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되는 인연들에 대하여
회사에 아끼고 마음 쓰던 후배 동생 A가 있었다. 업무 상 모르는 것들은 알려주고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것들은 유무형으로 지원하고 신경을 썼었다.
회사생활을 하며 자연스레 A를 포함한 회사 내 친목모임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함께 여행도 가고 유지를 하다 갑작스럽게 병이 생겨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중 한 명인 B와 관계가 틀어졌다. 꽤나 친하게 지냈던 B로부터 기대했던 안부의 말 한마디가 아닌 본인의 이익만을 얻기 위한 행동과 말에 상처를 받았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니 '어떻게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라는 비겁한 장문의 답변과 함께 일방적으로 뒤를 돌아버린 B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인생을 살면서 마주한 가장 냄새나는 행동이었다.
오랜 수술과 병가기간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 다시 내민 내 손을 B는 쳐다보지도 않고 거칠게 뿌리쳤다. 이후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하지만 아끼던 동생 A는 여전히 그 무리에 들어 나란 존재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들과 웃고 떠들었다.
그 무리엔 유일한 입사 동기였던 C도 포함이었지만, 늘 꺼림 침한 거리감을 유지하던 그녀에겐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다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그녀의 어색함은 그나마 있던 미련을 털어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지.
문제는 A였다.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아쉬운 표현도 할 수 없었다. 그 무리 안에 속해 보내는 시간에 대해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 자격도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마음과 감정을 갖게 될지 전혀 고려치 않은 그 무관심에 치가 떨릴 뿐.
어느 날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른 후배와 함께 셋이 술 한잔을 한 적이 있다. 난 그녀들이 고마워 해외에서 구하기 힘든 선물을 사서 똑같이 나눠 줬다. 한 명은 선물을 쓴 정성 어린 후기 답장을, 한 명은 고맙다는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저 구석에 선물을 건조하게 내려놓았다. 후자가 누군진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마주쳐 지나가는 A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눈을 마주했는데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싶어 카톡 메시지를 보냈는데, 48시간도 훌쩍 넘은 이 시간 그녀와의 채팅방엔 1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세상에 무시당해도 되는 존재는 없다.
세상에 무시당해도 되는 존재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해당될 땐 딱히 할 수 있는 대처법이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단 걸 알고 있으니.
가끔 인연을 끊지 못해 혼자 속으로 앓고 썩히는 경우가 있다. 마음 아파할 가치조차 있는 일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 쉬운 일인가.
오늘도 이렇게 하나의 인연을 걷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