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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May 10. 2020

신규교사, 그는 바로 미스터 코로나

위기危機 : 위험危險과 기회機會, 첫 학교 발령의 설렘과 온라인 개학

2020년 2월 7일 서울시 역사교사 임용 시험에 최종적으로 합격했다.


발표날은 2월 7일 오전 10시였다. 발표 며칠 전부터 제주도에 있었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아 제주도에서 근무하는 친구 집에 며칠 머무르고 있던 것이다. 발표 시간 즈음에 나는 한라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백록담의 정기를 받으며, 떨어지냐 마느냐의 무서운 도박을 지켜보려 했던 것이다. 만일 불합격했다면 백록담의 귀신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중간 대피소에서 발표를 확인하며 나를 지켜보던 등산객들의 축하를 받았다.


나는 어느 때보다 떠나갈 듯 행복했지만, 세상은 점차 어두워져만 가고 있었다.


그 첫 시작을 알리는 것은 신규교원 연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부터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신규교원 연수가 집합연수가 아닌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약 10일 정도 온라인으로 연수를 받고나서 2월 18일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내가 근무할 학교를 배정받았다. 나는 서울시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학교에 전화해서 첫만남 일정을 조율했다.


19일 오전에 학교에 가서 교장 및 교감, 몇몇 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3월 2일부터 시작되는 새 학기를 위해 여러 워크샵들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소 소란스러웠다.

이 때까지는 3월 2일 개학이 아무런 차질 없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날부터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뒤바뀌기 시작했다. 교육부에서는 집단 감염이 우려되는 학교 교실 수업을 타겟으로 3월에 정상적으로 개학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기 시작했고, 언론 보도 역시 3월 정상 개학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상 초유의 초.중.고.대 개학 연기


540만 명의 초.중.고 학생들과 300만 명의 대학.대학원 학생들이 교실 현장에서 정상적인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언론들은 대서특필해서 보도하기 시작했고, 교육부와 학교는 코로나19의 감염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나서도 몇 차례의 개학 연기가 진행되었고,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교육당국은 급기야 4월 9일 온라인 개학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 동안 수 차례의 개학 연기에 나의 첫 교직 생활은 애매모호의 연속을 달려야 했다.

애매모호한 업무 인수인계, 흐지부지된 신규교원 소개 등등.


그런데 온라인 개학을 전후로 상황은 역전되었다.

온라인 개학은 나에게 많은 역할을 주었고, 나름대로 학교에서 신규교사의 존재를 입증하게 만들어 주었다.


갑작스러운 온라인 개학을 학교 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난관들이 존재했다. 우선, 온라인 수업에 활용되는 자료의 저작권 문제. 학교 현장 교육에서는 그동안 저작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어떠한 자료들이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무감각해왔다. EBS 강의도 저작권이 있었고, 된다 해도 EBS만을 퍼다 쓸 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그러고 싶지 않았으며, 아마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온라인 수업 환경.


사실 어려운 것은 없었다.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은 굉장히 다양했다. EBS 플랫폼이나 구글클래스룸을 활용할 수도 있었고, 쌍방향 수업을 위한 여러 ZOOM과 같은 어플리케이션도 존재했다. 수업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는 도구 역시 상당히 많았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수업 환경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온라인 수업에 대한 논의가 몇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혁신학교에서도 온라인 수업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완벽하게 수업을 구현하는 데에도 2-3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나 혼자만 그 수업 환경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수 십명의 교사가 발을 맞추어 진행해야 했고, 수업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의 가정에도 역시 온라인 수업 환경에 필요한 스마트 기기가 필요했으며 사용 절차에 적응해야 했다. 중국어 강사를 하던 시절에는 나 혼자만 익히고 활용하면 그만이었기에 무엇인가를 신속하게 바꾸는 것이 가능했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학생들의 접근 가능성을 확인해야 했고, 이를 위해 모든 교사들이 함께 움직여야 했다. 교사는 특수한 직업이어서 수업에 대한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존중되지만, 이와 같은 문제는 해당되지 않았다. 여기서 교사는 혼자가 아니고 작은 조직의 조직 구성원이었으며, 이 조직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 적응의 시간을 줄이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공립학교에서 이러한 형태의 의무적인 온라인 수업은 사실상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존 선생님들과 나는 동일한 출발선상에 놓여 있었다. 심지어 40대, 50대 선생님들은 인터넷 프로세스를 활용하는 데에 익숙치 않다. 당장 일주일 안에 온라인 수업의 플랫폼으로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했고, 결정한 플랫폼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연습도 필요했다. 심지어 당장 4월 9일부터 시작되는 중학교 3학년 수업 자료도 만들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환경은 나에게 조금 더 익숙했다. 중국어 강사를 하던 시절에는 온라인으로 자료를 업로드하고, PPT화면을 띄운 채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리고 대학원을 다닐 때 온라인 수업의 일부인 '거꾸로 수업(Flipped learning)'을 도맡아 진행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올해 임용고시 2차를 준비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수업 시연하는 작업을 꽤나 했기 때문에 그렇게 낯설지도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역사 수업이 담당이었던 나는 4월 9일부터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먼저 개학했고, 그중에서도 내 수업이 1, 2교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과감하게 카메라 앞에 서서 수업 영상을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원 때 PPT 화면에 강사의 목소리만 입혀진 영상을 본 적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하지 말자는 생각을 다짐한 적이 있었다. PPT 화면에 목소리만 입혀서 녹화를 하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이들의 집중도는 현저히 낮아진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이 있던 선생님들도 있었지만, 앞으로 유튜브를 활용한 거꾸로 수업을 생각하고 있던 나는 일종의 기회라 생각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첫 촬영 때는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빈 교실에 혼자 칠판 앞에 서서 카메라를 향해 인사를 하고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중간에 버벅거리거나 발음이 꼬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초반에는 10분 짜리 영상을 촬영하는 데 1시간이 걸렸다. 강사 생활도 꽤나 해서 실수를 덜 할줄 알았는데, 허공에 떠드는 것은 역시나 어려웠다. 하지만 2주차, 3주차 수업을 진행하면서 농담도 하며 웃기도 하는 여유가 생겼다. 처음에는 20분을 통으로 녹화하다가 내용이나 주제 별로 7-8분씩 촬영하게 되었다. 어색하지도 않았으며 실수도 줄어들었다.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학생들에게 매주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도록 설문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직설적으로 반응한다. 과감하게 수업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해주기도 하며, 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서는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동시에, 이외에도 온라인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주어진 업무 이상으로 뛰어 다녀야만 했다. 온라인 입학식이 확정되면서 선생님들의 소개 영상과 시업식 영상을 촬영하고 제작했다. 온라인 입학식에 쓰였던 동영상을 좋아하셨던 분들이 꽤나 많았다. NG영상을 중간에 삽입하고, 자막을 참신하게 달아서 딱딱함보다는 즐거움을 노렸는데, 많이들 좋아해 주셨다. 


