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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Jan 17. 2024

만성피로에 명약은 딱 하나

2. 회사와 나, 우린 제법 안 어울려요

눈꺼풀이 절반은 내려앉았다. 누군가 입매를 꿰어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입꼬리는 바닥을 향해 추욱 늘어진다. 뒷목이 점점 뻐근해져 온다. 시멘트라도 주입한 것처럼 어깨가 무겁고 땅땅하다. 연신 고개를 좌로 꺾고 우로 꺾고 불편한 부위 언저리를 손으로 주물러 댄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눈이 뻑뻑하다. 넋 놓고 업무 비슷한 무언가를 하다 정신을 차려 보면 나도 모르게 목을 주욱 빼고 손은 몸통에 가까이 붙인 ‘공룡 포즈’를 취하고 있다. 턱을 바짝 밀어넣고 가슴을 쫙 펴 준다.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뜬다. 여전히 졸음은 쏟아진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물도 한 모금 마신다.


잔뜩 부산스럽게 굴다 도로 사무실 제 자리에 앉는다. 이제 조금 몸이 풀렸으면 싶지만 어림 없다. 10분쯤 지나면 모든 게 그대로다. 녹아내린 플라스틱처럼 피곤기가 몸에 입자 단위로 엉겨붙어 떨어질 기미가 없다. 피곤의 굴레에 종신토록 씌여 버린 것만 같다.




언제가 마지막일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과연 어느 시기에 ‘몸이 가볍고 상쾌하다’는 기분을 느껴 봤었는지 모르게 되었다. 착실한 직장인이 되어 보기로 마음 먹은 뒤로는 녹슬고 쪄든 기운만이 일상을 지배한다. 얼빠진 표정과 몽롱하고 탁한 눈이 기본 사양이다.


만성이 된 피곤기의 근원을 찾자면, 단연 스트레스다. 육체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모두 포함한다. 복합적인 문제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직장 생활에 있어서만큼은 스트레스 역치가 비교적 낮다. 누군가는 덤덤하게 받아들일 만한 환경에도 스트레스를 쉬이 받는다.


하루에 수 시간을 쓰는 출퇴근 시간 역시 스트레스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 빠르게 기 빨리는 경험을 하려면 러시아워 때 만원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출퇴근길이 기력을 급속으로 방전시킨다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시간은 ‘완속 방전’ 과정에 가깝다. 회사는 천천히, 그러나 아주 집요하게 노동자의 온 몸 구석을 쑤석거려 남아 있는 기력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업무를 겨우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올 즈음이면 알맹이는 온데간데 없고 껍데기 뿐이다. 현관문을 넘는 순간부터 힘주어 유지했던 표정과 몸이 와르르 쏟아지듯 흐트러진다. 휴우우우. 하이고. 하. 갖가지 버전의 탄식을 쏟아낸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열심히 살았다’는 적잖이 희망찬 자기위안은 이직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졌다. 점점 ‘오늘 하루도 엉망진창이 되어 간신히 돌아왔다’ 쪽에 더 가까워졌다.




방에 들어와 옷을 정리하고 곧바로 씻는다. 루틴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나 침대에 몸을 던져 한참을 뻗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웬만해선 곧바로 샤워를 하러 간다. 일종의 의식이다. 머리 위로 솨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하루간 마주했던 거지 같은 기억을 바삐 털어내는 것이다.


덕지덕지 묻은 오물 같은 고단함을 한 차례 털어내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나에게는 시꺼먼 진흙을 잔뜩 묻힌 신발을 신고 침대에 올라가는 것과 같다. 씻고 나와야 그제서야 조금 쉴 수 있는 기분이 된다.


씻으면서 매일 생각한다. 몸 뿐만 아니라 이 진득한 피로감까지 시원하게 싹 씻어낼 수는 없을까. 아무래도 이 정도의 피곤기는 좀 너무하다. 혹시 내가 어떤 병을 가진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한 번은 ‘지속적인 피로감’, ‘직장인 만성 피로’, ‘피로 푸는 법’ 따위를 키워드로 한참 검색을 해 보기도 했다.



‘오호. 지나친 피로감을 느낀다면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의심해 볼 수도 있다고. 증상은 뭐지?’



*갑상선기능저하증 증상


-만성피로

-우울감

-무기력감

-변비

-부종

-식욕 감소

-체중 증가

-근육통

.

.

.



대충 훑어봤을 때 다수 증상에 해당되는 것 같다. ‘와, 이거네.’ 하면서 열심히 갑상샘 질환에 대해 검색을 시작한다. 하지만 깊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해당되지 않는 게 너무나 많다. 이상하게도 약간 실망감이 찾아든다. 어떤 질환으로나마 이 피곤기를 설명할 수 있다면, 어딘가에 확실한 약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샤워를 마친 뒤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다. 식사까지 다 하고 나면 하루가 모두 끝나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실제 잠에 들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도 그렇다. 엉덩이를 잔뜩 바깥으로 뺀 자세로 소파에 벌렁 나자빠진다.


