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설날, 설날의 엄마
1월 5일 오후였나. 1월 19일 녹화 예정인 <역사 저널 그날> 방송 섭외가 들어왔다.
'어.. 뭘 준비해야 하나, 전공 공부도 해야 하고..'
옆에 있던 동료 교사들이
'다이어트를 하셔야겠네요, 방송은 더 부하게 나온다던데.'
'아, 맞네. 다이어트 해야겠어요. 그렇지. 살 빼야 해.'
인생이 다이어트였던 나에게 바디프로필에 버금가는 미션이 생겼다. 대본이 나와서 익히는 것도 문제고, 역사 사실에 어긋나지 않게 말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괜찮게 보여지는 것도 나에게는 나름 문제였다.
꾸준히 해오던 운동에 강도를 조금 더 높였다. 코로나라고는 하지만 방학이어서 미리 잡혀있던 여행이며, 약속에 운동이 방해받기 시작했다.
결국 방송은 부하게 나왔다. 긴장한 탓에 눈도 더 붓게 나와서 주변에서 녹화 전날 술마셨냐고.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방송 일정이 나왔다. 23일.
'그래, 이번에는 덜 긴장하고 제대로 해보자. 살도 좀 빼고.'
설 명절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깔끔히 오트밀에 견과류를 조금 섞은 깔끔한 아침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달걀과 샐러드로 마무리 짓는 아름다운 식단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연휴 첫날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엄마가 여러 음식들을 해놓으셨다. 우리는 다른 친척 집에 가지 않는다. 그렇게 지낸지 거의 8-9년이나 되서 설 연휴는 그냥 연휴. 다만, 엄마는 그래도 명절 분위기를 내려고, 아니면 시끌벅적해야 할 명절이 조금은 쓸쓸한 분위기여서. 아마도 나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여러 음식을 해주신다. 각종 전, 산적, 잡채, 소고기 무국, 만둣국.. 등등
둘 뿐인 집에 먹을게 산더미처럼 쌓여간다.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맛이 없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엄마가 요리를 너무 잘한다. 엄마는 둘째였는데, 그 시절 그 많은 형제들 중에 하필이면 혼자 여자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해야 했다. 증조할머니 밑에서 호되게 배운 음식 솜씨는 나를 살찌웠다.
아침부터 만둣국을 푸짐하게 먹었다.
'그래, 그래도 설인데 만둣국 한 그릇 정도는 먹어야 하지 않겠어?'
엄마는 요리를 너무 잘한다. 막을 방법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