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ari
봉구는 저녁밥을 마치고 할매 옆에 앉았다. 방 안에는 등잔불이 가물거렸다. 바람이 벽 틈을 타고 스며들어 희미한 한기가 돌았다. 구석에는 짚 위에 메주 덩어리가 놓였고, 토방 한쪽엔 신문지에 덮인 무와 배추가 쌓여 있었다. 감바구니에서는 홍시 냄새가 은근하게 풍겼다. 구들장은 따뜻했지만, 창호문에 부딪히는 바람은 점점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할매, 내일이 대사리 간조 맞지라?"
할매는 바늘에 꿰어 놓았던 실을 손가락으로 팽팽하게 당겼다.
"어디 갈라고 그란디?"
"뭍타리 좀 가볼라고 하는디라."
그 순간, 할매의 손이 멈췄다. 실 끝이 흔들리다, 그대로 떨어졌다.
"거길 어째 갈라고 허냐?"
할매는 바늘을 내려놓고, 봉구를 빤히 바라봤다.
"그냥 한 번 가보고 싶어서라. 거시기... 영실이도 같이 갈라 허는디라잉."
봉구는 말끝을 흐렸다. 할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끝으로 낡은 솜이불을 천천히 쓸었다.
"거긴 물길이 열릴 때만 들어갈 수 있는디, 길이 열리믄 닫히는 법이여."
봉구는 말없이 할매를 바라봤다. 할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섰다. 봉구도 따라 일어나 문을 열었다. 밤하늘엔 달이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그믐이었다. 가느다랗게 남은 달빛이 옅은 구름 사이로 흐릿하게 새어 나왔다. 바람이 불어오자 마당 한쪽 감나무 가지가 살짝 흔들렸고, 마른 감잎 몇 장이 바람에 실려 휘돌았다. 할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을 눈썹 위에 올렸다. 달빛이 약한 대신, 하늘에는 별들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내일 새벽 간조구만 본께."
봉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할매는 여전히 눈을 떼지 않은 채 달을 바라봤다.
"근디..."
봉구가 고개를 돌려 할매를 바라보았다.
"니가 거기 가는 건 괜찮겄냐?"
봉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괜찮제. 영실이랑 같이 가볼라 허는디, 별일 있것어라?"
할매는 말없이 봉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무언가 묘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니, 거기 함부로 다닐 곳 아닌 거 알제?"
"알제. 길만 열릴 때 살짝 보고 올 거랑께."
할매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았다.
"길이 열리믄 닫히는 법이여. 잊지 말어잉."
봉구는 할매 말씀이 걸렸지만, 영실이와 갈 생각이 더 커서 깊이 새기지 않았다.
새벽 공기가 살을 에듯 매서웠다. 봉구는 대길마을로 향하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에서 들판은 검은 물결처럼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고, 바람이 지나칠 때마다 묵은 풀잎이 쓸려갔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짙은 정적이 감돌았다. 낮이면 부엌가에서 솥뚜껑 여닫는 소리, 아낙들이 부르는 소리가 퍼질 골목도 새벽녘에는 숨을 죽인 듯 조용했다.
영실이네 집이 가까워지자 봉구는 걸음을 늦추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작은 마당, 그리고 낮은 지붕. 집 안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마루 끝에 희미한 새벽빛만이 걸쳐 있었다. 그는 문 앞에 서서 한 손을 가만히 문기둥에 얹었다. 그리고 낮게 불렀다.
"영실아... 나여. 봉구여."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봉구는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다시 불렀다.
"영실아."
한동안 적막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방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번졌다. 삐걱— 낡은 나무문이 조심스레 열리면서, 어둠 속에서 영실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여, 이른 새벽부터."
그녀의 목소리는 잠에 묻혀 나직했다. 봉구는 가볍게 웃으며 마루 가까이 다가섰다.
"오늘 대사리 간조여. 뭍타리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랑께."
