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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행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도

프롤로그

by muum


여행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계기로 여행을 떠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확실히 기억나는 한 가지는, H가 하와이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나는 분명히 흘려들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의 하와이는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H가 막상 하와이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H는 그 후로도 몇 차례나 비슷한 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무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한 하와이는 실체가 없는 하와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하와이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결정적 계기 역시, 그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와이에서 살면 어떤 기분이 들까? H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궁금하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하와이에서 사는 사촌 Y와 근래에 자주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그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나도 하와이가 궁금해졌다. 하와이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홀씨 하나가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 홀씨가 머릿 위에서 자리를 잡고,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후로, H가 하와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더는 흘려듣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와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다. 돈도 없고, 외국에 나가 본 경험도 없고, 배짱도 없었던 우리에게, 하와이는 갈 수 없는 섬이었다. 미지의 섬이었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하와이에 갈 일이 없을 거야. H가 말했다. 슬픈 목소리였다. 자기 자신에게 말한 것인지, 나에게 이야기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조적인 어투였다. 마음이 아팠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녀와 함께 하와이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겠다는 오기가 꿈틀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막상 하와이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갑자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꿈을 꾸기 시작했고, 버킷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H의 버킷리스트 일 순위는 하와이 여행이 아니었다. 아픈 엄마와 해외여행 다녀오기였다. 하와이에 가기 전에, 아픈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하와이를 잠시 미뤄둔 채, 셋이서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몸도 마음도 아팠던 어머니는 대만 여행을 엉망으로 만드셨지만, 어쨌든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비로소 H는 마음의 짐을 덜었다. 이제는 정말로 하와이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대만 여행을 다녀온 뒤,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마침내 하와이에 갈 준비가 되었다.


하와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됐던 것은, 멋진 풍경과 천국 같은 날씨가 아니었다. 하와이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일 보고 싶었다. 특히 하와이에 있는 사촌 Y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Y가 어떻게 하와이에 살게 되었는지, 하와이는 살만한 곳인지, 잘살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어떻게든 한 달은 버텨볼 작정이었다. 그 뒤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을 끝마친 후, 하와이에서 머문 날짜만 세어보니, 34일이었다. 순조로운 여행은 아니었다. 초보 여행자 티를 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어설펐다. 하와이안 흉내를 내면서. 걷고, 바라보고, 느끼고, 놀았다. Y와 Y의 아내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원치 않는 하와이의 속살도 보았다. 그들의 낙원이 우리들의 낙원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여행과 정주. 유희와 생존. 간극이 있었다. 모두 다 달랐다. 신혼여행 온 사람. 관광객. 쇼핑하러 온 사람. 이민자. 하와이안. 일본인. 그리고 노숙자들. 그 수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혼돈만 가지고 온건 아니었다. 너무 좋아서 다섯 번이나 찾아갔던 카일루아 해변. 갈 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졌던 알라모아나 공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와이마날로에서의 캠핑. 모두 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Y의 집에서 먹었던 김치찜. 두 번씩이나 찾아가서 먹었던 레오나즈 베이커리의 말라사다 도넛. 카일루아 파머스마켓에서 우연히 사 먹고 펄쩍펄쩍 뛰었던 맛 좋은 과자. 돈키호테 할인 도시락. 아침마다 의식을 치루 듯 마셨던 코나 커피. 모두 다 그립다.


34일째 되는 날. 우습게도, 우리는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우연히 본 동영상 하나 때문이었다. 그건 계시였다. 영상은 우리에게 속삭였다. 너희들은 곧 광활한 캐나다의 대륙을 기차로 횡단하게 될 거라고. 캐나다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었지만, 우리는 두렵지 않았다. 무섭지 않았다.


캐나다를 횡단하는 기차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으니까. 우리가 선택한 여정은 토론토에서 기차를 타고, 재스퍼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기차를 타고 밴쿠버까지 가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캐나다는 우리를 넉넉하게 품어 주었다. 무지막지 추웠던 캐나다가 마음만큼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 주었다.


여행. 객기. 도전. 탐색. 살아 보기. 도피. 치료.

아직도 우리의 여행을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무엇으로 불리든 이것 하나만은 이제 확실히 알 수 있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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