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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뭍톰 Jan 29. 2017

닮고 싶은 사람

직장에서의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닮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말은 삶에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직장생활에서 그 속에 담긴 뜻은 더욱 크다. '내가 이 빌어먹을 일을 해도 저 정도의 삶을 살겠구나' 이거나 '저렇게 멋진 사람이 이곳에 있다는 건 나도 그만큼 멋지단 걸 거야'라는 자기 위안이 있을 것이다.


 나의 첫 직장은 그런 곳이었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한 사람의 모든 부분을 닮고 싶진 않았다. 개인마다 특별한 개성과 특출한 능력들이 그러했고, 사이코 보존의 법칙을 무시한 듯한 바람직한 상의 직장분위기가 그랬다.


 그중 광고회사에서 오신 K선배는 삶의 이치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해석 및 설명해주셨던 분으로 닮고 싶은 직장인의 표본으로 내게 자리매김했다. 깊이감을 떠나 스스로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단순하게 들으면 다시 되묻고 싶은 그런 아이디어를 많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촉매제가 되어 어려워 보이던 안건들도 술술 풀리는 일이 많았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니 저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코 헛된, 한없이 가벼운(아무리 겉모습이 그러할지라도) 이야기가 아니겠단 인식이 잡혔다. 그런 점들을 닮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학벌과 가풍. 강남권에서 나고 자란 그분은 말하면 누구나 아 한다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역시나 스카이 중 하나를 졸업한 분이었다.


 그래서일까 가끔씩 학교 이야기, 어릴 적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특히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타 팀 신입사원에게 00 학교 출신이라며 나 00과 졸업했어.라는 식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다 보면 이내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이 울컥하고 드는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지방대를 졸업한 나는 왜 이 분과 공통점이 없는 것일까. 어릴 적 추억을 되짚어 보며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하는 지금 해봐야 소용없는 선택의 순간들까지 건들고 말고, 그런 날에는 집에 혼자 돌아와 맥주에 영화를 보며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 잠에 들었다.


매일의 자기 불안,

자존감을 절대 놓지 않기 위해 부득부득 갈며 살았다.

공정치 않은 일들도 수 없이 경험했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납득하지 못할 사건들이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나이의 숫자 앞자리가 바뀐 지금까지도 내 생각의 변화가 없다면 그때 당시 내가 겪었을 그 감정들은 역시나 잘못된 주관적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변명하고픈, 일어난 결과를 되돌리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는다. 다만 시간이 더 지나 이 글을 보며 그때의 억울함과 감정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각오이기에


한참 동안 직장생활과 관련한 글을 남기지 않았는데,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전에 나와 비슷한 사건을 겪고 또 앞으로 겪어나갈 사람들을 위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프다. 부지런히 남겨서 잘 기록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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