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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Nov 08. 2023

백수는 쉽고, 취업은 어려워

1. 조직 부적응자

다시 백수가 됐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왔다. 아니 원점에서 조금은 더 뒷걸음질쳤다. 월급쟁이 생활 조금 했다고, 취업하기 전보다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사회인 이름표를 뗀 자리에 남은 희미한 자국을 날마다 들여다보았다. 홀가분하면서도 허탈한 감정에 휩싸였다. 노동의 대가로 퍼올린 꿀이란 어찌나 빈약한지, 손가락에 찍어 한 번 쪽 빨면 사라질 양이었다. 그마저 얻으려거든 시커멓게 몰려든 벌에 온 몸을 쏘여야만 했다.


그만두면서 이직을 고려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또다시 그 고통과 좌절을 감내하며 이 바닥에 기웃거릴 자신이 당장은 없었다. 경력이라 이름붙이기도 어려운 만 칠개월의 애매한 ‘경험’만이 어설프게 남았다.


당시 나는 한국 나이로 스물 여덟이었다. 그 뒤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취업을 유예하며 짧지 않은 방황을 했다. 2년을 통째로 ‘놀았던’ 셈이다. 실제 나는 놀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극적인 구직이나 국가공인 시험 준비 등을 별다르게 하지 않았으니 한국 사회에서 누군들 이렇게 표현하지 않을까.


백수의 고뇌와 좌절을 패배자의 한심한 푸념으로 간주하는 살벌한 사회가 아니던가. 아마 이 시기에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다면 면접관마다 분명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두고 노는 동안은 뭐 했어요?“


뭐 하긴, 그저 근근이 생활비와 용돈을 벌었다. 생동성 시험 알바, 임상시험 알바 등으로 한 번에 이삼백 만원씩을 벌어 두고 아끼고 아껴 서너 달을 살곤 했다. 가족에게는 이 사실을 숨겼다. 생동성과 임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위압감에 “그렇게 위험한 일을 왜 해?”라고 만류할 게 뻔했으니까.


친구들은 또 피팔이냐, 매혈기 쓰러 가네 하며 농담 섞은 우려를 건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갖은 일용직 알바로 돈을 벌어 본 내게, 확실히 임상은 노가다 하루 뛰는 것보다 안전하고 꿀같은 일이었다. 내 고집 누가 말리나.



얼마간은 그 외 별다른 무엇도 하지 않았다.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 연명해 나가는 데만 집중했다. 이 사회에 적응해 살 만한 정신머리를 어떻게 갖추느냐, 그것이 최대 관건이었다.


그즈음 자괴감과 무력감이 빚쟁이처럼 찾아왔다. ‘나는 어쩌면 정말 패배자가 아닐까.’ ‘시스템에 적응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면 그냥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는걸 인증한 거 아냐?’ 스스로를 마구 채찍질하는 고독하고도 은밀한 시간이 늘어났다.


방에 쳐박혀 멍한 눈을 꿈뻑이며 연금복권에 당첨되는 몽상에 빠져 있기도 했다. 다달이 들어오는 ‘꽁돈의 기쁨’을 맛보기에 그만하면 현실적인 생각이었다. 적어도 하늘에서 매 달 1일마다 돈이 떨어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으니.



아편이 든 곰방대를 물고 나자빠진 청나라의 노인네처럼 실없는 망상을 뻑뻑 태우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다시 글을 쓰자는 생각이 마구 밀려왔다. ‘그래서 그걸로 앞으로 뭘 어떻게 할 건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임마. 그냥 뭐라도 해 보는거지, 속으로 자답하며 동네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일을 그만둔 지 일 년은 넘은 시점이었다. 언제나 나에게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다. 2013년부터 꾸준히 글감을 메모해 왔다. 외골수인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어 담아내는 데는 글이 가장 타당한 그릇이었다. 자, 그러면 내용물은 무엇을 담아 낼까 하니 떠오르는 것은 단연 술, 그 이외에는 없었다.



