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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Feb 26. 2021

물에 잠기는 이츠쿠시마 신사        (嚴島神社)

천년 전 고달픈 삶들이여

히로시마는 시내 여행도 훌륭하지만, 주변 도시를 유람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여행 첫 날, 게스트 하우스 직원들이 추천해준 첫 여행지는 바로 히로시마 중심지로부터 남서부에 위치한 미야지마섬의 이츠쿠시마 신사였다. 사실, 히로시마로 오기 전에 '대강 이정도 가면 되겠지' 했던 곳이 이 신사였다. 거기에 '오코노미야끼 정도 한 판 먹고 오면 되는 것 아니겠어?'의 가벼운 마음으로 나는 히로시마에 온 것이었다.

게스트 하우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히로시마 역으로 와서 JR 산요 본선을 타고 30분을 달려왔다. 미야지마구치 역에 내리면 제법 관광도시스러운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다녀가는지 표지판으로 미야지마 섬에 들어가는 동선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직 먹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배를 채워야 했다. 아까 들었던 장어덮밥집. 빨리. 빨리. 역에 내리자마자 내 눈 앞에 가장 먼저 보인게 그 덮밥집이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나기도 했고, 평일이어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한 손에 DSLR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객 신분은 프리패스로 알 수 있었다. 덮밥집에 들어섰을 때 할머님께서 날 맞아주셨는데, 내가 일본어를 못 알아들으니 손짓으로 쭈뼛쭈뼛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가게 입구에는 친절히 장어덮밥 모형이 있었다. 파파고로 써가며 하고 싶은 말을 한 뒤에 주문을 마쳤고, 그제야 한숨 돌리며 가게 내부를 구경했다.

물을 두 잔이나 주셨다. 따뜻한 차와 시원한 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데 음식이 나왔다. 굉장히 빨라 나왔다. 롯데리아만큼 빨리 나와서 놀랐다. 장어덮밥이라니. 오사카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먹어본 것 말고는 처음이었다. 맛있었다. 사실 배가 너무 고파서 맨밥을 먹었어도 단맛으로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다만, 왜 양이 적은걸까. 왜 일본 음식은 양이 적은걸까. 일본 사람들은 정말 소식할까. 소식 문화가 있는걸까. 거짓말아닌가. 이렇게 적을 수가 있나.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많이 먹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흑흑. 2천엔인가를 지불하고도 배가 고프다니. 다음부터는 곱빼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해야겠다.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지만, 먹는 속도는 음식이 나온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편의점에서 에그마요가 잔뜩들어간 샌드위치를 하나 더 먹고 미야지마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 올라탔다.

약간 부산의 송도 같기도 하면서..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튼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한국인을 본 것 같았는데, 많지는 않았고 일본인이 가장 많았다. 아마도 다른 지역에서 단체 관광을 온 듯 했다. 이렇게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배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이 얼마나 있겠는가. 남이섬 정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바람과 경치를 즐겼다.

섬에 가까워질 때 신사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츠쿠시마 신사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밀물 때는 신사의 일부가 바닷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밀물 때 신사를 둘러봐야 경치가 장관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관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밀물이 있는 곳에 신사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저기 보이는 빨긴 기둥의 문은 도리이(鳥居 : 신사 입구에 세운 문)라고 부르는데, 저 높이만도 1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첫 창건은 6세기에 이루어지고, 중간의 개축 과정과 도리이를 세우는 시기는 12세기 헤이안 시대로 알려져 있다. 저 도리이가 바닷가를 향해 세워져 있는데, 아마도 저 문을 통과하면 용궁이라는 극락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정토 신앙도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천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문화재를 맞닥뜨렸을 때 그 문화재를 만들 당시를 떠올리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왜 만들었을까', '어떻게 만들었을까', '만들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등등.. 특히,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되는 경우에는 기획자와 제작자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돌을 자르고 나르고,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보게 된다. 따지고 보면 문화재만큼 잔인한 결과물이 없다. 그 잔인한 결과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현재의 우리가 더욱 잔인해질 수도 있다. 아무튼.


이츠쿠시마 신사는 아마도 다른 신사를 건축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밀물일 때는 물이 차올랐으니 자재를 나르지도 못하고, 건축 작업을 진행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썰물일 때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느냐. 뻘처럼 진흙으로 변해버린 땅바닥에서 어떻게 쉬이 작업할 수 있었을까. 이곳의 농민들과 노비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했을 것이다. 월등히 아름다운 만큼 그에 비례하는 고통과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문화재가 그러하듯, 이츠쿠시마 신사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끝날 때 즈음 미야지마 섬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뜻밖에도 반가운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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