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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연구소장 Jun 19. 2020

채소로 계절 읽기

#5. 계절별 나물, 야채들과 계절별 잔소리

 냉이, 달래, 쑥이 나오면 정말이지 봄이다. 된장찌개에 넣은 냉이, 달래는 나도 모르게 코로 '킁킁' 숨쉬기를 해보게 한다. 멋진 봄 향기가 난다. 그와 달리 된장찌개에 넣은 쑥은 너희들만큼이나 엄마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꼭 약만 같다. 아니, 약이다. 떡에 있을 때 그 빛과 색이 비로소 자리매김을 하는 듯하다. 외할머니께서는 쑥에다 밀가루를 고루 버무려 찜통에 쪄주셨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반짝반짝 윤이나는 쑥떡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맛없어 보였다. 그래도 그 때 먹은 쑥 범벅으로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봄이 온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지금까지 그 맛을 생각 해 낼 수 있는 듯 하다. 외할머니의 쑥 범벅을 하지는 않지만, 쑥으로는 된장국을 일 년에 딱 한번 끓인다. 봄을 알리는 우편 배달부마냥 의무감에 불타서 일단 하게 되더라. 가끔 음식을 맛으로 먹기 보다는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먹는 다는 것이 이런 경우 일거다. 개나리가 눈에 들어오면, 쑥으로 국을 끓여 먹어보렴.

 4월이면 1월에 파종한 봄 총각 ‘알타리 무’가 나온다. 엄마는 봄 총각을 4단에서 8단 정도 집에 들이고, 하루 종일 김치로 옷 입힌다. 다듬어야 할 곳이 많은 녀석이라 앉아서 다듬다보면 미칠 지경이다. 하루만 애쓰면 몇 달이 행복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노동과 기다림 끝에 만든 아삭아삭 알타리 김치를 라면과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최고다. 비름나물은 춘분이 지나면 나오는데, 살짝 데쳐서 고추장에 무쳐도 되고, 시금치 마냥 파아랗게 소금, 파, 다진마늘, 참기름 넣어 무칠 수도 있다. 계절을 지나며 묵은 김치로만 식탁을 채우는게,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때론 직무유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봄동을 사서 된장국도 끓이고 겉절이도 해서 면피를 할 수 있었다. 

 겨울내내 냉기를 버텨낸 햇양파는 붉고 큰 망에 가득 들어찬 것을 사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먹어라. 이 때나온 양파는 빙수 얼음처럼 새하얗고 단맛이 난단다. 역시 향이 강한 마늘도 봄에 나오는데, 마늘 장아찌는 이때 담아야 한다. 많이 사게 되면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하기는 싫은데 정 먹고 싶으면 좋은 거 사먹으렴. 제철에 산 마늘을 사두었다가 저장하려면 모두 껍질을 까낸 후 믹서기로 갈아야한다. 손으로 직접 돌려 가는 것도 있는데, 입자가 조금 두꺼워서 맛이 좋더구나. 여튼 작은 봉투나 일회용 그릇(플라스틱 소스통)에 일일이 담아두면 된다. 엄마는 이틀정도 꼬박 손 끝 아려가며 했는데, 너희는 어찌할꼬? 닥치면 다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봄이 끝나갈 즈음 마늘종과 두릅이 나온다. 마늘종은 볶음. 무침. 장아찌로 만들 수 있으니 밑반찬으로 제격이다. 두릅은 나물치고는 비싼 재료다. 맛이 아주 일품이라서 서울 깍쟁이 아가씨도 다른 나물은 다 몰라도 두릅 만큼은 알아 낸다고 할 정도다. 한마디로 나물계의 거물급 인사다. 뒷 산에 도라지 농사 지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힘드셨는지 두릅나무를 심으셨었다. 땅에서 캐는 것보다 나무로 따는게 조금은 편하셨으려나? 일 년에 딱 한번 늦봄에 라면 상자에 두릅 한 가득 보내주시면 엄마는 만사제치고 이집 저집 퍼다 날랐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나눠줄 수 있는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봄 잔소리

 다가올 더위와 장마를 대비해서 집 구조 형태에 따라 할 일이 많아. 슬슬 벌레들도 많이 나오겠지. 시장에 갈 때 모기향은 미리 사두렴. 방충망은 뚫어진이 곳은 없는지. 배수구는 막힌 곳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선풍기는 조금 덥다 싶으면 미리 꺼내두고, 에어컨은 온 집안 창문 다 열 수 있는 날에 방향제 뿌리고 청소도 해서 갑자기 너무 덥다고 비닐 걷자마자 작동 시키는 경우가 없도록 하렴.






여름 

 여름은 요리하기 힘든 계절이다. 날씨가 뜨겁고 몸은 축축 쳐지니 일은 하기 싫고, 재료는 쉽게 상해버리니 한번에 많이 해둘수도 없잖니. 그런데 자연의 이치에 가끔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다행히 그냥 씻기만 해도 먹을 수 있는 채소가 많거든.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이 사계절 중 가장 맛있을 때고, 여러가지 쌈들이 넘쳐나니 무더운 여름 반찬하기 싫을 때 엄마는 쌈에 쌈장이면 밥이 술술 넘어간다. 엄마 생각에 풀만 먹다가 닥백질이 부족해진 여름에 닭이라도 삶아서 먹으라고 복날이 생긴게 아닐까 싶다. 

