은총과 공명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주의 대속으로 네 죄가 사해진 대로 살라. 행복하라, 쾌락을 즐기라, 네 주께서 선사하신 이 세상의 복음을 기뻐하며 찬양할지어다. 그대의 진화론적 목적에 머리 숙여 경배하라. 감히 그 빛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우울한 자, 불행 한 자, 삶의 이유를 묻는 자, 이제 귀를 기울이라. 우리는 스스로 창조자가 되었다. 인간의 사고와 기술,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우리의 새로운 성벽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고, 자본은 그 과학을 실행에 옮길 연료가 되었다.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하지만, 그 안에서도 무한한 은총을 발견한다.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주를 해석하고, 우리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므로 기뻐하라! 우리는 현실의 손으로 잡히는 성과를 얻었다. 이성을 믿고, 기술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을 사랑하라. 우리는 마침내 기계와 약물, 자본의 무한한 영광 안에서 서로의 삶을 지탱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도다!”


말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성을 가득 메웠다. 광기가 현신한다면 아마 이런 풍경일테지. 사방에서 환희에 찬 눈물을 흘리며 사제와 신의 합일을 목도하노라, 목놓아 찬양하고 있었다.

여리고성의 찬양은 단순히 노래가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법칙이자, 정당화된 희망이다. 그들의 사제는 단지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대중 앞에서 입은 영광의 옷자락은 실은 피와 땀으로 물든 희생의 껍질이었고, 그의 목소리는 아름다움을 가장한 질서의 쇠사슬이었다. 그의 말은 하늘의 빛을 받들며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고, 그의 손길은 축복의 형식을 빌려 사람들의 삶을 더욱 굴종의 틀 속에 밀어 넣었다.


찬양의 소리는 기계처럼 균일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마음들은 제각기 달랐다. 권좌 아래 숨죽인 자들은 저마다 이유를 품었다. 어떤 이는 사제의 목소리에서 천국의 희망을, 또 어떤 이는 자신의 무력함을 정당화할 구실을 들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항상 반 박자 늦게 찾아오는 질문이었다.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


각자 내면에 떠오른 의문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는 아마도 불길한 쇠퇴의 징조였다. 태양은 어느덧 성 위를 지나 점차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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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찬양의 소리 속에서 몸을 추슬렀다. 황제의 거처는 고요했으나, 이미 괴이할대로 괴이해진 황제의 온몸에는 상처가 어떤 굉음을 만들어내는 듯 했다. 성벽 아래의 함성이 들려오지 않는 두꺼운 석벽과 무겁게 드리운 커튼이 그를 저 미천한 백성들과 또 다른 벽을 이루어냈다. 유리처럼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천천히 손을 뻗어 무딘 칼날을 들었다.


황제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다. 눈두덩이는 무겁게 처져 있었고, 턱선은 어느새 무뎌졌다. 그는 알았다. 이 얼굴로는 더이상 신의 대리인, 여리고성의 영광을 상징하는 초월적 존재로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두려웠다. 사람들이 그를 볼 때, 더이상 황제가 아닌 남루한 인간으로 보게 될 순간을.


칼날이 그의 손에서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이 불안하게 덜덜 떨렸다. 그러나 이내 날카로운 선을 그리듯 피부를 가로질렀다. 피가 얇은 선을 따라 솟아났다. 그는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얼굴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얼굴을 새로이 만들어야 한다.”


황제는 이 순간 자신을 의사이자 조각가로 상상했다. 신이 자신을 창조했듯, 이제 그는 스스로를 재창조할 의무를 느꼈다. 피부가 베어지는 소리는 방의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칼날을 통해 얼굴의 곡선을 다시 만들고, 늘어진 살을 도려냈다. 손은 붉은 물감처럼 피를 묻히며 바삐 움직였다.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며, 황제는 중얼거렸다.


“더 날렵하게. 더 강렬하게. 신의 대리인처럼. 아니, 신 그 자체처럼!”


