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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남동뱀딸기 Apr 12. 2024

우리는 아직 너를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무엇부터 써야 할까.


나는 이번주 대전 일정을 취소하고 태백집에 왔다.

견공이 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몇 주 전부터 뒷다리를 절었었다.

산에 많이 다녀서 근육통인가 보다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피를 토하고 혈변을 본 뒤, 그때부터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 날은 산책 중 몰래 닭뼈를 먹은 날이라서 닭뼈 탓에 내장이 상한 줄 알았다.

그런데 동물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자 암이란다.

꼬리뼈와 뒷다리가 전부 암 진행이 됐고, 이 정도면 다른 곳에도 전이가 됐을 거라고.


따스한 봄햇빛을 받게 하려 산책을 갔는데 가로등 세 개를 지나친 뒤 주저앉았다고 한다.

어느 날은 가로등 하나를 지날 때마다 앉아서 쉬기도 했다.

아버지가 안아서 차까지 데려가려다가 너무 무거운 탓에 잠시 내려놓고 얼른 차를 끌고 오려했는데, 견공이 울면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기어 왔다고.

결국 오며 가며, 안고 이동했다.


울어야 할까. 울고 싶지 않은데.


우리 집에 오기 전의 너는 네 형제들 중에 제일 발이 컸다. 어미품에서 젖을 떼고 우리 집에 오던 날, 너는 우리 엄마 품에 안겨서 차에 탔다.

나는 네가 온 뒤 어찌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당시 우리는 새 집에 이사를 갔었는데 나는 매일매일 도둑이 들고 귀신이 들어오는 악몽을 꾸었다. 그런데 네가 오던 밤의 꿈에선,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귀신을 네가 갈기갈기 찢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넌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하루든 일주일이든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차에 같이 타서 여행을 함께했다. 심지어 태백에 온 뒤로는 단 10분도 혼자 집에 남겨진 적이 없었다. 언제나 가족과 함께 움직였다.


소형견 크기였던 너는 순식간에 큼지막하게 자라났지만, 작은 동물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순하게 지내주었다.


밭일을 할 때면 물뿌리개도 옮기고, 마늘도 옮겨주었었지.

산행에선 들개와 멧돼지로부터 가족을 지켰다.

참 고생 많았다. 그리고 너무나 고맙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의 곁을 네가 십 년 이상 지켜주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함께 운동했고, 아버지가 쓰러지면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너는 아들의 역할을 했다.


갑자기 이렇게 아파지고, 손 쓸 수 없을 만큼 암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니.



처음 혈변을 보았을 때, 이미 그때 상태가 안 좋아서 급사하려나보다 했었다.

그날 아버지 꿈에서 돌아가신 외조부님이 나오셔서 너를 두고 가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거부했다고 한다.

그때 차라리 두고 왔더라면 덜 아팠을까.


거의 먹질 못해 뼈만 남았고, 휘청거리며 조금밖에 걷질 못하지만 살아갈 수 있는 병이라면 어떻게든 너와 함께 했을 텐데

왜 손 쓸 수 없는 상황까지 왔는지.


나는 너의 마지막을 지킬 수가 없다.

너의 무덤도 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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