영실은 문을 조금 더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부엌 쪽에서 새어 나온 등불이 마당 한쪽을 희미하게 적셨고, 돌담 너머 하늘엔 흐린 구름이 몰려 있었다.
"진짜여?"
"그라제. 어제 할매한테 확인까지 해봤는디, 이번 아니믄 다음 대사리 때까지 기다려야 헌당께."
방 안에는 아랫목의 잔열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개켜둔 이불이 한쪽으로 조금 밀려 있었다. 영실은 조용히 안을 돌아보았다.
"갈 거여, 안 갈 거여?"
봉구의 말에 영실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라믄, 나가 옷만 챙기고 나갈랑께. 기다려."
봉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루 끝에 조용히 걸터앉았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서 옷을 챙기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는 두 손을 비비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흩어지며 희미한 그믐달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새벽빛이 바다 위에 희미하게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바닷가에 섰다. 물은 많이 빠졌지만 아직 길이 완전히 열린 건 아니었다. 갯벌 위로 찬물이 밀려와 봉구와 영실의 발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뭍타리로 향하는 바닷길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잔잔한 물결이 남긴 흔적 위로 얕은 웅덩이들이 반짝였고, 멀리 작은 섬처럼 솟은 뭍타리가 어둠을 벗고 있었다. 봉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봐봐, 이제 건널 수 있겄다잉."
영실은 바닷길을 내려다보았다.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곳곳에 웅덩이가 남아 있었고, 갯벌은 미끄러워 보였다. 그녀는 조심히 발을 내디뎠다. 두 사람은 발을 맞추며 천천히 길을 건넜다. 갯벌이 물을 머금고 가늘게 숨을 내쉬듯, 천천히 가라 앉았다. 발목까지 차오른 바닷물이 살을 에듯 차가웠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물결이 찰박거렸다.
그때였다.
푹—
영실이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갯벌이 깊숙이 꺼졌다. 발이 빠지면서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이고!"
봉구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훅—
봉구의 손이 영실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순간, 영실의 몸이 봉구 쪽으로 기울어지며 서로 가까이 밀착되었다. 찰나의 정적. 바람이 스쳤다. 차가운 바닷물이 영실의 발목을 감싸며 찰박거렸다. 두 사람의 손이 단단히 맞잡힌 순간, 볼이 동시에 뜨거워졌다. 봉구는 얼른 손을 놓으며 한 발 물러섰다.
"조심허라니까."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어딘가 흔들려 있었다.
영실은 얼굴을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
"알았어. 괜히 헛디뎌 불어서 놀랐제?"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조금 전까지 발목을 감싸던 물이 어느새 발등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길은 점점 더 열리고 있었고, 뭍타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닷길을 따라 걸어온 두 사람은 뭍타리 앞에 멈춰 섰다. 새벽빛 아래, 작은 섬은 마치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고요했다. 바위 틈마다 해초가 검푸르게 달라붙어 있었고, 물이 빠진 갯벌엔 조개껍데기가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봉구는 신발 끝으로 모래를 툭툭 차며 말했다.
"이제 다 왔다잉. 조심해서 올라온께."
영실은 조용히 섬을 바라보았다. 물이 빠진 자리에는 물결이 남긴 얕은 무늬가 선명했다. 그녀는 봉구를 따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허연 모래가 진짜 곱다야."
"여기 모래가 좀 다르제? 갯바닥이랑 다르게 억수로 곱아야. 물길 한 번 싹 지나가믄 반질반질해진당께."
영실은 허리를 숙여 모래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미세한 입자들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갔다.
"와, 손에 착 감기네잉."
봉구는 앞장서서 바위 위로 올라서며 말했다.
"거 보라 안 했냐. 한 번만 길 열리믄, 여긴 딴 세상 같제?"
영실은 봉구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네. 여 여기 진짜 신기허다야."
