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석 Feb 10. 2021

치킨 잘 먹었다고

직업에 대하여 - 꿈과 현실③

선생들의 눈빛이 눈에띄게 차가워졌다. 별로였다. 처음에는 미안했다가 조금씩 짜증나기 시작했다. 사무실의 중앙에는 큰 직사각형 테이블이 있었는데, 두명씩 서로 바라보고 6명이 근무했고, 나와 나머지 2명은 그 테이블이 아니라 벽쪽에 붙어있는 사무용 책상을 이용했다. 총 9명이 있었고, 대화는 많지 않았으며, 분위기는 조용했고 타자 치는 소리가 잦았다.


이런 조건에서 근무할 바에야 차라리 대기업으로 가자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신속한 판단과 더 신속한 실행력이 장점인 나는 9월부터 각종 대기업에 자소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입사하고 10일만이었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한글창을 작게 켜둔 채로 작성했지만, 하루이틀 뒤부터는 점심 시간이나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전체화면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모집 공고에 눈치볼 틈이 없었다. 아마, 타자를 칠 필요가 없는 놈이 갑자기 마감 시간에 쫓긴 것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타자를 치는걸 보고 몇몇 선생들은 직감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곧 떠날 것이라고.


그 동네는 밥값이 비쌌다. 우리 동네보다 1,000원이 비싼게 아니라 2,000원, 3,000원이 비쌌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밥 먹는 것도 짜증나고 별로였다. 물론, 첫월급을 받기도 전에 그만뒀기 때문에 월급을 운운하는건 옳지 못하다. 졸업을 앞둔 학생에게는 학식이나 학교 정후문의 밥값이 익숙할 터였다. 그 밥값의 2-3배라니..어쩐지 다른 선생들이 도시락을 싸서 다니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식단조절인줄 알았는데, 비싼 물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식단조절용 도시락도 아니었다.


12일이 되어가던 즈음. 하루는 매번 혼자 밥먹기도 적적해서 또 다른 남자 선생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이야기했다. 왠지 내가 먼저 먹자고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따로 먹을 것 같아서 먼저 이야기했다.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이 학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이제 4-5개월차였던 그 선생은 연봉이 적다는 말과 할만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앞으로 계속 하면 가망이 있을 것 같냐고 재차 물었다. 모르겠단다. '하긴, 4개월차가 무슨 수로 알겠어.' 그래도 적어도 31살이면 나름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듯 하다.


별로였다. 롤모델로 삼을 만한 선배도 없었고, 마음을 기댈 동료도 없었다. 만약 나를 감화시키는 리더가 있고, 마음을 흔드는 선배가 있으며, 의지가 되는 동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때의 나라면 못 벌더라도 버텼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은행을 들어가지 못 했을 것이고, 그 이후에 지금과 다른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점심을 먹은 다음 날. 부원장이 오더니, 나와 남자 선생에게 끝나고 치맥 한잔 하자고 한다. 아마 부원장은 학원에 대해 소극적으로 변한 나의 태도를 감지하지 못 했을 것이다. 첫 날 업무 안내를 받은 뒤에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이렇게 귀한 곳에 이렇게 누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허름한 치킨집에 들어갔다. 옛날통닭을 파는 호프집에 가까웠다. 부원장과 이사(?)가 우리 둘과 함께 했다. 맥주가 먼저 나왔다. 건배를 하고 난 뒤에 부원장에 의해 이사라고 소개된 남자가 장황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역사로 이 바닥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운영하는 학원이 없다고.. 앞으로는 출판업 등등해서 주식회사로 운영될 거라고.. 남자들은 기회를 잘 잡아야하니 지금 봉급이 적거나, 반복적인 일을 한다고해서 소홀히 하지말라고.. 다른 업계랑 비교하면 봉급도 괜찮고 안정적이라고..


그들이 말하는 이상은 나의 현실과 괴리가 컸다. 부원장이나 이사는 수 천, 수억씩 벌어가면서 밑에 있는 직원들은 업계 평균 연봉이라며 찌든 현실을 합리화하는 것도.. 차라리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얼굴을 일그러뜨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이러하지만, 선생들의 요구 사항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업무 조건을 개선해나가보겠다는.. 거짓말같은, 사소한 약속이라도. 물론, 그것이 일반적인 직장의 현실이겠지만, 어쩌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별로일 수밖에 없었다.  


맥주를 빠르게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음날 늦잠 잘테니.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잘 감추지 못한다. 그 때는 감추지도 않았다.

아무 말도 않고 작정하고 술만 마시니 두 사람도 어느정도 눈치를 챈 듯 했다.


잠실로 향하는 버스를 탄 뒤에 부원장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나의 청춘과 잠재력을 이곳에 쏟아부을 수는 없겠다고, 내일부터 출근이 어렵겠다고. 치킨 잘 먹었다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이 2주만에 마무리되었다.

2주치고는 꽤나 큰 교훈을 얻었다.

2014년의 일이다.




꿈과 현실의 비율.

섣부르지말 것.

차분할 것.

생각할 것.

매거진의 이전글 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