 전철역 입구마다 어디서 오셨는지 할머니들 한 두 분이 이런저런 채소들 딱 한 움큼씩 가지고 오셔서 팔곤 하신다. 여름에는 넓적하게 펼쳐져 햇빛을 한 다발 담는 호박잎도 줄기를 다듬어 파시는데, 비닐하우스에서 편하게 자라는 요즘 호박과는 달리 한여름 아니면 맛보기 힘든 나물이다. 된장찌개에 넣거나 살짝 쪄서 된장이 많이 들어간 쌈장에 밥과 함께 싸먹으면 꺼끌꺼끌해도 맛이 쓰름 허니 좋다. 고구마줄기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나물이다. 다른 사람들이 조리한 걸 먹어보면 나물이 질겨서 맛이 없다. 질겨지지 않으려면 껍질을 꼭 까서 먹어야 하는데, 맛있어지는 만큼 수고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엄마는 좋아하는 걸 참고 안 먹는다. 하하. 

 가지는 찜기에 살짝 쪄서 무쳐 먹는다. 길이를 길게 썰어서 기름 두르지 않은 팬에 구운후 간장과 까나리액젓을 1:1로 섞어 파, 다진 마늘 넣어 무치니 질감도 좋고, 맛도 좋더구나. 삼겹살 구워 먹을 때에 얇게 썰어서 그릴에 구운후 쌈들과 함께 놓으니 보기에도 좋다.


여름 잔소리

 높은 온도와 습도로 힘들 때다. 맞벌이를 해서 주말 내내 집을 꼭꼭 닫고 살아야 한다면 집안에 냄새 안 나게 제습과 환풍을 신경 써야한다. 건조기가 없다면 빨래 말리는 것도 장마철이 길어지면 보통 일이 아니지. 목욕도 자주 해야 하는데 수건 말려서 식구들한테 개운함 주는 것이 무슨 고시 준비생마냥 힘이 들더라. 너무 에어컨만 틀지 말고 선풍기 꼭 같이 사용하고 여름 중간에선풍기 한번 닦아줘야 흉하지 않더라. 팬에 먼지가 가득이면 바람이 나에게 오는 것이 시원하겠니?






가을     

 요즈음에도 가을이 아직 남아 있나? 그래도 가을의 대표적인 채소를 꼽자면, 배추와 무가 떠오르지. 배추. 무가 최고로 맛이 있을 때야. 가을은 김치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야채가 총 출동한다고 보면 된다. 슬슬 마음으로 김장 준비를 해야 할 거다. 집집마다 김장을 하는 방법이 다르고,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도 많아졌지만, 우리집은 한동안은 함께 해서 나누어 먹도록 하자. 곧 추운 겨울이 오면 김치가 아니면 해 먹을 것이 없거든. 김장 얘기는 따로 다시 하마.


가을 잔소리

 여름옷들 정리하면서 겨울에 입을 옷들 세탁소에 맡겨 놓으며 차근차근 확인하렴. 가을은 너무 순간적으로 지나가서 엄마도 자주 실수를 해. 선풍기나 에어컨은 여름 내내 고생했으니 잘 닦아서 망이나 덮개를 잘 씌워두어라. 보조 난방기구들고 미리 꺼내놓고 문풍지나 유리창에 붙이는 비닐 같은 것도 추워지기 전에 미리 설치해서 춥지 않게 지내렴. 어차피 할 일이니 욕 얻어먹으며 하지 마라. 이왕 할 것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지.






겨울

 겨울에는 푸른 채소들이 원래 나지 않지. 하지만 요즈음 하우스 재배가 많아서 한 겨울이라도 마트에 가면  푸른 채소가 나오고 요리 하기가 좋더라. 물미역에 파래, 톳나물까지 바다의 해초들로 식단을 짜보렴. 또 가을에 해둔 김장이 든든하게 있다면 걱정 없고, 오래 끓여도 되는 음식들을 부담 없이 할 수도 있어. 사골 곰탕이나 감자탕 같은 것 말이다. 그래도 한꺼번에 많이 하면 곧 싫증이 나는 법이다. 엄마는 우유팩에 사골 국물을 끓여 얼려두었다가 가끔 반찬하기가 싫거나 만둣국을 먹고 싶을 때 유용하게 썼다. 신혼 초에 그랬지 지금은 슈퍼에 팩으로도 잘 나와서 사 먹어도 되더라. 생굴이 제철이라 맛나고 쪽파도 좋아. 물미역과 양미리도 좋은 계절이지. 쪽파를 사서 생굴 넉넉히 넣고 파전 구워 밀린 손님 초대를 해봐. 시원한 막걸리. 밑반찬으로는 물미역과 초장, 김장 김치까지. 


잔소리

 늦추위가 또 있으니 완전히 추위 끝나면 두꺼운 옷을 세탁소에 맡기거나 빨아라. 다운 잠바는 세탁소 맡기면 엄청 비싸 직접 빨아야 하는 거다. 문제는 물에 잠기면 꽤 무겁고 해서 엄마 혼자는 힘들어서 항상 아빠랑 같이 한다.  세탁기에 넣고 빨면 방수 천 때문에 붕붕 떠서 세탁이 안 돼. 손으로 빨아야 한다. 그리고 눈 오면 눈 좀 쓸어라.



두릅을 농사지어서 봄마다 한 상자 가득 얻고, 끼니마다 먹을 수 있다는건 누구보다 행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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