바람이 불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해초들이 흔들렸고, 멀리서 갈매기가 낮게 날았다. 봉구는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먼 바다를 가리켰다.
"저 바다 봐라잉. 지금은 조용헌디, 한두 시간 뒤면 다시 물 들어와 불어. 우린 그전에 나가야 혀."
영실은 바다를 바라보다가 봉구를 향해 웃었다.
"알겄어. 걱정 마라."
봉구는 바위에 걸터앉으며 영실을 바라보았다.
"아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디 그냥 갈수는 없제."
영실도 따라 앉으며 말했다.
"그르제. 이렇게 힘들게 왔는디, 그냥 가믄 억울하제."
두 사람은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파도 소리, 먼 곳에서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 그리고 흩어지는 바람 소리만이 귓가에 남았다.
바닷길이 완전히 열리자, 두 사람은 섬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뭍타리는 여전히 고요했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적막했다. 바위틈마다 해초가 붙어 출렁였고, 곳곳에 조개껍질이 반짝이고 있었다. 칡넝쿨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그 사이로 바람이 잦아들었다. 봉구는 익숙한 길로 영실을 이끌었다.
"저기여. 내가 만들어 놨는디, 함 봐바."
영실은 봉구의 손끝을 따라 눈을 돌렸다. 거기, 뭍타리 한쪽 바위 틈 사이에 작은 공간이 있었다. 바람이 들지 않도록 돌을 쌓아 막았고, 안에는 나무 조각을 엮어 만든 의자 같은 게 있었다.
"니가 만든 곳이라고?"
"응. 할매랑 우무가사리 하러 올 때마다, 틈틈이 만들었당께. 비바람도 막아주고, 밤에 여기 앉아 있으면 별이 쏟아질 것처럼 보인다잉."
영실은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가 앉아보았다.
"진짜, 따뜻하네. 바람도 안 들어오고."
봉구는 가져온 자루를 풀었다.
"내가 고구마 좀 챙겨왔응께, 불 지펴서 구워 묵자잉."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불을 지폈다. 바람에 불씨가 흔들리다 이내 타올랐다. 고구마를 불 속에 넣자,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향이 피어올랐다. 영실이 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디 봉구야, 뭍타리는 원래부터 섬이었는가?"
봉구는 불빛에 비친 영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아니지. 원래 본섬이랑 붙어 있었제. 근디 언젠가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몰아치더니 이 땅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 불었단다."
영실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뭍타리여?"
봉구는 나뭇가지로 불을 휘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제. 본섬에서 떨어졌어도, 사람들은 이 섬이 여전히 이어져 있길 바랬응께. 머시냐 '뭍'이랑 '다리'를 합쳐서 불렀다고 허더라."
영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근디, 왜 대사리 간조 때만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여?"
봉구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배 있는 사람들은야 아무 때나 올 수 있겄제. 근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물이 빠져야만 길이 열리는 거 아니겄냐."
영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봉구는 나뭇가지로 불을 휘저으며 이번엔 낮게 말했다.
"그래도 아무도 함부로 안 온당께. 배가 있다고 막 오고 그런덴 아니여."
"와?"
봉구는 나직이 웃었다.
"니도 느끼잖여. 여기가 그냥 섬이랑 다르다는 거."
영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 조용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오래 머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장작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불꽃이 흔들렸다가 다시 일어섰다. 영실은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봉구는 고구마를 불 속에서 살짝 굴리며 조용히 말했다.
"이 섬이 떨어져 나간 뒤로, 한동안 바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허더라. 밤이면 어떤 날은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이게 굵고 낮은 울음 같다고도 허고."
영실이 불빛 너머 봉구를 바라보았다.
"……울음소리?"
"어. 그냥 바람이 불면 나는 소린가 싶다가도, 꼭 누가 서럽게 우는 거 같았단다. 그래가꼬 마을 사람들이 겁을 엄청 냈지."
영실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불을 바라보았다.
