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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연구소장 Jul 28. 2024

'기타'와 싸운 것이 처음은 아니다.

새로운 브랜드를 기획하며 1

 전문가 분들과의 컨설팅 과정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을 기록해볼까 합니다.


2024. 7.28 1주차


 ‘기타’와 싸운 것,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대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입대했다. 들어가고 나니 휴학 신청을 안 해두고 간 것이 생각이 나서 친형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다.
 
 “형, 군대에 가면 휴학이 자동으로 되는거 아냐?”


“니가 군대를 간걸 학교가 어떻게 알아. 신청 안 했어?”
 

“했으면 안 물어보지.”


“아이씨, 알았어.”
 
 다음 통화에서 형은 3년짜리 군휴학을 했다고 말했다. 2년이 가기 전에 전역을 하게 될 텐데 남은 1년은 뭔가 싶어서 물었다. 형은 “그냥, 나와서 이것 저것 좀 해봐.” 라고 했다.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2년이 안 되는 군생활 동안 ‘사이버 지식 정보방’에 가면 ‘유튜브’에 들어가서 온 세상의 현악기 제조 영상을 찾아 보았다. 나가면 돈을 좀 모아서 목공 장비를 더 구비하고, 나무를 사서 바로 악기를 만들 생각에 들떴다.  

벌써 루씨어(Luthier: 현악기 제작자)가 된 것 같았다.

 

 2014년 1월 1일. 전역 날, 알바하던 미술학원에서 전화가 와서 바로 다음 날 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3월 즈음부터는 [아트 컨설팅을 하는 G사]에서 [Hermes Korea]의 Shop in Shop 쇼윈도우 디자인을 했다. 디렉터 한 분과 단 둘이 했기 때문에 엄청난 스킬업, 사회 경험의 시간이었다. 장비 욕심에 학원 아르바이트도 가끔

병행 했고, 몇 일 시간이 나면(시즌이 끝나고 난 직후) 학교 목공실에서 양해를 구하고 기타 작업을 하곤 했다.

 2년동안 영상과 책으로 축적한 이상은 높았고, 보잘 것 없는 실력은 여러 의미로 통제력을 잃게 하곤 했다.

손은 손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움직이니 기타는 제대로 만들어지기는 커녕 애꿎은 나무만 버리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기타 상판 안쪽을 아치 모양으로 끌을 사용해서 파내다가 완전히 망쳐버렸다. 나무 섬유질 방향으로 ‘쭈욱’ 찢어진 것이다. 잠시 그 나무를 쳐다보다가 1년동안 기타를 만들지도, 연주 하지도 않았다. ‘기타’와 싸웠다기 보다는 ‘높은 이상과 낮은 실력의 괴리를 견디지 못했다.’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다시 기타 작업을 시작 할때는 친한 친구랑 싸웠다가 화해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다시 일상적이었다.)




기타를 보는 시선

 처음 ‘기타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을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자유도’ 였다. 내가 주로 만드는

‘일렉트릭 기타’는 전기장치인 ‘픽업’과 ‘엠프’로 소리를 증폭한다. 나무 덩어리를 깎아서 만들어지는 기타는

사람의 몸 형태에 잘 맞고, 연주하기에 편한 형태로 진화를 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나무의 질이나 상태, 수종이 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소리에 영향을 끼친다.)  나는 ‘사람의 몸 형태에 잘 맞고 연주하기에 편한 형태’라는 틀 안에서 특별한 악기들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전제가 이미 단단하고 넘기 힘든 것으로 보이지만, 나무 자체로만 소리를 만들어 내는 어쿠스틱 기타, 클래식 기타에 비해서는 훨씬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주어진 룰 안에서 내 방식대로 조금씩 세계관을 구축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때로는 조금씩 그 룰을 깨나가는 것. 그것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장과 나의 괴리
 기타 제작을 포함한 다른 일에서 내 의견이나 미감을 관철시키고 설득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이들의 요구(디자인 의뢰)를 표현해 주는 일이나 협업 관계에서는 합의점을 찾아가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서로 잇고, 적용하는 것 역시 좋아하는 일이다. 외주 작업을 할 때에는 '그들의 생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어!' 라고 생각하며 마치 연극을 하듯이 일을 하곤 해서 스트레스를 줄이기도 한다.

