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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Jan 10. 2024

출근 안하고 돈 버는 방법

2. 회사와 나, 우린 제법 안 어울려요

출근 안 하고 돈 벌기. 내가 궁극적으로 꿈꿨던 밥벌이 방식이다. 조직을 기피하고 남과 부딪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꼭 맞는다. 무엇보다 ‘아무 일 안하고 돈 벌기’보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아닌가. 새로운 곳에 취업하며 반쯤 접었던 생각이지만, 때가 되면 언젠가는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가 우연히 찾아왔다. 꿈꾸던 방식대로 한 번 살아볼 기회가 생겼다.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회사가 한시적으로 격주 재택근무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에 따른 대응이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의외로 호불호가 갈렸지만, 나에게는 ‘극호’ 그 자체였다. 출근을 안 해도 된다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었다. 직접 겪어본 바, 상상 이상이었다. 첫 재택근무를 했던 주에 모든 업무를 마치고 아내와 산책을 나서면서 이런 말까지 했다.



“진짜 죽을 때까지 재택근무만 하라 해도 할 수 있겠는데?“



격주 시행하는 반쪽자리 제도였지만 내 적성을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100% 재택형 인간이었다. 재택 주간이 아닌 출근 주간에는 재택하는 주가 되기만을 간절히 손꼽아 기다리며 버텼다.


현장 근무 대비 재택근무가 주는 이점은 막대했다.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던, 재택근무만의 어마어마한 장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른 기상, 통근 지옥에서 해방된다. 직장인에게는 아침이 가장 버겁다. 뼈가 삭는 듯한 피곤기와 또 하루를 버텨내야 한다는 압박이 눈을 뜨자마자 찾아온다. 기를 쓰고 이겨내야 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고 끝이 아니다. 씻고 화장실 갔다가 머리도 한 번 매만지고 옷 매무새를 점검하느라 분주해진다. 가능하다면 또 빈 속에 무엇 하나 집어넣어 주기까지 해야 한다. 일련의 의식을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끝마치고 나서야 겨우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바깥으로 나오면 다시 새로운 시련이 시작된다. 나는 수도권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통근자다. 일터로 이동하기 위한 과정이 조금 더 고단하다.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이동하여 한참 지하철을 타고 내린 뒤, 도보로 5분 걸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넘어가 또 버스를 탄다.


보통 힘 빠지는 일이 아니다. 출근 준비 시간과 통근 시간을 합하면 하루 세 시간 반이나 된다. 이동에 드는 시간만 봐도 출퇴근 한 시간씩, 도합 두 시간이 허비된다. 이것도 굉장히 서둘렀을 때 기준이다.


불특정 다수와 날마다 몸을 부대끼는 일 역시 유쾌하지 않다. 출퇴근 시간대에 뵈는 사람들은 나만큼이나 불만스럽고 푸석푸석한 면면이다. 지하철 승강장과 버스 정류장에는 축축하고 음울한 기운이 한가득하다.


마치 인간을 재료로 써서 만든 ‘어둠의 비빔밥’ 같다. 대중교통이라는 양철 찬합에 불행과 고단을 고명으로 넣고, 한숨과 푸념을 뿌려 흔들어 섞은 듯하다. 그 안에 있으면 모두가 기력을 뺏긴다. 재택근무는 이러한 악몽 같은 출퇴근 지옥에서 모두를 탈출시켜 줄 유일한 해방구다.



2.

상사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조직의 생리가 그렇다. 직장 상사란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일을 주고, 채근하고, 닥달하며 성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일이다. 구태여 얼굴 봐서 기분 좋을 일이 없다. 마주칠 때마다 자신을 긴장 상태로 몰아가는 누군가와 한 공간에 머무르는 일은 매 순간 잠재적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된 것과 같다.