"그라고는, 어쨌는디?"
봉구는 장작에 불을 살짝 더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이 대사리 간조 때마다 여기 와서 굿도 허고, 노래도 불러줬다더라. 섬이 외롭지 않게. 우리랑 끊어진 게 아니라, 이어져 있응께 안심허라고."
영실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참 묘허네. 꼭 사람 같어."
"그라제. 사람도, 섬도, 원래는 다 이어져 있는 거 아니겄냐."
그 순간, 고구마가 다 익었다. 봉구는 장작에서 노릇하게 익은 고구마를 꺼내서 영실에게 하나 건넸다.
"자, 뜨거우니까 조심허고."
봉구는 익은 고구마를 건네며 영실을 바라봤다. 불빛이 그녀의 볼을 어슴푸레하게 물들였다. 영실은 고구마를 조심스럽게 쥐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달다. 진짜 맛있네잉."
봉구도 고구마를 베어 물었다. 그때, 불빛이 살짝 흔들렸다. 영실의 볼에 시커먼 재가 묻어 있었다. 봉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니 볼에 묻었어."
"어디?"
영실이 손을 뻗어 닦으려 했지만, 봉구가 먼저 손을 뻗었다.
"가만 있어봐라. 내가 닦아 줄랑께."
봉구의 손끝이 영실의 볼을 스쳤다. 그 순간, 뜨거운 불빛이 살며시 흔들렸다. 장작불이 타닥거리며 작게 숨을 토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웃으며 고구마를 나누던 순간과는 전혀 달랐다. 봉구는 손을 내리려다 멈췄다. 그리고 망설이듯, 조심스럽게 영실의 얼굴을 향해 다가섰다
"……봉구야."
영실이 작게 중얼였다. 봉구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영실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조개껍질들이 가늘게 부딪히며 바람 소리에 섞여 잦아들었다.
불빛이 흔들렸다가 이내 다시 고요해졌다. 봉구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영실도 미동 없이 봉구를 바라보았다.
"……이상허네."
영실이 먼저 입을 뗐다.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귓가에 또렷이 울렸다.
"머시가?"
"아까까지는, 그냥 너랑 장난치는 것 같았는디…… 지금은……"
영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은?"
봉구가 낮게 물었다. 영실은 불빛 너머로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은, 좀…… 떨린다잉."
봉구도 미소를 지었다. 그는 조용히 영실의 손을 잡았다. 이번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익숙한 체온이 손끝에 스며들었다.
"나도…그래."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불이 타닥거리며 타올랐다. 영실이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봉구야."
"응."
"우리, 담에도 올 수 있을까?"
봉구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뭍타리 위로 희미한 새벽달이 걸려 있었다.
"글쎄. 길이 열리믄 올 수 있겄지."
"……그렇겄지."
영실은 손끝으로 모래를 쓸었다. 작은 조개껍데기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흘러내렸다.
"나중에, 오래 지나고 나도…… 여기 다시 올 일이 있을랑가 모르겄다."
봉구는 영실을 바라보았다.
"언제고, 길만 열리믄 오면 되제."
그는 가만히 말했다.
"길이 열리믄, 다시 올 수 있응께."
그 말은 마치 언젠가 이곳에 다시 와야 할 운명처럼 들렸다. 봉구는 다시 손을 뻗어 영실의 머리칼을 살짝 쓸어 넘겼다.
영실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새벽이 깊어가고 있었다. 바다 너머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봉구는 불을 한 번 더 지펴, 남은 고구마를 불 속에 넣었다. 불빛이 조금씩 낮아졌다. 고구마 타는 냄새가 희미하게 바람을 타고 퍼졌다. 봉구는 남은 고구마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것만 마저 먹고 가자."
영실은 장작불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뭍타리는 여전히 고요했다. 그러나 그 순간, 섬은 두 사람을 품었지만, 끝내 오래 머물게 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