 '기타 제작'은 내게 많이 특별한 행위로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기타'라는 악기 혹은 오브제를 일정한 틀 속에서 개인의 철학적, 미학적 에고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대해 왔던 것 같다. '내가 만드는 기타는 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예계, 해외 루씨어들에게 조금이나마 인정 받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고, 일관 되어 왔다.


 “Fender 사의 Stratocaster, Telecaster를 만들어주세요.”
 “Gibson 사의 Les paul과 SG 모델을 만들어주세요.”


 즉, 역사적으로 높은 상징을 가지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사용 하는 다른 회사의 모델을 그냥 재해석만 하는 일종의 ‘도둑질’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부도 할 겸 그 악기들을 만들어 보고, 유튜브에 영상을 찍어 올리는

컨텐츠로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행위를 직업적으로 계속 요구받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나에게는 그것들을 만드는 것이 의미가 없다. 한동안 ‘타협점’을 찾아보고자 했지만, 그런 것들이 현재는 벽에 부딪혔다고 느끼는 일지도 모른다. 내 미감을 온전히 쏟고, 창작 행위를 마음 껏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기는 것이 나에게도, 그동안 내 악기를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종종 기타가 만들고 싶을 때, 작가로서 어디인가 출품 하고 싶을 때 더 즐겁게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기타가 나다움과 거리가 멀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나다움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선보이고, 대화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원하지를 않는 것 같다. 노골적으로

도둑질을 요구하는 장르에서 벗어나 다른 장르에서(기타보다 에고를 '덜' 적용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람들과 생각을 서로 잇고, 공유하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많이 대화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23년, 호두두]를 마치고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한 것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정확히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했었구나!'라고 인지 한 것은 최근이다. 어렴풋이 느끼기만 했다. 작년 12월, 공예트랜드페어에서 호두두 팝업(?)을 마치고 나서 생각은 '이정형=기타'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역을 넓혀서 보일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아트웍 중심의 작업, 일만 하다가 상품을 만들어보니 해방감도 들었고, 단기간에 예상보다 많은 성과도 얻어냈고, 흥미로운 제안도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꽤나 만족스럽기도 했다. 초에 진행한 '호두두 플라스틱 사출 실험' 이후 호두두는 새로운 컨텐츠를 계속 만들어내고 상품 내외부의 변화도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생명력이 지속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플라스틱 몰드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대량생산형 몰드는 약 6-800만원 대, 초소형 몰드는 약 1-200만원 대이다. 다양성이라는 목적에 있어서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초소형 몰드는 대신 사람이 직접 눌러서 사출 해야하기 때문에 개당 단가가 올라가게 된다. 초소형 사출기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생산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어 재고를 남기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직접 생산은 그만큼의 시간을 뺏기는 것이기도 했다. (장비도 사야한다!)

 그래서 '호두두를 판매하는 회사는 직접 생산하는 것이 어울리는 회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해서 '이 회사는 '호두두' 말고 다른 IP, 플라스틱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 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의사결정이 잘 안 되기 시작했다. 기타를 만들 때에는 나의 의사결정이 곧 멋질연구소였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마음에 따라서 결정을 했지만, 앞으로의 회사는 '호두두'를 첫번째 프로젝트로 더 나아가는 것일지, 더 큰

방향성 안에서 '호두두'라는 프로젝트가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멋질연구소' 보다는 더 나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퍼스널 브랜딩? 브랜딩?

 1. 작은 브랜드들은 결국 사람 인 것 같다. 큰 브랜드들도 대표의 생각, 역사가 궁금해진다. 스토리가 탄탄할수록 회사에 애정이 간다.

 2. 나에 대한 파악을 잘 해야 사업을 할 수 있는 구도 설정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좋아하는 것만 한 것 같다.

 3.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고, 주기적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나침반도 정해두어야 주기적으로 확인을 하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 '오래 살아 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것은 언제나 유효할 것이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뿌리가 강해야 한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바뀔 수 있지만, 구성원(대표)은 단단해야한다고 믿는다.




글을 써보고 나서

 새로운 사업의 과정이나 아이템의 '틀'을 나의 애정도가 낮은 것을 선택하고, 사람이 더 많은 곳으로 가야한다. 컨텐츠나 아이템의 발행 속도는 빨라져야한다.(기타보다 느리기도 어렵다.) 멋있어 보이려 한다기 보단 즐겁게 말을 하고 싶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곳을 찾아야한다. 혹은

검증해야한다. 그런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수 있도록 하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야한다. 연결고리는 팬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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