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성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석 Mar 24. 2024

역사교사의 동북아 해외교류

점과 점 간 뜻밖의 만남

참 글쓰기가 어렵다.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렵지만,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쓴 글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어 더 그렇다. 생각이 모자란 경우도, 글이 형편 없는 경우도 모두. 그렇게 외면해 온 시간이 무려 4년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세상을 괴롭힐 무렵 끄적였던 몇 편의 일기말고는 브런치에 접속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교사가 된 지 5년 차. 4년의 시간 동안 역사 교육자로만 활동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감사하게도 몇몇 방송사에 출현하기도 했고, 인강을 찍을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예술 교육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즐겁고 아픈 경험을 쌓기도 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을 반드시 꼭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여러차례 다짐했다.


이 매거진의 이름을 사성록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師省錄


'교사의 성찰 일지'라는 의미로.. 

대학 시절 우리과 싸이월드 클럽 탭 중에 하나였나..? 

이름이 왜 익숙한 지 모르겠다. 아무튼.


정부의 코로나19 종식 발표를 접했다곤 하지만, 그 변화가 피부로 와닿는 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우선, 포털 사이트에서 코로나19의 확진자 수나 확산 추이 등의 통계가 사라지고, 언론에서도 더이상 보도를 안 하는 탓에 서서히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 그렇게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고, 사람들은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이 사실 자체가 이따금씩 떠오르면 "끝나긴 했나보구나"하고 잠깐 떠올리곤 한다.


그러던 중 무의식적으로 사라져만 가고 있던 그 힘겹던 시기를 수면 위로 끄집어올려 "아! 이제는 정말 끝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건 3월에 받아든 교육청의 공문이었다.


동북아 역사교류활성화 사업


각 학교의 역사교사들에게 전달된 공문이었다. 한, 중, 일 역사교사들의 직간접적 교류를 넓히고 동북아 국가 간 민감한 역사 분쟁을 해결하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나아가 각 국의 학생들이 평화공존의 역사인식과 건전한 비판적 사고를 함양해 더 나은 세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작업. 나는 코로나19가 터진 그 해에 발령을 받아 그 이전의 학교 문화나 역사교사의 대외 활동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신규 역사교사들은 교육부에서 매년 상해 임시정부 일대로 답사를 보내주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공문의 내용은 그런 일회성의, 일방향적인 답사의 형태가 아닌 진정성 있는 교류에 초점을 둔 듯 싶다. 이제 정말 코로나19가 끝났나보구나 싶었다.


교사를 하면서 꼭 하고 싶었던 목표가 있었는데, 해외 출장도 다녀보고, 강의도 다니면서 경험을 쌓는 것, 가장 큰 희망 사항은 대학 다니던 때 중국해외답사를 기획했던 그 작은 경험들과 제2의 무기로 삼자고 노력했던 중국어가 내 전공과 아주 밀접하게 묶여 활용되는 것이었다. 이번 사업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업은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었다. '학교 간 온오프라인 수업', '동북아 역사교류단 활동'이었고, 온오프라인 수업은 학교 사업이었기에 규모가 큰 편이었지만, 동북아 역사교류단은 학교 자체보다는 교사 1인의 대외활동 성격이 강했다. 학교 간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관리자들도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하며, 교무부와 연구부, 행정실도 함께 거들어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난 교사 간 직접적인 교류에 관심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동북아 역사교류에 눈이 갔다.


문제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단 한 명만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청서에는 언어 능력부터 관련 사업 경험 등을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부장교사 경력 등 신규인 나에게 불리한 채점 기준도 있었다. 바쁜 3월.. 포기할까 하다가 마음먹고 도전해서, 깔끔하게 내려놓자는 생각으로 신청서와 운영계획을 작성했다.


내가 가진 장점을 십분 강조해서, 정말 영혼까지 끌어올려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큰 강점이었던 어학 연수와 교환학생 관련 서류를 찾았다. 그리고 약 3년에  달하는 중국어 강사 경력. 마지막으로 취득했던 17년도 신HSK6급까지.


그리고 얼마나 절실했으면.. 대학 다니며 학과의 답사 책임자로 2년을 봉사했는데, 그 때 중국 답사를 위해 기획했던 12년 전의 서류를 이잡든 뒤졌을까.


아무튼, 지원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수업하고 돌아와 앉았는데, 결재대기 문서가 하나 있길래 봤더니



[알림] 동북아 역사교류활성화사업 대상자 선정 결과


라는 제목의 문서였다.


나에게 이 문서가 도착했다는 건..

내가 선발되었다는 것.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답사 기획, 중국어 강사와 같은 작으면서도 역사교사라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경험들이 이렇게 모여들어 강력한 힘이 되어주었구나라는 생각에. 물론, 어떤 절차와 경쟁을 거쳐 선발되었는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확신이 오랜만에 드는 순간이었다. 괜찮은 생각으로 괜찮은 삶을 살아왔다고.


올해 나에게 주어지는 사람과 기회들에 최선을 다할 것.

책임을 느끼고 최선을 다 할 것.


언어든 전공이든 다시 열중해야겠다:)


부장님한테 말씀드렸더니 빵 사오라고 ㅎ_ㅎ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 온라인 수업 열정적으로 해주셔서 감사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