술은 언제나 생명 없는 나의 뮤즈였다. 술에 단순 취하기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주류를 만나보는 데 더 큰 기쁨이 있었다. 잡지 업계에 뛰어든 가장 큰 이유도 사실은 전문 기자로써 술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맥주에만 일정한 지식을 갖고 있던 나는 그간 접해보지 못했던 주종과 많은 술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돈이 없어 업장에는 방문하지 못하고 남대문시장 등을 돌며 최대한 싸게 구해 방구석에서 소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맛 본 술은 가벼운 리뷰를 곁들여 블로그 등에 올리고, 술에 관련한 글감과 아이템을 구상하여 써 보기도 했다. 그 자체로 완성도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기보다 일종의 습작을 뽑으며 자기충족감을 높이는 의미가 더 컸다.



뭐라도 하다 보니, 뭐라도 될 기미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가 어느 날 한 잡지사의 구인 공고를 보내온 것이다. 와인에 대해 다루는 와인 전문지였고, 취재 기자를 구하고 있었다. 때마침 와인에 관심이 가 이것저것 마셔 보던 시기였다.


옳커니 싶으면서도, 적잖은 고민이 따랐다. 직장 생활, 거기에다 잡지 일이란 게 결단코 쉽지 않다는 현실을 처절하게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너무 오래 ‘놀았다’는 생각과 함께, 면접 정도야 그냥 보고 와도 아쉬울 게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찬찬히 공고를 잘 살펴 본 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내려갔다. ‘나는 술과 글에 진심이고 미쳐 있는 사람이에요’라는 메시지를 최대한 담백하고 진실성 있게 담아서 제출해 버렸다.



결과는 서류 합격.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면접 본 당일 돌아가는 길에, 사장이 직접 한 번 보겠다는데 다음 날 다시 방문해줄 수 있냐는 면접 담당자의 전화까지 받았다.


오, 2차 면접이라. 그쯤 되니 기대감이 샘솟았다. 모든 구직자가 그러하듯 모 사이트를 통해 기업 리뷰를 훑고 평균 연봉 조회까지 꼼꼼히 싹 마쳤다. 홈페이지에 드러난 수치상으로는 전에 다니던 잡지사보다 처우가 괜찮아 보였다. 기대가 더 커졌다. 실없는 공상과 무지성 셈법이 또다시 가동되었다.


‘그래, 솔직히 다른 업계에 비해서는 모든 게 수준 미달이 맞지. 그래도 요 정도면 업계에선 나쁘지 않잖아? 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 게다가 술! 술을 다루잖아. 와인 전문지 기자. 얼마나 값진 타이틀이냔 말이야. 원하던 거잖아. 그대로 쭉 몇 년 경력만 쌓으면 아마…’



최종 면접을 보러 가기 직전까지 헛된 공상과 ‘행복 회로’는 계속해서 돌아갔다. 결전의 날 당일. 고령의 사장과 사무실에서 마주하여 별 의미 없는 질답을 교환했다. 마치 내가 이미 일하기로 한 사람이 된 이상한 분위기였다.


면담 비슷한 짧은 면접을 아리송하게 마친 뒤, 전날 면접을 주선한 실무자 2인과 별도 공간으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으니 그제야 그들은 나를 고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만면에 희색을 띤 채 “왁! 진짜요?”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소심한 나로서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수준에서 감정을 정돈해 냈다. 편집장이라 직책을 밝힌 실무자는 업무의 개요를 간략히 설명한 뒤 이윽고 연봉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그래 이제 본론이 나오는군.’ 잠자코 기다렸다.



“전에 잡지 경험이 있긴 한데, 일단 1년이 안되어서 경력으로 받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신입 기준으로 저희가 지금 제시할 수 있는 연봉 수준은 이 정도인데, 괜찮아요?”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가 언급한 숫자는 3년 전 첫 취업을 하며 받던 최저 시급 수준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이다. 예측한 연봉과 상당한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미 제멋대로인 공상에 빠져 미래를 그리며 조바심이 나버린 나에게 딱히 물러설 곳은 없었다.


과감히 연봉을 협상하는 멋진 내 모습을 면접 전에 시뮬레이션 해보기도 했지만 결정적 순간이 되니 나도 힘없는 ‘K-면접자’에 불과했다. 표정이 바뀌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하고, 애써 기합찬 대답을 끄집어 냈다.



“네 하하. 괜찮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내내 양가감정에 괴로웠다. 재취업을 했다는 기쁨과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얼함의 온도차는 상당했다. 속으로나마 할 수 있는 감정 표출이란 딱 이 정도였다.



‘이런 제기랄,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잡지사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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