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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움텄다. 벌써,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용찬은 비교적 인적이 드문 언덕 위 벤치를 찾아 앉았다. 가방을 던져 두고 손에 쥔 빵 봉지를 뜯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햇살이 잔가지 위로 떨어져 얼굴에 빗금을 쳤다. 엉덩이를 들어 자리를 조금 옮겼다. 촘촘한 그늘 안으로 숨었다. 파란 바탕에 잔잔히 흐르는 구름 조각을 보자니 비 오는 날이 그리웠다. 용찬은 빵을 봉지에서 반만 꺼내어 쥐어들었다가 한 입 먹고 나서 봉지에서 완전히 꺼냈다. 부시럭대는 소리가 거슬렸다. 두툼한 손으로 빵을 붙들고 입을 다시 크게 열었다. 메마른 공기와 함께 빵을 빱 빱 뭉개어 삼키면서 용찬은 입가에 묻은 크림을 엄지로 밀어 닦았다. 깔깔깔, 멀찍이 들리던 소리가 가까워졌다. 과잠을 걸친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안경 쓴 남자아이가 노란 머리 여자아이에게 장난을 쳤다. 여자아이는 씩씩대는 척 남자아이를 두들겼다. 아 진짜 미쳤냐 너. 또 다른 여자아이가 말했다. 너네 그럴거면 그냥 사귀라고 했지. 입 안에 씹을 게 많이 남았는데도 용찬은 빵을 한 번 더 베어물었다. 크림이 한 쪽에 몰려 있었는지 이번에는 버석버석했다. 빵이 치아에 떡처럼 달라붙었다. 혀를 굴려 잇몸과 치아에 들러붙은 건더기를 훑어냈다. 콜라도 같이 살 걸, 용찬은 후회했다. 되걷기에 매점은 멀었다.
힘 빠진 눈으로 시선을 아무 데나 두었다. 이틀은 못 잔 사람처럼 천천히 눈꺼풀을 내렸다가 들어올렸다. 아직 색이 누런 잔디밭이 건너편에 느릿느릿 펼쳐졌다. 곧 눈부시게 푸르러질 것이었다. 붉은 사탕 껍질 하나가 풀밭 가장자리를 굴렀다. 열심히 턱을 놀리면서 동공에 힘을 풀고 루비 색 박엽지를 흐린 눈으로 담았다. 주름진 표면에 햇빛이 바스락거렸다. 쓰레기치고는 번뜩이는 구석이 있었다. 쓰레기라든지 자연에 대립하는 인공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용찬의 눈에는 멀찍이 보이는 철골 구조물이 오히려 그렇게 보였다. 푯말에 '자유로의 항해'라 적힌 작품인데, 철근 여러 묶음을 이리저리 휘어 놓은 모양새로 잔디밭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무엇이 자유고 무엇이 항해를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학생들 사이에서 철수세미로 불릴 뿐이었다. 의도한 바가 있겠지만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를 바라고 내놓은 형상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용찬은 생각했다. 밋밋한 용찬의 뒤통수 쪽으로 바람이 살랑였다. 사탕 껍질이 잔디밭 안쪽으로 나풀나풀 날아들었다. 저 작고 얇은 포장지가 더 설치 미술품에 가까워 보였다. 알맹이 빠진, 무심코 버려진, 색깔이 강렬한. 사색의 영감은 이 쪽에서 더욱 반짝거렸다. 자연과 인공, 자연성과 간섭 사이 자신은 어디에 놓일 수 있을까. 철수세미와 사탕 껍질 중 자신과 더욱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 미처 못 사온 콜라 대신 용찬은 텁텁한 머리에 까만 생각을 한참 빨아올렸다.