TV 테이블 위에 놓인 게임 콘트롤러를 바라본다. 게임이나 할까 싶어서 집어든다. 그런데 안 한지 몇달은 되어서 전에 하던 걸 이어하려니 또 뭐부터 해야할 지 모르게 된다.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보면 그조차 숙제처럼 느껴진다. 패드를 잡은지 오 분도 안 되어 집어던진다. 피로감 너머 권태감이 어른거린다.


예전에는 분명 스트레스를 풀어 주었던 것들이 이제는 기력이 없으니 피곤하게만 느껴진다. 즐겨 보던 TV 예능프로그램도 너무 길다. ‘이걸 한 시간 반 가량 보면 나는 이게 끝나자마자 잠들어야 하겠지. 이렇게 내 하루가 끝나는건가. 그건 너무 허무하잖아.’ 하며 미리 피곤해한다.


결국 하게 되는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하려다 마는 행동만을 반복한다. 넷플릭스에 접속해 두고 썸네일만 주구장창 훑다가 꺼 버린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냥 즐겁고는 싶은, 모순된 감정에 휩싸인다.




인간이 그렇다. 이렇게 살다 보면 확실하고 직관적인 ‘자극’을 자주 찾게 된다. 예를 들면 먹는 것이다. 에너지를 쓸 필요 없으면서 가장 빠르게 위로를 주는 행위 아닌가. 자극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단 것에서, 다른 누군가는 맵거나 짠 데서 단편적인 희열을 얻고, 또는 그저 아주 많이 먹는 데서 만족을 얻는 부류도 있다.


술을 마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나도 종종 아내와 함께 맛있는 음식에 술을 마신다. 퍼석거리고 맥 빠지는 일상에 위안을 주는 확실한 처방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극들은 당연하게도 다양한 부작용을 수반한다.


잦은 음주는 수면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컨디션을 망치는 요소로 작용한다. 스트레스를 받아 술을 마시고, 술을 마셔서 더욱 피로해진 심신으로 일을 하느라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와 그 스트레스를 안고 또 술로 해소하려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성으로 제어하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항상 성공하지는 못한다. ‘잘 사는’ 남들 보기에 바보 같은 이런 행동은 자주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방전될 만큼 방전되면 이성보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욱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회할 걸 알면서도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루 종일 군것질을 끊임없이 한다. 자기 직전에 아주 매운 음식을 먹는다. 혹은 그닥 필요도 없는 물건을 충동구매 한다. 단편적이지만 아주 확실한 자극에 천착한다. 인간이 그렇다.




결국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침대에 눕는다. 시간이 잘도 흘러갔다. 이제부터 자면 일곱 시간, 아니 잘 하면 일곱 시간 반은 잘 수 있다. 충분한 수면은 그나마 공인된, 권장되는 피로 회복 방법이다. 그런데 좀처럼 잠에 들기가 싫다. 누운 채로 핸드폰만 분주하게 뒤적이게 된다.


스마트폰 너머 바라보는 누구는 투 잡, 쓰리잡을 뛴다. 다른 누구는 잠 자는 시간 아껴서 취미생활, 자기계발을 한단다. 이렇게 초인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이 정도로 빡세게 살지 않으면 너 뒤쳐져. 하류 인생 돼. 뛰어 임마. 뛰어. 채찍질로 느껴진다.


인터넷 세상은 들여다 보면 볼수록 자존감을 깎아 내리는 콘텐츠만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들여다 보게 만든다. 얘 또 유명한 데 갔네. 또 비싼 거 먹네. 또 해외 여행 하네. 돈 많고 체력도 좋다 야. 나는, 나는 뭘까. 인생에 하등 도움 될 것 없는 생각을 하면서 귀하디 귀한 수면 시간을 깎아먹는다.



오늘 하루 잘 끝냈다는 만족감이 없는 밤.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오늘에 대한 미련이다. 더 나은 하루를 살 수 있었을 텐데.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내일에 대한 허탈함이다. 내일도 역시 오늘과 같겠지. 내일 역시 재미 없고 기운 빠지는 하루겠지.


신체는 물론 정신적인 기력도 없다. 잠들고 싶지만 잔다고 마땅히 충전될 것 같지 않다. 해고 걱정 없는 직장이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말이, 그것이 안정적인 삶을 만든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된다. 그만을 바라고 버티는 직장 생활은, 돈을 버는 것 외에 모든 게 똥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줄 뿐 ‘안정적인 삶’을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살겠다고 아침이면 부서질 듯한 몸을 일으켜 영양제를 챙긴다. 종합비타민, 비타민 D, 밀크시슬, 매스틱검, DGL, 실리엄 허스크, 프로바이오틱스, 프리바이오틱스 등 먹는 것도 많다. 영양제가 주는 효과를 아주 신뢰하기보다 거의 빌듯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챙겨 먹는다.



‘제발 육체와 정신 컨디션을 올려 주세요.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주세요.’



갈수록 이울어 가는 몸을 정상인처럼 단장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언젠가는 전처럼 피곤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게 될까? 만성피로에 약 같은 게 있을까?’



‘아니, 이건 회사를 때려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거야. 퇴사가 약이야.’



누구나 다 알지만 써내지 못하는 정답을 새퉁스레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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