이 때부터 나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무리 없이 온라인 수업의 첫 스타트를 끊기도 했고, 각종 영상을 만들어 업로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선생님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신규였기 때문에 특정한 역할을 부여되지는 않았지만, 자주 옆사람에게 질문하며 궁금증을 해결해야 할 신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들어주고 직접 도와주러 다니는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구글 플랫폼에서도 퀴즈 과제를 만들거나 학생들에게 연락하는 방법 등 세부적인 이용 방법을 정리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전달해드렸다. 하루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내 자리로 찾아왔고, 수시로 내선 전화가 울렸다. 서울에 소재한 모 학교의 온라인 수업 연수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학교에서 강사를 초청해서 연수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는 그 때마다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모아서 질문했고,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고 실제로 시도할 정도로 온라인 수업 환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야, 이게 누구야, '미스터 코로나, Mr. Corona' 아니야


이런 방식(?)으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있을 무렵, 어느 날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교장 선생님이 나를 '미스터 코로나'라고 부르셨다. 코로나 때문에 빛을 본 신규 교사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 말 한마디에 학교에서, 그리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알 수 있었다. 긍정적이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나의 수업 방식과 업무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학생들의 답변을 토대로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며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근데 이 지독한(?) 별명은 적어도 열악하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조치를 보여주었고, 주변에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을 해내주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 시기를 겪으면서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되더라도 온라인 수업을 지속적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원래는 1년 정도 학교 업무에 적응하고 2, 3년차부터 온라인 수업을 확대해서 시도하기로 계획했었는데, 코로나라는 변수가 모든 계획을 앞당겨 놓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사람은 긴박해야 효율이 높아진다고 했던가. 아무런 문제 상황 없이 계획했던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더라면 어땠을까. 과연 지금까지의 열의만큼 쏟아부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 어려웠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코로나는 나의 학교 생활에 많은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실질적으로는 다양한 플랫폼을 접하게 해주었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체감하게 해주면서 심리적인 만족감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연수를 받고, 혁신학교와의 교류를 통해 온라인 수업에 관한 전문성을 더욱 쌓아 나갈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가 경제적으로 상당한 침체를 겪고 있다. '코로나블루(Corona blue)'라고 해서 개개인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과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 정상적인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나타나게 된 수많은 이산 가족들, 경기침체와 소비수축의 여파를 직격탄으로 받는 수많은 소상공인들,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다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자가 느끼는 그 힘듦의 정도가 다르고, 처한 상황도 제각각이기에 다소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이러한 다짐이 필요하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아가는 것에는 애초부터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는 언제나 불시에 찾아오며, 그것이 심각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쉽사리 체감하지 못 한다. 또한, 위기의 이러한 특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그리고 이 사실조차도 우리는 인지하고 있다.


사실 위기가 닥치면 한없이 나약해지고 어쩔 줄 몰라하며 정신없다가도, 곧 자신이 처한 상황을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선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을 추스리면서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그저그런 불평불만만을 늘어놓을 것인가. 어찌 흘러가는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 흔들리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덤벼볼 것인가.

위기危機 : 위험危險과 기회機會


중국에 있을 때 위기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위기는 단순히 위험한 상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이고, 이 합성어가 가진 의미는 위험한 상황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과연 어떤 기회를 발견하고 어떻게 그것을 실천할 것인가. 그 시작은 분명히 주저앉지 않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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