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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Jan 03. 2024

밥 천천히 먹기 운동

2. 회사와 나, 우린 제법 안 어울려요

마음이 급하다. 해치울 반찬이 아직 많다. 가만 보자, 김말이가 둘, 가라아게가 셋. 쫄면도 세 젓가락 분량은 남았다. 다 먹고 싶다. 먹을 것이다. 우선 입에 쑤셔 넣고 본다. 우걱 우걱 우걱. 음식이 비어져 나올 만큼 볼이 잔뜩 부푼다. 비장하게 부릅뜬 눈에는 초점이 없다.


테이블의 빈 공간에 텅 빈 시선을 꽂아두고 바삐 저작 운동을 이어간다. 심장이 괜히 쫄려 온다. 씹던 음식물이 절반도 줄지 않았는데 다른 한 조각을 밀어 넣는다. 열 번 씹던 음식도 다섯 번 씹고 삼킨다. 입안이 뻑뻑하다. 국물로 한 차례 기름칠도 해 준다. 으적 으적 으적 후룹. 필사적인 입놀림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피는데 윽, 식판이 깨끗하다.


저들은 이미 식사를 다 마쳤다.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얼굴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허탈하다. 남은 음식은 포기다. 분주하게 식판을 정리하고 계속해서 오물거리며 일어날 채비를 한다. 답을 얻지 못할 의문을 또 한 번 입안에 남은 음식과 함께 되새긴다.



‘어떻게, 아니 왜 이렇게 빨리 먹는 거야 이 양반들은?’




주머니 구멍 뚫린 직장인에게, 구내식당은 축복이다. 점심 시간이 되면 다수가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공짜에다 구색이 괜찮다. 구성원들이 ‘회사 내 유일한 복지 다운 복지는 구내식당 뿐’이라고 자조할 만한 수준은 된다. 끼니를 절대 거르지 않는 나에게도 가장 유용한 복지다. 먹는 낙은 언제나 내 삶에 우선순위니까.


금전 부담 없이 맛 좋은 식사를 할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하다. 메뉴도 다양하게 나오는 편이어서 만족감을 얻기 쉽다. 단, 오직 혼자 먹을 수 있을 때에 한해서만 그렇다. 마음 편한 식사를 할 기회는 슬프게도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



오후 12시 30분. "OO아, 밥먹으러 가자." 소리에 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사 때가 되면 보통 선배나 상사 격인 남자 직원들과 함께 움직인다. 여직원들은 보통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고 만다. 식당으로 터덜터덜 이동해 배식을 받는다.


오늘 메뉴 역시 마음에 든다. 동시에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것들을 온전히 하나씩 즐기며 다 먹을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저들의 먹는 속도는 나보다 두 배 이상 빠르다. 내가 먹는 데 20분은 들여야 할 음식이라면 이 사람들은 10분, 아니 5분에서 8분 정도에 끝내 버린다.


맛을 포기하고 모든 반찬을 국그릇에 쏟아 부어 말아 마시는 짓을 한다 해도,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씹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목구멍에 음식물 분쇄 처리기를 달아 놓았나 싶을 정도다.



나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먹는 속도는 느린 편이다. 느긋한 식사를 선호한다. 음식을 천천히 씹고, 여유롭게 맛 볼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한창 때는 일반적인 10대 20대 남자애들을 상회했다. 식탐이 과하고 아주 게걸스럽게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 젖히는 유형에 속했다. 친구들에게 ‘밥을 왜 이렇게 거지처럼 먹느냐’는 말을 여러 번 듣고 살았다. 빠르게 먹고 또 먹고, 자극적인 음식 섭취와 과식을 반복해 왔다.


그러다 20대 중반 즈음 위장이 크게 망가졌다. 제 기능을 상실했다. 소화력이 극도로 떨어져 2, 3개월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살이 8킬로그램은 빠졌다. 그 때의 공포를 말로 전하기 어렵다. 먹는 것만이 낙인 삶이었다. 인생에 가장 큰 즐거움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식습관을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다.



문제는 바뀐 식습관이 이 집단에서 살아남는 데 썩 도움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전 직장에서는 나 이외에 전원이 여성이었고, 느리게 먹어도 얼추 먹는 속도가 맞았다. 별다른 위계도 없어 딱히 밥 먹는 데 있어 압박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대체로 남성들과 식사를 했으며 그들 중 나만큼 느리게 먹는 인원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우직한 속도로 반쯤 먹었다 싶으면 나머지는 식사를 끝내고 나를 가만 기다렸다. 아주 재미없고 불편한 상황이다. 매 초마다 무언의 채근과 압박에 지긋이 눌린다. 금방 체할 것 같은 상태가 된다. 


