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ari
무당할매는 향을 피우며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감고 기운을 읽으려 해도, 텅 빈 어둠뿐이었다. 무당은 다시 한 번 부적을 쥐고 기운을 더듬었다. 하지만 손끝에 잡히는 건 공허한 허공뿐, 마치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상허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잉.”
할매의 얼굴에 희미한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늘 보이던 것들이, 늘 감지되던 것들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불안하게 했다. 촛불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이런 적이 없었는디…”
영실의 얼굴이 굳었다. 무당은 조용히 촛불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한 불꽃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동안 침묵하던 무당이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 쓰것어. 내가 더 기도해볼 테니께, 사흘 후에 다시 오믄 어쩌겄는가?”
영실은 불안한 눈빛으로 무당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서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영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영실은 언제부터 이 길을 걷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서 발을 떼었고,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조차 흐릿했다. 흙길을 따라 바람이 스쳤을 것이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희미했다. 무당할매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이상허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잉.”
그 말이 뇌리를 짓눌렀다.
언제 마당에 들어섰는지도 알지 못했다.
아궁이엔 검은 물이 고여 있었다. 영실은 바가지를 들어 물을 떠냈다. 흐린 물결이 일렁이며 남은 재가 둥둥 떠올랐다. 몇 번이고 물을 퍼내도 바닥까지 내려앉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시게를 움켜쥐고 아궁이 속을 긁어냈다. 굳어버린 재가 부서지며 쩍쩍 갈라졌다. 손목이 저릴 만큼 밀어냈다.
방으로 들어가자 눅눅한 공기가 그녀를 감쌌다. 영실은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훑었다. 닦고, 또 닦았다. 구석구석을 손톱으로 긁어내고, 다시 훑었다. 마치 닦으면 닦을수록, 보이지 않는 것까지 지워질 것 같았다. 그러나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영실은 마당으로 나가 되비를 움켜쥐었다. 거친 대나무 살이 땅을 긁으며 작은 돌멩이가 튀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되비질을 할수록 먼지가 일어났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손끝이 저려오고 팔이 떨릴 때까지 밀어냈지만, 눈앞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아이들이 동네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큰아들은 마당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췄다. 낮게 가라앉은 저녁 공기 속에서, 마당을 쓸고 있는 어머니의 빗자루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큰아이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아부지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둘째 아들이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술 먹고 오는 거 아녀…?”
영실은 아이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마당을 쓸었다. 온 힘을 다해 밀어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마당을.
제각에서 뻗어 자고 있던 봉구는 오후가 되자 천천히 눈을 떴다. 축축한 나무 바닥과 지푸라기 냄새가 뒤섞인 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머릿속이 띵하고 속이 쓰렸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옆에 놓인 술병을 더듬었다. 병째 들이켜자, 미지근하고 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힘이 빠져 그대로 다시 주저앉았다.
오늘도 하루를 그저 흘려보냈다. 일도, 시간도, 나 자신도, 모두 술에 쓸려 내려갔다. 정신을 차려보려 했지만, 그럴 힘조차 없었다. 혼자 숨어 있는 이 제각 안에 울리는 건 술병의 흔들림과 마음의 공허뿐이었다.
"에라, 모르겄다."
봉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다시 술병을 기울였다. 제각 안에는 묵은 술 냄새가 짙게 깔려 있었다. 나무 바닥에 묻은 지나간 시간들처럼, 술은 그 안에서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하고 싶었다. 혀가 꼬부라지고 눈앞이 흐릿해질 때까지, 세상에 대해 원망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술은 가슴속에 가득 찬 분노와 무력감을 씻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빈 자리에 술냄새만 더 짙게 퍼져갔다.
끝내, 봉구는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리기 위해 더 많은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술이 몸을 채우면 채울수록, 그가 숨기고자 했던 감정들이 더욱 깊이 눅여드는 듯했다. 결국 그는, 온전히 잃어버린 자아와 함께,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맡겼다.
