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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Nov 06. 2023

첫 취업

1. 조직 부적응자

첫 취업은 사람을 얼마간 단 꿈에 흠뻑 젖게 만든다. 백수에서 돌연 한 전문지의 취재 기자가 되었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실업률이 어쩌고, 노는 청년이 어쩌고 하는 소식 모두 하루아침에 딴 나라 얘기가 된다. 자존감 낮던 한심한 나에게 작별을 고한다.


이제 만나자는 친구들 연락을 돈 때문에 피할 필요가 없다. 부모님의 걱정을 한시름 덜어 낸 자신이 장하다. 효도를 한 기분마저 든다. 비로소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는 ‘뽕’이 연신 차오른다. 뜬금없이 미래의 내 가치를 허허실실 셈해 보기도 하고, 기합을 가득 넣는 기이한 행위를 반복한다.



‘가만 보자, 내가 여기서 몇 년 버티면 어느 정도 위치가 되나. 그때쯤 되면 n년차라고 할 만큼 경력이 좀 차겠지. 아니 그 전에, 새 연봉 협상은 언제 하지? 입사 기준으로 만 일년이라 했나 아니면 해 넘어갈 때마다라고 했나. 어쨌든 그래, 일단은 돈 보고 들어온 거 아니니까 경력 좀 쌓고 상황 봐서 연봉이 마음에 안 들면 이직 생각해 보자. 몇년 구르면 아무래도 이바닥 경력직인데, 일터 옮기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야. 근데 아무렴 내가 열심히 하면 연봉도 섭섭치 않게 올려주지 않겠어? 기왕 들어온 거 열심히 해서 인정 한 번 받아보자. 내 꿈을 향한 첫 번째 여정이네. 힘내자. 아자!’



엉성한 거품은, 참 쉽게도 꺼진다. 수습기간 세 달이면 충분했다. 사회의 씁쓸하고 비릿한 맛을 몸소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다. 풍선처럼 부푼 희망은 고놈의 주둥이를 쥔 손에 힘이 빠지는 순간 피시식 볼품없는 소리를 내며 맥없이 납작해졌다.


‘난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실은 가장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가 많다. 나도 일정 부분 그랬다. 업계 전반의 처우나 환경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형편없는 페이와 다달이 이어지는 격무. 알면서도 뛰어든 내가 딱 하나 바란 것은 보람 뿐이었다.


‘그냥 뭐 다니는 거지. 얼마나 다닐 지도 모르고. 작은 회사잖아.’ 이렇게 말하면서도 남들처럼 좋은 처우 생각하고 뛰어든 일이 아니니 상대적으로 쉽게 나만의 보람과 만족을 얻으며 다닐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때는 잘 몰랐다. 보람은 낭만의 영역이고, 일에서 낭만을 찾기란 정말 힘들다는 것을. 잡지사는 실물 책을 매달 내야 하기 때문에 달마다 ‘마감 기간’이라는 게 존재한다. 마감 작업은 보통 열흘에서 2주 정도 진행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주말 출근과 휴일 근무,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이 당연스레 따른다. 공휴일, 추석이나 설 대목에 마감이 끼면 그 해 명절은 없다. 새벽 서너 시 정도에 퇴근하여 집에 들러 샤워만 하고 한두 시간 쪽잠을 잔 뒤 다시 출근한 적도 많다.


그럼에도 입사 후 첫 한두달은 딱히 버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할 만하냐 묻는 선배의 말에, “솔직히 하나도 안 힘들어요!”라 답하는 객기도 부렸다. 가끔 한 번씩은 엽기적이게도 이렇게 일하는 내 모습이 꽤 멋지지 않나 생각했다.



백수일 때, 정규직을 가진 친구들이 가끔 몹시 부러웠다. 바쁘다 죽겠다 앓는 소리를 해도 제 나름대로 잘 사는 듯 보였다. 친구들을 포함해 많은 4년제 대학 졸업생이 택하는 일반적인 취업 방식을 따르지 않은 것은 삶에 대한 나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어서지만, 거의 모든 순간 지난 선택에 대해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하는 생각들과 싸워야 했다. 보이지 않는 압력과 때로 눈에 직접 보이는 사회적 압박에 꽤 오랜 시간 짓눌려 왔다. 취업은 이러한 마음의 짐을 싹 덜어내 주었다… 고 첫 취업 당시에는 생각했다.


최저 시급을 간신히 맞춘 수준으로 급여를 받으며 무한한 노동력을 회사에 바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려거든 이 정도 뽕은 차야 했을지 모른다. 나는 멋있다. 이건 멋있는 거야.



세 번 정도 마감을 거듭하고 나니, ‘직장인이 된 멋진 나’를 둘러쌌던 상서로운 안개가 슬슬 걷혔다. 앙상하고 볼품없는 일상이 슬근히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가 부족한 업무에 지쳐갔다.


발전한다는 생각을 조금도 할 수가 없었다. 위에 하나 있던 선배는 내가 입사한 지 한 달만에 퇴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달마다 책 한 권을 내는 데 아주 큰 책임과 의무를 지닌, 그러나 권리와 주체적 자유는 박탈당한 일개 노예가 되어 있었다.


일한 만큼의 보상은 전혀 없고 일에 대한 보람 역시 전무했다. 잡일과 타부서 뒤치닥거리, 다달이 반복되는 마감 등 쳐내야 할 일만 많았다. 쓰고 싶은 아이템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도 점점 줄어들었다. 월초마다 진행되는 기획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던지면 짤리기 일쑤였다.



한 번은 회의 때 해당 꼭지의 필요성을 열성적으로 밀어붙이며 편집장과 작은 설전을 벌였다. 결국 듣게 된 소리는 “네가 뭘 아냐”는 말이었다.


황당했다. 풋내기인 내가 잘 모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생각을 자유롭게 던졌을 때 건설적인 토론을 하거나 방향을 함께 잡아보는 게 아니라 네가 뭘 아냐는 수준의 반응을 마주한다면, 나로서는 항상 입을 꾹 다무는 게 최선이 된다.


직장 내 회의에 따르는 부조리를 이 때 처음 느꼈다. 경력은 없지만, 자신 있게 아이디어를 개진하려면 그 아이템이 노련한 경력자가 마련한 것과 같은 수준이어야만 하는군. 이런 전제가 깔리자 나는 사고를 멈췄다. 아랫직급이고 짬이 안 되면 나대지 않는 것이 이득이라는 참 귀하고 값진 ‘처세술’을 배운 것이다.



입을 다물고 내 생각을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무거운 권태감에 휩싸였다. 취재와 인터뷰가 잡혀 있는데 제대로 준비를 못 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첫 취업의 단물은 껌 씹듯 허무하리만치 쉽게 빠져버렸고, 남은 것은 반복적인 저작운동처럼 의미 없고 힘 빠지는 일상 뿐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여전히 촌스러운 낭만을 좇는 사람에 가까웠다.


의미와 보람이 품어 낳은 따끈한 행복을 꿈꾸는 몽상가. 새삼 한국 사회의 노동자로서 최악의 포지션을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취재 준비가 미흡했던 어느 날, 편집장이 물었다.



“최기자, 일 하기 싫어?”



예 맞습니다. 너무 싫어요. 라는 말을 삼키고, 나답지 않은 핑계를 댔다.



“사실 요즘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제가 업무에 집중을 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저 그만두는게 맞을 것 같아요.”



첫 취업의 짧은 환희는 그렇게 단숨에 화장되었다. 입사한 지 만 칠개월에 가까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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