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정리, 3일 차

지금까지 모두 아홉 개의 물건이 사라지다

by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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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리될 사물 세 가지입니다.

묵직한 금속 열쇠고리, 아직 작동되는 일회용 라이터, 그리고 모서리 보호대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가장 먼저 열쇠고리의 이야기부터 들어 봅니다.


“내가 억울한 것은 하나 뿐이야. 열쇠고리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열쇠를 채워보지 못했다는 것. 눈 딱 감고, 내 마지막 소원 하나만 들어줘. 나 보내기 전에 말이야. 마지막으로 아무 열쇠나 한 번 채워 볼 수 있게 해주면 안 돼? 그러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작동되는 일회용 라이터도 할 말이 있나 봅니다.


“나는 아직 가스가 남아 있다고. 아주 조금밖에 안 남긴 했지만. 거기다가 이상 없이 잘 작동한다고. 그런데, 왜 나를 버리려고 하는 거야? 뭐! 쓰는 사람이 없다고? 이 집 안에는 나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하! 그렇게 단정하면 안 되지. 물론 나는 애연가들에게 특정한 목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본연의 기능은 불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이 집 가스의 점화장치가 갑자기 고장 나면 어쩌려고 그래? 갑자기, 촛불을 켜야 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또 뭔가 태워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비상시를 대비해서 나를 갖고 있는 게 어때? 나 아직 쓸만해.”


마지막으로 모서리 보호대의 말에 귀 기울여 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모서리에 부딪히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말이죠. 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처음 나를 이 집에 데려온 날부터 내가 모서리에 붙여졌다는 것도 말이죠. 저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요? 제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열심히 보호하면 보호할수록 모서리에서 자꾸 떨어져 나간 것이, 제 탓은 아닙니다. 그건 누군가가 너무 세게 모서리에 부딪쳤기 때문입니다. 저 때문에 다치지 않은 사람은, 저를 마땅히 칭찬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칭찬 대신 저의 결함을 욕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모서리에 붙어 있지 않았더라면, 부딪힌 사람은 크게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미운털이라도 박힌 걸까요? 사람들은 투박한 저의 디자인마저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서리에서 또 떨어졌던 그 날.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무릎을 보호하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모서리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깜깜한 깡통 안에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일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누군가 모서리에 부딪히는 신음 소리 같은 것을 낼 때마다,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빨리 내가 나가서, 다시 모서리에 붙어야 할 텐데. 온통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내게 죄가 있다면, 오래도록 모서리에 붙어 있기를 바란 죄 밖에 없습니다.”




묵직한 금속 열쇠고리는 결국 마지막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일회용 라이터는 떠나기 전에 몸 안에 남아 있는 가스를 모두 뱉어내야만 했습니다.

이 집에는 더 이상 모서리 보호대의 보호가 필요할 만큼 가치 있는 물건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세 가지 물건이 집에서 없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아홉 가지 물건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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