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정리, 9일 차

이제껏 28개의 물건이 정리되다

by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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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리될 사물 세 가지입니다.

기종이 다른 목업 폰 2개와 다 쓴 무인 양행 0.38mm 펜입니다.




옵티머스 뷰 2 목업 폰이 먼저 말을 시작합니다.


“결국에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갤럭시 S2 형님이 지난번에 사라지는 것을 봤을 때, 나도 곧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했지.

나를 구입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지. 진짜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주로 나를 구입했거든.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는, 목업 폰을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물론 아이들에게 장난감으로 주려고, 우리를 사는 부모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진짜 폰을 주면 아이들이 망가트리니까 그런 거지. 어쨌든 목적은 비슷해. 진짜 같은 가짜가 필요한 거지. 신기한 세상 아냐? 전화도 걸 수 없고, 앱도 사용할 수 없고, 아무런 기능도 없는 우리들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 있다는 거 말이야.

그런데 그거 혹시 알아? 가짜인 우리끼리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한다는 거. 진짜에 가까울수록 서열이 더 높다는 거. 정교하게 만들어질수록 가격이 높다는 거 말이야. 사람들은 종종 그걸 잊어버리곤 해. 가짜들에게도 가짜들만의 세상이 있다는 걸 말이야.”


무인 양행 0.38mm 펜도 할 말이 있나 봅니다.


“제가 벌써 세 번째네요. 잉크를 다 사용해서 버리는 세 번째 펜이군요. 저를 보면서, 당신이 그랬잖아요. 이 펜은 잉크심만 리필하면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아깝네. 그러고 나서, 저를 구입했던 한국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방문도 했죠. 혹시 그새 리필 잉크심이 나왔는지 확인하려고요. 하지만, 당신이 찾는 리필 잉크심은 결국 찾지 못했죠. 처음 우리들을 구입할 때도, 리필 잉크심이 있는지 찾아봤었잖아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같은 펜 6자루를 구입했던 당신이었어요.

도대체 왜 리필 잉크심을 안 만드는 거지? 그렇게 투덜대다가, 결국에는 무인 양행 일본 홈페이지까지 방문했죠.

당신이 충격받은 거, 충분히 이해해요. 충분히 이해하고 말고요. 리필 잉크심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니까요. 제가 처음 세상에 탄생하던 2014년부터 리필 잉크심은 존재했죠. 물론 리필 잉크심의 가격이 터무니없기는 해요. 펜이 80엔인데, 리필 잉크심이 70엔이라는 것은 저도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정말 교묘한 상술이죠. 더 나쁜 것은 한국 무인 양행 홈페이지에서는 리필 잉크심을 살 수 없다는 거죠. 펜을 자그마치 1500원에 판매하는대도 말이죠. 이건 나쁜 거예요. 당신이 화난 거, 나는 충분히 이해해요. 이해하고 말고요.”


옵티머스 G프로 목업 폰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이 집에서 정리되는 마지막 목업 폰이군. 진짜 폰의 삶이 어떤 건지 끝내 모른 체 이렇게 사라지는군. 다음 생애에는 진짜 폰으로 태어나고 싶어. 그동안 고마웠어.”




옵티머스 뷰 2 목업 폰이 말하는 세상이 어쩌면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닐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아있는 무인 양행 펜을 다 쓰기 전까지 리필 잉크심을 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일본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비싼 리필 잉크심을 사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옵티머스 G프로 목업 폰의 마지막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남아있는 목업 폰은 더 이상 없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스물여덟 개의 물건이 정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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