술기운이 다시 올라오자 봉구는 휘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각 문을 나서며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얼굴을 고쳐 썼다. 흘렸던 눈물도, 한탄도, 술기운에 쏟아낸 넋두리도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 비틀거리며 마을 길을 걸었다. 논둑길에서는 바람이 불어 억새가 흔들렸다. 그런데도 봉구의 마음은 전혀 평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요함이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마을 길을 걸었다.
봉구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영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루 왠종일 어디를 싸돌아다니고 온다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보다는 서운함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봉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짜증을 냈다.
"밥이나 차리랑께."
정지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쨍그랑, 쨍그랑—. 영실은 아무 말 없이 부엌에서 밥상을 차렸다. 그러나 밥상을 방에 내려 놓으면서 기어코 그녀는 불만을 터트렸다.
"아니, 도대체 어디서 뭐하셨는디요? 나는 애타다 뒤지것는디, 남편이라는 사람은 그놈의 술독에 빠져 사니 내가 살것소!"
봉구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순간 밥상을 힘껏 뒤엎었다.
쨍그랑!
그릇과 반찬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소리는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 찢어지는 소리가 봉구의 귀에 깊숙이 박혔다.
"염병! 그냥...!"
봉구는 그 순간,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르게 손을 들어 영실의 뺨을 후려쳤다.
찰싹—
방 안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실의 얼굴이 한쪽으로 홱 돌아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뺨을 감쌌다. 충격에 말을 잃었고, 눈물 한 줄기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때,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작은아들이 엄마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었고, 큰아들은 봉구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아부지, 싸우지 마소!"
하지만 봉구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두 눈에 분노가 가득 차서 큰아들을 밀쳐버렸다.
"저리 안 가? 이 징글징글헌 것들! 마당에 가서 엎드려 뻗쳐!"
아이들은 겁에 질려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두 손을 땅에 짚고 벌벌 떨며 엎드려 있었다. 영실은 무너진 듯 주저앉아 흐느꼈다. 봉구는 더욱 분노에 차서 쏟아냈다.
"니미럴, 복은 좆빼기만큼도 없는 것이 시집 와서 뭐시 그리 잘났다고 닥달이여!"
영실은 고개를 떨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얼굴 한쪽이 얼얼하게 저려왔지만, 그보다 더 아픈 것은 봉구의 말이었다. 온몸을 휘감는 분노와 서러움, 그리고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 그러나 그녀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마당 한구석에 벌을 서고 있었다. 작은아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고, 큰아들은 벌벌 떨면서도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 상 다시 차려!"
봉구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방 안을 가르며 내리꽂혔다.
영실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 그 눈빛은 이미 말라버린 우물처럼 깊고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나뒹구는 깨진 그릇 조각들을 피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손을 뻗어 솥뚜껑을 열었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밥을 푸려던 손이 잠시 떨렸다. 바가지를 움켜쥐고, 다시 일어났다. 그녀는 묵묵히 상을 차렸다. 봉구는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은 듯,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이년이 참말로, 사람을 미쳐불게 허네…"
영실은 말없이 밥상을 내놓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봉구는 술기운이 덜 빠진 몸을 흔들며 상 앞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고는 몇 번 허공을 가르다가, 이내 밥을 퍼 넣었다. 씹고, 삼키고, 또 퍼 넣었다. 그릇을 부수고 소리를 지르던 손으로 밥을 떠먹는 모습이 기괴할 정도로 태연해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영실이 입을 열었다.
"인자는…"
봉구는 씹던 밥을 멈추고 눈을 들었다.
"인자는, 도저히 못 살겄소."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 안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봉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시라고?"
영실은 천천히 봉구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제 끝내야 쓰겄단 말이요! 십년이 넘도록 손찌검 당하고 이렇게는 못 살어라! 인자 봉구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응께."