용찬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왜 죽으려고 하느냐. 그러면 왜 살려고 하느냐. 죽음은 텅 빈 백지. 삶은 빼곡한 서사시. 죽음과 삶이 대칭 관계라는 개념은 이해했다. 반면 죽음은 애석하고 삶은 아름답다는 등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밤은 나쁘고 낮은 훌륭한지. 겨울은 혹독하고 여름은 찬란한지. 죽음을 나쁘게만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매도가 아닐까. 결국 죽음은 나쁜가에 대해 용찬이 내린 답은 '모른다'였다.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다. 삶에 대한 같은 질문에도 같은 답을 할 수 있었다. 끝까지 다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다. 삶도 모르겠고 죽음도 모르겠다면 둘 중 무어를 택하든 나쁜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모르는 것에서 모르는 것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일일이 좋거나 나쁘다고 단정할 수 없다. 각자 내린 선택에 따른 결과를 마주할 뿐이다. 삶에서 삶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혹은 어쩌면 죽음에서 다시 삶으로.
용찬은 유서를 가지고 다녔다. 마지막 해명이었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선택'을 하게 될 지 몰랐다. 유서가 있어야 외출할 기분이 들었다. 뒷일은 솔직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에게는 일러줘야 할 내용이 있었다. 각자 저지르지 않은 과오를 탓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낭비에 가까운 감정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상처 때문이 아닙니다. 삶이 매분 매초 괴로워서도 아닙니다. 이대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 뿐입니다. 슬프지 않고 화가 나지도 않습니다. 다만 즐겁거나 기쁘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마음입니다.
유서에는 이런 내용을 적어 두었다. 가느다란 글씨로 진심을 담았다. 죽기로 결정짓고 사는 삶은 갈망하며 사는 삶과 달랐다. 희망은 없지만 덤덤할 수 있었다. 행복을 탐하지 않는 대신 고요를 얻었다. 농담과 장난을 좋아했고 친구를 좋아했다. 좁긴 해도 깊은 관계를 조금은 맺었다. 좋았지만 어쩔 줄을 몰랐다. 혼자 남았을 때와 함께일 때의 감정 폭이 컸다. 용찬은 그 낙차가 오랫동안 어색했다. 굴러떨어지는 데 지쳤고 힘이 빠졌다. 방과 후 모든 자리를 거절하고 제 방에 쳐박히면서부터는 표정을 잃었다. 사고와 행동 전반에 물음표가 달렸다. 게임이든 술이든 작은 자극에 종일 골몰하게 된 날이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었다. 무엇이든 빠져서 몇 시간쯤 붙들고 있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고 나는 왜 살고 나는 어떻게 행복해야 하고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고 사랑해볼 기회는 다시 올 지, 이성과 살을 뒤섞어 볼 일이 남은 평생에 또 있을지, 속상해서 울고 신나서 웃을 날이 또 찾아올지, 아니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차가운 세상의 표면에서 차마 얼어죽지는 않기 위해 부단히 몸을 굴리고 열을 올려 고통을 간신히 참아내며 필사적으로 살아가야만 할지 엎치락 뒤치락 울렁이는 생각의 나선으로 빨려들어가는 데서 그럴 때만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잘은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생각 없이 즐거울 방법을 몰랐다. 무언가 하기 전부터 잡념이 너무 많았다. 더 의미있는 걸 하고 싶은데 하면서 그것이 대체 무언지는 끝까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무엇으로 즐거운가. 대부분의 시간을 용찬은 끝없는 혼란 속에서 보냈다. 벗어나고 싶었다. 삶이 맹맹했다. 살아가는 맛을, 사는 데 필요한 미각을 잃었다. 끝을 내고 싶었다.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유서를 썼다. 가방 안에 챙겨 다녔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면 한 번씩 꺼내어 읽기도 했다. 결심을 되새겼다. 나는 죽을 거야. 용기를 얻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뭐. 유서는 용찬의 해명문이자 신경안정제이자 결의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유서가 사라졌다.
