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정리, 10일 차

31개의 물건이 정리되다

by muum


rqpx8rDTu7t3mqv0R5IXxAhqeQSgBBsV5c2exaGwFV2-xqcMNj1emutggT1g3ZV23PutHoxcUB1Rzw3ih1gMMpdKFJNVlNM5Sa_XQZ_XZGG6VwppLM5DsMRvlJUCoohGpU2u_vdt


오늘 정리될 사물 세 가지입니다.

모니터 변환젠더, 케이블 분배기, 그리고 마우스 변환젠더가 선택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모니터 변환젠더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집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사용된 게 언제인지 알아?

당신은 이제 기억도 안 날 거야. 당신이 아날로그 모니터를 마지막으로 사용하던 날이니까. 그게 언제인지 당신도 까마득 하지? 그러니까, 당신이 아날로그 모니터를 누군가에게 주던 그 날. 나도 이 집에서 쓸모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지. 그때 같이 사라졌어야 하는 게 내 운명이었다고.

솔직히 말이야. 나는 당신이 잘 이해가 안 돼. 쓸데가 아예 없는 나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당신이 말이야. 진즉에 필요한 사람에게 주던가, 버리던가 했어야 했단 말이야.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몇 년 동안 빈둥거리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알아?

더 웃긴 건 말이야. 나하고 똑같이 생긴 녀석이 아직도 서랍 안에 2개나 더 남아 있다는 거지. 당신 물건 못 버리는 사람이지? 그렇지?"


옆에 있는 케이블 분배기도 할 말이 있나 봅니다.


“나는 하나의 케이블을 3개의 신호로 나눠주는 역할을 하는 물건이야. 물론 아날로그 케이블만 담당하고 있어. 내가 이 집에 온 게, 2010년 경이었으니까, 벌써 7년이나 됐네. 이 집에 온 그 날부터 아무 일도 못하고, 책상 서랍 속에 있던 시간만 7년이야.

구입한 그 날, 차라리 환불이라도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지금쯤 다른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언젠가는 혹시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당신의 노파심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거지. 그것을 내가 모를 리가 없지.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라고. 7년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쓰인 일이 없었고, 쓰일일도 없었잖아. 덕분에 태어자마자 이렇게 늙어 버렸다고. 나는 너무 늙어 버려서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나를 찾는 곳이 없을 거야. 요즘 세상에 누가 아날로그 케이블 분배기를 사용하겠어?

새 제품으로 와서, 새 제품 그대로 버려지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 태어나자마자 죽는 그 기분을 당신은 영원히 모를 거야.”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마우스 변환젠더도 마침내 입을 엽니다.


“나는 마우스를 사면, 같이 딸려오는 물건이야. USB를 PS2 포트에 꽂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당신이 예전에 각종 마우스를 사들일 때, 얼떨결에 이 집에 들어왔어. 몇 년 간은 행복했지. 열심히 일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당신은 변했어. 언젠가부터 마우스를 USB 포트에 바로 꽂기 시작하더군. 그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어. 일을 하지 않은 게 5년도 넘을 거야.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나랑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 서랍 안에 4개나 더 있다는 거 당신도 이제는 알 거야.. 걔네들도 나랑 똑같은 운명이겠지. 제발 부탁인데. 쓸 일이 없을 것 같으면, 빨리빨리 정리를 좀 해줘. 몇 년 동안 데리고 있지 말라고.”




모니터 변환젠더는 너무 늦게 버려진 것 같습니다. 남아있는 변환젠더 2개도 곧 같은 운명이 될 것 같습니다.

케이블 분배기는 이 집에 와서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안 쓴 새 제품인데, 아깝지만 결국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우스 변환젠더도 버려졌습니다. 남아 있는 4개도 곧 버려지겠죠.


지금까지 모두 서른한 개의 물건이 정리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물 정리, 9일 차