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의 상생 시나리오
4월 첫 주 온라인 개학이 확정되면서 학교 단위로, 그리고 과목 단위로 어떻게 수업을 구현할지 여러 논의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구글 클래스룸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각 과목 별로 어떻게 수업을 꾸려나갈지 결정해야 했다. 학교 단위로 어떤 플랫폼을 이용할지만 통일하고 각 교과에서 선생님들이 어떻게 수업을 할지는 자유롭게 결정했다. 선생님들마다 수업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학교 3학년 학생들의 첫 온라인 수업은 나의 역사 수업이었다. 3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아마 나의 수업이 잘 되든, 망하든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한 번씩 보게 될 것이었다. 나는 온라인 수업이 결정되자마자 교실에서 실제 학생들에게 수업하는 것처럼 판서 수업을 촬영해서 업로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학생들이 집에서 혼자 수업을 듣는 상황에서 수업에 가장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은 직접적인 강의식 설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EBS나 다른 1타 강사들의 동영상을 활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런 방식으로 학생들과 첫만남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학생들은 나의 가르침으로 길러내고 싶었다. 교수 실력이 부족하든, 수업 촬영이 오래 걸리든 내가 생각하는 교사로서의 자질들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만이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나도 성장할 수 있을 터였다.
내가 생각하는 교사로서의 최우선 자질은 교수 능력이다.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해서 수업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교사든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자질이다. 물론, 교수 능력만 좋으면 단순히 강사에 불과하지만, 강사와 차별점을 두어야 한다는 변명으로 교수 능력을 간과하는 경우가 발생해선 안 된다. 코로나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교육 문제가 꾸준히 언론보도를 통해 부각되었고, 그 중 하나가 온라인 수업의 질이었다. 그것은 바로 교사들이 EBS의 수업 동영상과 과제물 링크를 그대로 퍼다 나른다는 내용과 이에 대한 일반 대중, 그중에서도 특히 학부모들의 부정적인 시선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게 수업을 준비한 교사들은 그 때 당시만해도 온라인 수업이 임시로, 일시적인 현상인 것으로 생각하고 안일하게 준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러한 방식의 대응은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나 다름 없다. 공교육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교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 시점에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충분히 대안이 존재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교육관을 토대로 그동안 쌓아온 교수 능력을 발휘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수업을 제공해오고 있다.
두 번째는 학생들과의 소통이다. 단순히 학생들의 기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바라는 바를 수업에 충실히 반영해서 수업의 질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 이는 교수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교사가 학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학생에 대한 인식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교사와 학생 관계를 수직적으로 만들 것인가, 수평적으로 이어나갈 것인가. 학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학생들의 불평불만이 어떤 때에는 스트레스와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수업에 대한 소중한 피드백이 되어준다. 교원 평가를 피할 것이 아니라, 규정으로 정해진 것 이외에도 스스로 학생들과 피드백을 나눌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학생들은 가장 순수하고 정확한 피드백을 전달해준다. 그 피드백이 교사의 수업에 반영되어 수업의 변화가 일어나면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는 놀라우리만큼 높아진다. 자신이 수업의 주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수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는 이러한 분위기는 소통 방식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작은 고민에서 시작된다.
나는 두 달동안 약 6-7 차례의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2-3주 수업부터 학생들의 피드백을 수렴할 수 있는 설문조사를 매주 진행했다. 일방적으로 수업 내용을 전달하다보니 학생들이 나의 수업을 어떻게 느끼는지, 건의사항은 없는지 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문조사를 통해 마이크가 필요하다는 점, 동영상의 화질 개선과 판서 글씨의 정확도, 과제 난이도와 양의 조절, 나에 대해 궁금한 점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동시에,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수업에 반영되었다는 점에 대해 교사인 나에게 고마움을 느껴주었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가 수업의 주체라면 수업에 있어 서로의 생각을 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학생들이 '새삼스럽다', '고맙다'는 반응을 보여준 것이 마냥 만족스럽지만은 못 했다.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아직도 우리 교육은 갈 길이 멀다.
교수 능력과 학생들과의 소통 중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엇 하나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두 가치 중에는 순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후자만 강조된다면 속 빈 강정이고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학생과의 소통 역시 단순히 대화 코드가 맞다는 걸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의 두 달 간의 노력이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기를,
그리고 20년, 30년이 지난 후에도 이와 같은 말들을 당당히 해나갈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