찾아나선지 벌써 만 하루가 다 되었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빵을 껌처럼 짝짝 씹으면서 용찬은 코로 숨을 길게 뿜었다. 전날에는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을 전부 돌아다녔다. 동선을 되짚으면서 샅샅히 훑었다. 복도에 있는 쓰레기통까지 뒤졌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남이 보게 되면 곤란한 내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 잠을 설치고 아침부터 학교로 다시 향했다. 첫 수업이 오후에 있는 날이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같은 곳을 바삐 돌아다녔고 또 한번 허탕을 쳤다. 위태로운 마음이었다. 유서는 보기 싫게 일어난 감정의 거스러미를 차분히 정돈해 주었다. 죽기로 한 결심이 역설적으로 삶을 다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용찬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새로 쓸 수는 없었다. 그 마음이 아니었다. 다시 쓴다면 그것은 가짜였다. 연인에게 쓴 손편지를 전달하기 전에 분실하여 기억을 더듬으며 비슷한 내용으로 다시 쓰는 것과 같았다. 의미가 다르다. 누를래야 누를 수 없이 비어져나오는 마음을 간신히 종이 위에 꾹꾹 압인하여 새기려면 오로지 그 순간의 감정만이 유효했다.
남은 빵 조각을 마저 입에 넣고 용찬은 가방을 무릎 위로 가져왔다.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가방 안쪽 수납공간에 든 여덟 칸짜리 도큐멘트 파일을 다시 꺼내들었다. 유서는 세 번째 칸에 있어야 했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강의별로 구분해 둔 수업 자료와 과제 프린트물 사이를 신경질적으로 헤집기 시작했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집 밖에서 유서를 꺼내 본 곳은 빈 강의실 뿐이었다. 긴장을 푼 적은 없었다. 친한 척하기 좋아하는 동기가 등 뒤에서 나타나 뭐 보냐면서 뺏어들 것만 같았다. 주변을 살펴 다 읽고 나면 잘 접어 원래 자리에 돌려 놓았다. 세 번. 바깥에서 유서를 꺼내 본 횟수는 많지도 않았다. 바람이 다시 한 번 용찬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루비색 사탕 껍질이 언덕을 굴러 시야에서 벗어났다. 또 한 무리가 시끄럽게 다가왔다. 용찬은 가방을 다시 옆으로 치웠다. 상체를 수그리고 무릎에 팔꿈치를 괴었다. 냉정하게 따져 보기로 했다. 며칠 전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잔뜩 취해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잤다. 그 날 무의식 중에 유서를 꺼내어 보고 자신이 어딘가로 치워버렸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용찬의 가방을 몰래 뒤져서 유서를 훔쳐 갔을 경우 뿐이다.
마뜩잖지만 이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상황만 따져 보면 둘 다 가능한 일이었다. 용찬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 흔적을 과음한 다음날 발견한 적이 몇 번 있다. 새벽 시간에 작성한 의미심장한 핸드폰 메모. 깔끔하게 정리된 싱크대. 메모와 설거지는 용찬이 습관처럼 하던 일이지만 술이 세세한 기억을 날려버렸다. 또 용찬은 화요일과 목요일에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두 개 들었다. 두 강의 사이 한 시간 반 공강이 있었고 연달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가방을 자리에 그대로 둔 채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용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 가량은 누구라도 쉽게 용찬의 가방에 접근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속 시원한 답이 아니었다. 역시 술 취한 자신이 방 안 어딘가에 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방을 살펴보기는 했지만 그렇게 열심은 아니었다. 좁은 원룸이니까 쉽게 눈에 띌 거라는 생각에 대충 훑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집을 뒤져보기로 했다. 분명 나올 것이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답을 도출한 것 같아 용찬은 살짝 마음을 놓았다. 사색은 가끔 도움이 되지, 하면서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용찬은 가방 지퍼를 닫았다. 수업 시작까지 한 시간은 더 남았지만 일어날 채비를 했다. 입안이 빡빡했다. 뭔가 마시고 싶었다. 가방을 어깨에 막 걸쳐메고 일어나는데 아는 얼굴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용찬과 눈을 맞추고 엷게 웃어 보였다.
-뭐 해 여기서?
보경이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용찬은 심드렁한 표정을 얼른 지웠다. 대신 떠오른 놀란 얼굴은 미처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