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우연하고도 사소한 시작
학교에서의 교직 생활은 큰 사이클이 존재한다. 방학과 학기를 반복하는 사이클. 각 시기마다 주어지는 휴식과 해야 하는 업무가 반복된다. 발령받고 2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사이클에 대부분 적응했다. 방학이 제법 긴 시간이라는 걸, 3월은 바쁘고 힘들다는 걸.. 체감하게 된 것이다.
적응했다는 건 어느 정도 심적으로 여유로워졌다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 어떤 준비를 얼마나 해야 할 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딴 생각을 하기 좋은 시점이 되기도 한다. 여유로움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그 무렵엔 공부를 다시 하고 싶진 않았다. 책을 좀 꺼내서 읽긴 했지만, 답답함이 가시진 않았다. 무언가 활동적인 게 하고 싶었다. 혼자 하는게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교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아무래도 갈증이 있었나보다.
임용고시야 당연히 혼자 준비해야 했고, 학교에 발령나서 와보니 내 또래의 교사들은 하나도 없었다. 코로나19와 함께 발령을 받다보니 동기들과는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학교 교사들은 다들 나보다 15~30년 선배들이었다.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았고, 대부분 기혼이었다. 게다가 나는 교직과 전혀 관련없는 사회생활을 해온 탓에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아무리 같은 직업 환경에 있다고 해도 내 고민이나 생각을 쉽게 털어놓는 성격은 아니다.
다만, 나와 비슷한 환경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을 뿐이었다.
'저 친구는 어떤 마인드로 30대를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괜찮은 어른들의 모습으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2022년 2월 어느날, 늦잠을 자고 10시 즈음 일어나서 창밖을 바라보니 정말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푸른 하늘이 시리도록 눈을 파고들 정도로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 맑은 날씨였다. 나는 탁하고 따뜻한 겨울보다 추울수록 살이 에일 듯한 추위일 지언정 화창한 날씨를 더 선호한다.
패딩을 입고 집앞 공원을 한 바퀴라도 돌아야 하루가 즐거울 것 같았다.
그렇게 추리닝 바지에 패딩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켜 여러 일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메시지 한 통이 와있는 걸 확인했다.
"같이 뮤지컬 해보지 않을래요?"
뮤지컬은 그렇게 나의 인생에 느닷없이 다가왔다.
물론, 거창하거나 진지하게 전문 배우나 공식 데뷔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음악 교사의 제안이었던, 그래서 그저, 가벼운 취미로 다가온 게 전부였다. 사실, 그 무렵 하나의 취미 활동으로 합창단에 지원해볼까 생각하고 있었고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해두었었다. 음악 교사가 우연히 그 동영상을 보고, 내가 심지어 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나에게 교사뮤지컬연구회를 제안한 것이었다.
문제는 뮤지컬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뮤지컬이 뭔지도, 어떤 작품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꾸준히 품어왔던 호기심과 단조로운 일상이 내 마음을 움직인 듯 싶다. 무엇보다,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또래 교사들과 만나서 나름의 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로 다가왔다. 아마 노래만 조금 하면 된다는 말에 넘어간 듯 싶다. 적어도 음치는 아니었기에.
참.. 지금도 그렇지만, 꼭 물어봐야 할 것 같은 질문들을 나는 잘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 조심성이 없는건가, 추진력이 좋은건가. 단점이자, 강점이겠지. 어떻게 운영되고, 누가 가르치고, 어떤 작품을 하는 지, 언제 공연을 하는지,, 공연을 하긴 하는지? 깡그리 무시하고 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월이 되었고, 모 중학교에서 드디어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