한쪽 볼을 도려내고, 코의 곡률을 다듬고, 깊게 패인 주름은 손가락으로 벌려가며 그 안에 벌어진 공포를 가리려 했다. 핏자국과 살점이 그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대리석 바닥 위에는 그의 옛 얼굴이 조각처럼 흩어져갔다. 마치 과거의 자신을 의도적으로 부정하듯.


황제는 손에 들린 작은 거울을 내려다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은 이제 처음과 전혀 다른 형태였다. 피부는 얇게 찢겨 있었고, 콧대는 의도한 모양보다 더 삐뚤어져 보였다. 피가 그의 턱 아래에서 목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더 젊어야 한다. 사람들은 젊음 속에서 신을 본다.”


칼날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긴 주름이 그를 비웃고 있었다. 주름을 얇게 쓸어내며 손으로 살점을 당겼다. 살의 끈적한 탄성이 손가락 사이에서 끊어졌다. 황제의 입에서는 억눌린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의 눈은 고통을 넘어선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이 고통을 견딜 수 없다면, 이 성은 어떻게 나를 믿겠는가?”


피로 젖은 손을 들고 자기 자신에게 경배하듯 머리 위로 올렸다. 붉은 손자국이 머리카락과 목덜미에 얼룩지며 더욱 기괴한 모습을 만들었다.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광인의 미소다!


“나는 신이다.”


스스로 집도한 수술이 끝나고 황제는 발코니 창문을 열어젖혔다. 광분한 백성들은 황제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지만 그는 황홀함에 젖어 입술을 비틀며 내려다보았다. 눈 아래 흉터와 불그스름한 자국은 말라붙은 피와 체액에 덮혀 얼굴을 더 기이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 모습은 황제 자신에게만큼은 영광이라.

“이제 내가 신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자들은 없을테지.”


황제는 혼자 조용히 읊조렸지만, 사제는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황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제의 시선을 따라 백성들도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끈적한 손을 흔들며 황제는 소리 질렀다.

“의심하지 마라, 괘념치 마라, 너희의 행복과 평안에 우리 문명이 가져다준 은혜를 잊지 마라, 백성들이여! 내 아름자운 자태를 보고 고개 숙여 경배하라. 보아라, 내 스스로 죄악으로 헝클어진 신의 계시를 회복하였다. 울지 말라, 나는 불멸이며 너희의 상처를 봉합할 치료제다. 칼을 들라, 죄악을 도려내라, 더욱 완벽한 아룸다움의 형상에 네 영혼을 다해 복종하라!”


황제의 선언은 차가운 바람에 실려 성 아래로 퍼져 나갔다. 찬양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일순 멈췄다. 그들이 들은 황제의 음성은 익숙했지만, 그 안에는 섬뜩한 것이 스며들어 있었다. 한낱 인간의 언어가 아닌, 자신들이 두려워하던 어떤 비인간적인 울림처럼 느껴졌다. 붕대로 감긴 황제의 얼굴은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괴이한 형상으로 드러났고, 황제의 눈은 분명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동시에 그 모두를 초월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고요한 가운데 백성 중 여럿은 다시 사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황제께서 다시 한 번 신의 형상을 완성하였도다!”


이내 다른 이들도 뒤따라 외쳤다.

“그분의 고통이 우리의 구원이다!”

“그분의 피가 우리를 정결케 하리라!”


군중은 다시 찬양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일부는 눈을 떼지 못한 채 황제를 응시하고 있었다. 황제는 군중의 찬양을 들으며 성벽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울림이 예전처럼 자신을 채우지 못했다. 찬양의 목소리는 이제 단조롭게 들렸고, 오히려 그의 귀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붕대 속에서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에 느꼈던 기쁨, 그 광기 어린 희열은 더 이상 없었다. 그토록 구원의 대의를 위해 노력해왔건만, 어째서인지 신의 형상은 황제에게서 점점 흩어져만 갔다. 변덕스러운 왕은 황급히 몸을 돌려 다시 황실에 몸을 눕히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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