위계가 형성된 조직에서 상사란 내 친우도 아니고 동반자는 더욱 아니며 가끔 착각하지만 멘토가 되어 줄 만한 존재 역시 아니다. 재직하는 동안 일 분 일 초라도 덜 보는 편이 심신에 이롭다. 재택근무는 이를 가능케 해 근로자의 심혈관 질환 예방, 소화 기능 개선,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준다.



3.

점심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점심시간은 늘 꿀 같아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근로자의 자율적인 휴식을 원만히 보장해 주지 않는 사업장이 가끔 있다. 팀 단위로 움직이는 분위기를 만들어 개별 행동하는 인원이 눈치를 보게 만들거나, 명시된 휴식시간에 업무 지시를 내려 부하 직원이 점심시간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례가 여기 해당한다.


내가 일하는 근무처도 이와 엇비슷했다. 이런 행태를 보이는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라면 재택근무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자택에서 점심시간을 맞이한다면 상대적으로 훨씬 편안한 휴식을 취할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 메뉴와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도 내 멋대로 정할 수 있다.



4.

여가시간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재택근무의 최대 이점이다. 평소 출퇴근에 소모하던 시간이 곧바로 여가 시간이 된다. 현장 출근할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일과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 오롯이 자신을, 혹은 가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 마음도 느긋해진다.


재택근무를 통해 내 여가 시간은 하루에 무려 세 시간 반이나 늘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미뤄 왔던 일상의 행복을 챙기기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날마다 요리를 해 아내와 단란한 저녁 식사를 하기에 충분하다. 식사 후 집 근처 천변으로 긴 산책을 나선 뒤 돌아와도 시간이 넉넉히 남는다.


복잡다단한 출퇴근 과정과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겪지 않으니 정신과 육체 피로 역시 확연히 줄어든다. 출근에 대한 부담이 없어 밤에도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다. 편안한 상태에서 누리는 여가란 삶의 질을 수직 상승시킨다. 재택근무 하나로 이만큼이나 막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나같이 압도적인 이점이다. 열거한 내용에 취한 나머지, 나는 재택근무 제도가 영원히 존속되길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택근무가 대다수 근로의 표준이 되는 사회를 자주 상상했다. 코로나 국면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셈법은 달랐다. 일개 인력이 저만의 만족에 취해 있거나 말거나, 사내 재택근무 제도는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사라졌다. 코로나 종식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와 함께.


연장이나 존치 논의는 없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노동자가 출근이라는 ‘예’를 다하는 방식으로 회사에 충성을 않고 방구석에서 꿀이나 쪽쪽 빠는 모습이 영 꼴사납고 기합 빠져 보였을 게 분명하다.



내 집 내 방에서 회사로, 이상향에서 사바세계로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낙폭이 상당했다. 충격은 한동안 이어졌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사무실 특유의 갑갑한 공기에 숨이 가빴다.


그렇지만 시간은 말 없이 가혹했다. 생존을 위해 내 몸과 마음을 옛 환경에 강제 적응시켰다. 부단히 뺑뺑 돌아야만 했던 일상의 트랙 위에 다시 떨궈 놓았다.


또 다시 기진맥진 끝없는 마라톤이 시작됐다. 불행 중 다행은, 이상의 날개가 꺾였을지언정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은 것이었다. 나는 분명 보았다. 저편에는 분명 내가 지향해야 할 완벽한 길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벌써 퇴근하고 싶군. 어쩌지. 읊조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눈치 보면서 점심밥 빨리 안 먹어도 되는 세상. 불같이 이는 화를 꾹 참고 덤덤한 표정 지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이곳에서는 더 꿈꿔 볼 수 없는 세상.


그 짧았던 호시절을 업무 중에는 물론이고 출퇴근길에도 끊임없이 떠올린다. 그려 본다. 멈출 수가 없다. 그립다. 내가 만약 아직까지 종교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간증이라도 했겠지. 마치 임사체험이라도 하고 돌아온 양.



“오, 그곳에는 빛이 있었지. 분명 그건 천국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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