테이블 내 가장 '높으신 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다 먹었답시고 먼저 일어나지도 않는다. 대단한 의전이다. 느리게 마음대로 먹을 자유를 누리기에 나는 조직 내에서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은연한 눈총을 견딜 만큼 빤빤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내가 취할 행동은 다음 중 하나였다. 남들이 젓가락질을 멈췄을 때 나도 먹기를 그만두고 남은 반찬을 모두 국그릇에 모아 함께 ‘식사 종료’를 선언하거나, 시작부터 전력 질주하듯 달려서 다른 사람들 페이스에 맞추거나. 이러나 저러나 내게는 고역이었다.


먹다 남기면 마음이 불편하고, 빨리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 그나마 합리적인 절충안은 배식을 할 때부터 눈물을 머금고 아예 적게 받아버리는 것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픈 마음과 배치되는 소탈하고 초라한 식판을 받아들고 나면 참 섧다. 그 모양을 보고선 이따금 식사 상대들은 한 마디를 보태고 만다. “잘 먹는 애가 왜 이렇게 조금 먹어. 다이어트 해?” 군살이 전혀 없고 마르다시피 한 체형을 가진 내게 던지는 참 속 없는 농담이다.


아니, 맞춰 먹기 보통 빡세야 말이지. 좀 적당히 빨리 먹으면 덧납니까? 강하게 받아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나. “하하. 그냥 속이 별로 안 좋아서요.” 그냥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어느 한 날에는 언짢은 기운에 종일 사로잡혔다. 내가 제기랄 점심시간에 밥도 눈치 보며 먹어야 하나, 이런 불합리가 어디 있냐는 생각이 나를 바짝 옭아맸다. 이 이상 내 작은 행복을 망치기 싫었다. 구태의 고리를 끊어 내야겠다 다짐했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과장님, 제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듯 해서요. 먼저 가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느 때처럼 나보다 먼저 식사를 끝내버린 과장에게 딴에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이 정도 이야기하면 내 의사가 충분히 전달됐겠지 싶었는데 웬걸, 반응이 심상찮았다. 과장은 무언가 굉장히 엉뚱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이쪽을 쳐다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음 그래? 많이 걸릴 것 같니?”



“네 조금 걸릴 것 같아요. 하하..”



“음.. 그래 그럼, 먼저 간다. 먹고 와.”



대화는 짧게 맺었지만, 떨떠름해하는 과장의 감정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떫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자리를 뜨는 과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차올라 발아래 찰랑대기 시작했다.


눈치 안 보고 밥 좀 먹으려다 윗사람 심기를 건드렸다. 감정이 상하좌우로 요동쳤다. 뭐지, 내가 잘못한 건가. 못 할 말을 한 걸까. 닥치고 늘 하던 대로 눈치껏 맞춰서 먹었어야 하나. 뭘까 대체. 아니 답답하네. 그냥 밥이잖아 밥. 소중한 점심시간을 왜 각자 지혜롭게 못 쓰고 이렇게 눈칫밥을 먹어야만 하는지, 마음이 시끄러웠다.



떠올려 보면 저들 속도에 맞춰 먹느라 속이 불편했던 일이 고작 한두 번에 그치지 않았다. 더부룩한 기운을 안고 사무실에 복귀했던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고 앉았으면 일도 손에 잘 안 잡혔다. 반대로 먹을 만큼 먹지 못해 저녁 시간까지 허한 기운을 애써 달랬던 날도 있었다.


억울할 따름이었다. 못 할 말을 한 건 아니지 않나. 시간 낭비 말고 각자 일 보자는 게 그리 정서에 안 맞는 말인지 여즉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다른 방도를 모른다. 밥 천천히 먹기, 밥 혼자 먹기 운동을 벌일 수도 없고. 


조직 안에서는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손해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을 뿐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뒤로 단 한번도 비슷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 맘 같지 않은 곳에서 살아남으려거든 별 수 없다. 그저 가끔 주어지는 기회만이라도 온전히 즐기기로 한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씩은 그래도 혼자 밥 먹을 시간이 생긴다. 팀의 특성상 회의가 많다. 과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회의나 보고가 점심 시간까지 늘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각을 잘 재면 잽싸게 혼자 구내식당으로 달려갈 타이밍이 보인다. 곰팡내 날 정도로 퀴퀴하고 눅눅한 사무실에서의 일상에 유일하게 볕 들어오는 틈이다.



오롯이 밥과 나만이 마주 독대하는 귀한 시간. 작고 소중하다. 삼십분이고 사십분이고 마음껏 시간을 쓴다. 한 술 한 술에 최선을 다한다. 진심으로 임한다. 허겁지겁 눈치 보며 남 따라 먹던, 또 앞으로 그리 먹어야 할 서글픈 날들에 대한 위로가 될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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