순간, 방 안이 얼어붙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울지 못하고, 숨만 죽였다. 마당에 불어온 바람이 문틈을 스치며 쓸쓸한 소리를 냈다. 봉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며 식은땀이 맺혔다.
"이, 이년이 지금 뭐라 씨부리는겨."
그러나 영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오므라졌다가 펴졌다.
"내일… 나갈께라이. 애들은 내가 델고 갈텐께요."
봉구는 벌떡 일어나더니, 상을 박차고 일어섰다.
"이 년이 돌았나, 나가긴 어딜 나가!"
그러나 영실은 그의 분노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죽일 것이 아니라면, 나는 나가겄소."
봉구는 숨을 헉, 들이마셨다. 봉구의 눈이 뒤집혔다. 술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눈빛이 이글거렸다.
"뭐시? 나가?"
순간, 봉구는 거친 손으로 영실의 팔을 움켜잡았다.
"가긴 어딜 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영실은 그대로 마당으로 끌려 나갔다. 그녀의 맨발이 거친 마당 흙바닥을 스치며 질질 끌렸다. 마당의 서늘한 공기가 뺨을 스쳤지만, 봉구의 분노는 그보다 더 뜨거웠다.
"엎드려 뻗쳐, 이 년아!"
봉구는 거칠게 영실을 바닥에 내던졌다. 영실이 땅을 짚으며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봉구는 가차 없었다.
"똑바로 안 해?"
힘으로 눌러가며 강제로 엎드리게 했다.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으며 영실의 몸이 떨렸다. 차가운 흙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봉구는 손에 잡히는 대로 내리쳤다.
퍽!
종아리, 둔부, 등짝.
퍽! 퍽!
"니미럴 썅년이, 뭐? 집구석을 나간다고?"
둔탁한 소리가 어두운 마당을 울렸다. 영실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입술을 깨물어도 아픔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퍽!
봉구는 손에 든 나무 막대기를 힘껏 휘둘렀다.
"내가 니 다리몽댕이를 부숴버릴랑께, 그리 알어!"
퍽! 퍽!
몸이 휘청거렸다. 영실의 등이 활처럼 휘어졌다. 숨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몰아쳤지만, 그녀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아이들의 울음이 터졌다.
"아부지, 제발 그만 때리소!"
큰아들이 엄마를 덮으며 온몸으로 감쌌다. 작은아들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영실의 등을 감싸 안았다.
"엄마 아퍼라…! 제발, 제발 그만하랑께요!"
작은 손들이 영실의 몸 위에 겹쳐졌다. 봉구가 다시 손을 들자, 큰아들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나도 때리소! 나도 맞을 텐께, 엄마는 때리지 마소!"
봉구의 손이 멈칫했다. 흔들리는 눈빛. 그러나 곧 다시 분노로 불타올랐다.
"이거 놔! 놔 새끼들아!"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아이들은 더욱 세차게 엄마를 감쌌다. 그 순간, 둘째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흐느꼈다.
이대로, 이 가족이 통째로 깜깜한 밤 속으로 사라져버렸으면. 모든 게 끝이 났으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도, 자신도. 이 차가운 밤이 가족을 한순간에 삼켜 버린다면. 그리하여 더는 맞을 일도, 울 일도, 버텨야 할 일도 없다면.
봉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술기운이 가라앉을수록,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이 점점 선명해졌다. 나무 막대기를 쥔 손이 떨렸다.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한 건지, 봉구는 깨닫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막대기를 마당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쾅 닫아버렸다.
"빌어먹을…"
마당에는 아직도 아이들의 흐느낌이 남아 있었다. 영실은 힘없이 땅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작은 손들이 서럽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둘째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영실은 문득 무당할매의 말을 떠올렸다.
“이상허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잉.”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영실은 떨리는 손으로 둘째의 얼굴을 감쌌다.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차가운 밤하늘에 떠 있는 흐릿한 달이 보였다. 어쩌면… 이 밤이 지나면, 달도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